한중수교 25년의 교훈 (이영일 칼럼)
한중수교 25년의 교훈 (이영일 칼럼)
  • 디지털 뉴스부
  • 승인 2017.09.0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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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전 국회의원 : 한중정치외교포럼회장)
▲이영일(전 국회의원 : 한중정치외교포럼회장)

1. 들어가면서


한국과 중국이 국교를 연지 25년이 경과했다.
한중양국의 학계나 정부에서 수교(중국 측에서는  建交) 25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가지의 토론회와 포럼이 열렸다. 그러나 수교 이래 양국관계가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기 때문에 수교25주년은 어제의 일에 대한 회상은 있지만 내일에 대한 전망이 콱 막힌 상황 하에서 기념할만한 대상을 상실한 행사들이 기념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진행되고 있다. 필자는 8월18일 한국고등교육재단과 현대중국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수교 25주년 기념학술회의와 성균관대학교 성균중국연구소가 동아일보의 협찬으로 개최한 동일한 타이틀의 학술세미나를 참관하였다. 두 학술회의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된 것은 한중관계 25년의 역사가 외화내빈(外華內貧)의 역사라고 평가한 점이다. 안보문제에 관한 이해대립요소를 묻어둔 채 이루어진 양국 수교는 안보외적 분야에서는 다양한 발전을 보일 수 있었다.

한중간의 인적교류도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 인구 1000만 명의 교류시대를 열었고 경제부문에서도 양국이 서로에 대해 최대의 무역국으로서 경제협력을 증진해왔다. 그러나 THAAD(고고도 요격 미사일 방어망)배치라는 안보도전요소가 현실화되자 양국 간의 갈등은 양국관계를 사실상 ‘무 수교’상태처럼 냉담하게 만들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의 자동차 산업이나 화장품 산업, 서비스 분야에 대한 중국의 탄압과 보복은 수교가 없던 시절에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심각한 양상을 들어내고 있다. 보복의 대상과 범위도 나날이 늘고 있다.

학자들은 안보갈등이 필연적으로 야기될 것이라는 전제하에 정부는 사전 준비와 대책을 강구해 두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준비보다는 겉에 들어나는 화려한 성과에만 치중한 데 오늘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양국관계가 잘나가던 지난 25년간 많은 학술회의가 열렸지만 이러한 지적이 공론화된 일은 없었거나 미약했다는 사실에 비추어 사후약방문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의 중국전문가들의 수준으로 본다면 과도한 저평가일까.

최근 상기 두 군데서 열린 학술회의에 내빈으로 참석, 축사한 추궈홍(邱國洪)주한 중국대사는 현재 양국 간의 난제를 해결하려면 양국 공히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서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자세로 어려움을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중국이 할 말이 아니라 우리 한국이 중국에 대고 할 말이다. 그러나 필자는 중국이 초심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나 상황이 많이 변했음을 전제하면서 현재의 문제와 앞으로의 과제를 검토하고자 한다.

2. 무엇이 문제인가

잠시 수교 당시의 상황을 돌이켜 보자. 당시 중국은 등소평(鄧小平)이 모택동(毛澤東)의 정책노선 중 ①전쟁불가피론(戰爭不可避論)을 전쟁가피론(可避論)으로 바꾸고 ② 대외폐쇄(對外閉鎖)가 아니라 대외개방을 추구하면서 ③ 소련의 침략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과 국교를 트는 상황이었다. 이 시기의 등소평 외교는 중국이 날카로운 발톱을 밖에 들어내지 않고 어둠속에서 칼을 갈자는 도광양회(韜光養晦)정책을 펼치면서 외부로부터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는데 혼신의 정열을 쏟아 부었다. 이러한 정세 관에 입각해서 중국은 미국, 일본과의 수교를 끝낸 후 북한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과의 수교를 결단했던 것이다. 미국과의 수교에서는 미국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는 조건 하에서 대만에 대한 미국의 안보지원을 줄여 나기기로 합의했다. 즉 대만 문제에 관한 한 “원칙에서는 미국이 양보”했고 미국의 대만 지원종결 시기는 미국의 자율에 맡김으로서 “시간 면에서는 중국이 양보”했던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수교에 있어서도 센카쿠 열도(중국명 釣魚島)는 서로의 주권문제와 관련된 사항이었지만 일본의 자본과 기술유치가 시급했던 중국으로서는 먼저 수교를 한 후 어려운 현안은 미래세대에게 해결의 과제로 넘기자면서 수교협상을 타결했다. 한중수교역시 가장 큰 걸림돌은 한국전쟁을 법률적으로 종결시킨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상황 하에서 휴전협정 서명국의 일방인 중국과 한국 간에 존재하는 법률상의 적대관계청산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아시아에서 적대했던 한국과 수교함으로 해서 중국이 추구하는 개혁개방이 구원(舊怨)에 얽매이지 않음을 보여주고 그렇게 하는 것이 외부로부터의 자본과 기술도입을 촉진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중국의 등소평은 법률상의 적대관계라는 형식에 구애되기보다는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중국의 새로운 외교노선, 즉 도광양회노선을 취함으로써 한중수교를 가능케 했던 것이다. 특히 등소평은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이 추구한 국가발전방식이 중국에 크게 참고가 된다는 평가에서 한국과의 수교를 서둘렀다고 한다. 이 당시 중국이 적대관계를 넘어서서, 북한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과의 수교를 결정한 것은 평가할만하다. 한국에서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북방정책을 추진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양국의 입장이 수교로 수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반면 시진핑 주석은 국가주석에 취임한 것과 때를 같이하여 두 가지의 중요한 결단을 내렸다. 우선 대국굴기(大國崛起)론이다. 서방측이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경제력이 약화된 반면 중국은 개혁개방의 성과로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된 만큼 더 이상 개발도상국으로서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대국으로 등장하겠다는 대국굴기를 천명했다. 개발도상국이 아닌 선진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결단은 도광양회노선을 청산하고 중국의 국력의 크기에 상응하는 발언권을 행사하면서 서구세력들이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놓은 국제규범을 존중은 하되 중국의 요구에 맞도록 바꿔나가겠다(Rule Maker)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한중수교를 가능하게 했던 당시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중국의 힘과 국가철학이 달라진 것이다. 시진핑 치하에서 한중수교를 추구했다면 중국의 요구조건도 크게 달랐을 것이다. 예컨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함은 물론이거니와 중국이 주장하는 운명공동체의 일원임을 시인하고 어느 경우에나 중국의 안보노선에 역행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는 조건의 수용을 요구했을 것이다. 즉 한미동맹조약의 폐기까지 요구했을지 모른다. 여기에 시진핑 시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3. 시진핑 시대의 도래와 한중관계의 변화

시진핑은 주석 직에 취임한 초기에는 한국과의 관계에서 역대 다른 주석들과도 달리 북한의 핵개발 노선을 반대하면서 한국에 매우 우호적인 면을 보였다. 우선 북한을 방문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을 먼저 방문했고 북한 지도자들을 만나기 전에 한중정상회담을 가졌다. 매우 이례적인 조치였다. 이어 시 주석은 한국이 항일 투쟁 시 중국대륙에서 중국과 함께 투쟁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인정하고 한국 측의 건의에 따라  안중근 의사기념관 건립, 광복군 추모비, 광복군청사, 임시정부 청사복원 등을 적극 지원하면서 항일 전쟁승리 70주년기념식이 열린 중국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의 사열대에 박근혜 대통령을 초청, 인민해방군의 사열을 받게 했다. 중국이 한국에 던진 획기적인 당근(Carrot)이었다.


이에 앞서 시진핑 주석은 “위대한 중국의 꿈”이라는 국민적 비전을 내놓으면서 전 세계적인 범위에서는 아니라 하더라도 동아시아 대륙에서만은 중국이 미국을 밀어내고 패자(覇者)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요컨대 미국이 아닌 중국이 이 지역의 질서를 주도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운 것이다. 곧이어 시진핑은 2015년 5월 21일 샹하이에서 열린 CICA(아시아 신뢰구축 및 상호작용회의 또는 아시아교류회의)총회에서 아시아 집단안보론을 제기, 아시아인에 의한 아시아 안보를 강조함으로써 그의 야심을 공식적으로 들어냈다. 그는 국가주석으로서 미국을 방문한 기회에 신형대국관계정립을 미국에 요구하고 세계문제논의에서 중국을 미국과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할 것도 주장한다.

또 일본에 대해서도 등소평 시절에 해결을 유보했던 세카쿠 열도(조어도)를 자국 고유의 영토라면서 일본의 양보를 압박하는 동중국해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아울러 동남아에서도 남중국해에 속한 모든 섬들이 중국의 영토라고 주장( 이것은 서구의 국제법이 아니라 중국의 天朝사상에 의한 영토론)하면서 이 해역에 이해관계를 갖는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과 영토분쟁을 야기, 남중국해를 분쟁지역으로 만들고 있다. 이에 반해 미국은 아시아 재 균형전략을 펼치면서 ‘항해의 자유’를 앞세우고 중국이 영토에 관한 서양국제법질서에 따를 것을 요구, 양국갈등이 확대추세에 있다. 한국에 대해서도 등소평 시대와는 달리 휴전협정의 평화협정에로의 전환을 강조한다. 여기에는 미군이 한국에 주둔할 명분을 약화시키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현재 중국은 14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한국 등 주변국들을 중국과 운명공동체에 속하는 국가들이라고 일방적으로 정의하면서 친성혜용(親誠惠容)의 자세로 협력하겠다고 한다. 시진핑의 중국은 이상에서 밝힌 꿈과 목표에 비추어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패권을 고수하려는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으면서 미국의 안보정책에 적극 협력하는 한국과 일본을 결코 우호적으로 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은 미국의 대 중국 미사일 포위망의 일환으로 간주되는 고고도미사일요격망인 사드(THAAD)가 대중국용이 아니라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배치되는 것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동북아시아에서 추구하는 시진핑의 꿈과 전략이 바뀌지 않는 한 사드반대라는 중국의 입장이 쉽사리 변하기는 힘들 것 같다.

4.한중관계의 장래

중국은 북한의 핵 보유와 미사일 공세를 반대하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결의안에는 찬성하면서도 그것이 북한정권 유지에 지장이 없도록 제재의 수준을 은밀히 줄이고 있다. 한국을 자극하는 조치다. 또 한국에 배치되는 사드는 부착된 X밴드 레이더의 범위를 북한 쪽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회장 John Hamre가 말한바와 같이 중국이 한국을 침공할 의향이 없다면 중국안보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자기들이 일방적으로 운명공동체에 속한 국가라고 정의한 주변국이 자기들이 추구하는 동북아시아 패권 장악에 역행하는 어떠한 조치도 용납할 수 없다는 논리에서 한국의 사드배치를 강도 높게 반대하고 있다. 이것은 과거 소련이 위성국가들에게 대하여 주권행사를 제한했던 소위 브레즈네프의 제한주권이론을 연상시키는 행태이다.  

과거 조선시대의 한국은 중국을 섬기는 나라였다. 중국으로부터 조공무역을 통한 경제적 혜택도 얻으면서 학문과 기술, 문화와 예술 등을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배울 것이 없다. 중국이 훔쳐가거나 중국에 도적맞을 지식과 기술은 있지만 중국에서 얻거나 배울 것은 거의 없다. 중국은 한국에 인접해 있는 큰 시장을 가진 거래처일 뿐이다. 그러나 시진핑의 중국은 증강된 국력을 믿고 인접한 주변국의 안보주권행사까지 제한하려든다.
동북아시아의 반도국가인 한국은 고구려시대이후 지정학적으로 대륙국가노선을 따를 때는 항상 가난했고 취약했다. 취약했기 때문에 중국을 섬겼다. 그러나 해방 후 해양국가노선을 달리면서 한국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했고 문화, 예술도 오늘날 꽃피고 있는 한류처럼 융성했다. 

이제 우리는 군사적으로 한미동맹을 굳건히 다지는 토대위에서 자강(自彊)의 태세를 강화해야 한다. 핵잠수함을 포함한 미사일전력을 강화 발전시키면서 기술수준이나 문화면에서 중국보다는 언제나 한 발 앞서가는 수준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교역의 범위도 다각화하여 중국의존도를 탈피해야 한다. 그간 중국경제는 고도성장을 과시했다. 그러나 반부패투쟁이 몰고 올 중국공산당 내부의 분열, 세계경제발전과 무역의 위축, 민주화를 부르짖는 중국 내부의 개혁요구, 소수민족들의 도전이 끊이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더 큰 발전에는 제동이 걸렸다.

우리는 이러한 전망 하에서 한국경제발전의 지정학적 축복이었던 해양국가의 길을 꾸준히 추구하면서 국론통일과 국력신장에 박차를 가한다면 오늘날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받는 도전은 능히 극복할 수 있다.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남을 믿거나 남에게 기대려하지 말고 자강노력을 강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이라는 것이다.

헌정지 2017년 9월호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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