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외방송=허수빈 기자) 가족이라는 명사가 사랑으로 정의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그 시점은 인류 그 이전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국가를 봐도 그렇듯이 한반도 역사에서도 가족은 절대적인 사랑이었다. 사랑은 부모에게는 희생으로 자식에게는 효로 대변됐고 희생과 효를 기반으로 한국의 가족신화는 공고히도 유지돼 왔다.
유교 개념 바탕 위에 반복된 전쟁 그리고 분단의 경험은 한국 사회에서 가족을 특별한 가치로 만들었다. 현실 위기의 척박함은 가족을 유일한 위안처이자 생존을 위해 유지해야 할 최후의 집단으로 기능하게 했고 쉽게 말해 “뭉쳐야 산다”는 슬로건 아래 유별난 가족주의가 탄생하게 된 배경으로 기능했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적 가족주의는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 ‘나’의 능력이 내 가치 기준이 되는 현대사회에서 한국의 가족주의는 흔들리고 있다. 개인화, 전통과의 마찰, 자본주의 시장에서 겪는 물질적 위기 앞에서 집단으로서 가족이 주는 혜택은 기능을 상실했고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질문하게 했다.
한반도의 급격한 ‘가족의 해체’
화려한 한반도의 역사를 부정이라도 하듯 가족의 해체는 가속화되고 있다. “교육 문제다”, “이기주의다”, “사회적 구조가 잘못됐다” 등등 원인을 규명하려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변화무쌍한 역사 속에서도 가족이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을 돌아봤을 때 가족이 외부적 위협만으로 해체될 유연한 집단은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렇다면 가족이 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족’이 상징하는 의미에 대한 고찰은 하나의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정상 가족’이라는 낯선 말이 여기저기서 급부상하고 있다. 가족에 정상, 비정상은 없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오랜 역사 동안 가족은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뉘었다. 사회에서 말하는 ‘정상 가족’이란 여성인 엄마와 남성인 아빠 그리고 혈연이나 입양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 형태를 말한다. 이러한 구성에서 벗어난 형태, 예를 들어 편부모 가족, 무자녀 가족, 동거 가족 등은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사회에서 도태됐다. 국가의 법 역시 가족의 범위를 한정하고 있어 ‘정상 가족’이 아닐 경우 제도적으로도 보호를 받지 못한다.
그러나 최근 한국 사회의 ‘정상 가족’ 편견이 오히려 가족 내 문제를 심화시켰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가정폭력은 영국이나 일본에 비해 5배나 높았으나 실제로 이 중 7.9%만이 별거나 이혼을 선택하고 대부분은 참고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상 가족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가정 내 문제를 노출하지 않는 결과를 초례하고 결국 급격한 가족 해체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여전히 내가 희생되더라도 가족은 지켜야 한다는 전통적 신념의 현주소는 참고 희생함으로써 더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하는 딜레마를 낳은 것이다. 증가하는 대한민국의 가정의 해체는 한반도의 정상가족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되돌아보게 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국 가정에서 연간 2만 4000여건의 아동학대와 5000건 이상의 노인학대 그리고 4만여건이 넘는 가정폭력 사건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노인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노인학대 신고 건수는 총 1만 6071건으로 이 중 5243건이 노인학대로 판정됐다. 노인학대 건수는 2016년부터 4000선을 넘더니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5000대를 기록했다. 아동학대도 매년 늘고 있다. 지난해 아동학대 발생 건수는 전년 대비 10% 늘어난 2만 4604건을 기록했다. 2014년 1만 27건에 비해 5년 사이 두 배 넘게 올랐다. 아동·노인·배우자 등을 대상으로 한 가정 내 폭력도 마찬가지다. 2015년부터 매년 4만건에 달하는 가정폭력 사건이 발생했으며, 2018년까지 총 16만 6935건이 경찰에 검거됐다.
부부간 학대, 아동학대를 넘어 부모학대까지 가족간 불화를 증명하는 사건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가 어느 순간 불쑥 발생한 현상일까. 동방예의지국에서 인정하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다른 사회적 현상이 그러하듯 가족간 폭력도 오래된 이해관계와 사회문화적 배경이 응집돼 나타난 유래 깊은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숨기고 싶은 진실일수록 뒤주 속에 꼭꼭 숨겨지듯 이 또한 ‘가족주의’라는 위상 속에서 희생자를 양산하며 감춰졌을 것이다. 사랑과 효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가족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랑의 이미지보다 생각만 해도 가슴 저린 누군가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친다면 한반도에서 가족이란 사랑보다는 희생이었다는 불편한 진실을 조금은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통가정의 희생 ‘노인’
분명한 것은 어느 순간 부당함이 인지되기 시작했고 가족의 구조와 의미는 재정립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더는 폭력과 외도 같은 문제는 감수해야 할 상황이 아니며 참고 살 이유도 옅어졌다. 집단이 아닌 ‘나’의 가치가 인정받고 “다 참고 사는 거다”라는 가르침보다는 “너의 웃음이 나의 행복이다”라는 가르침을 받고 성장한 세대는 당연했던 것을 당연하지 않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부당함을 인지하는 세대간의 차이이다. 인지의 차이는 가족 간에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킨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이혼율은 1970년 0.4%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해 지난해 2.1%에 달했다. 급격한 이혼율 증가는 가정을 흔들고 사회를 위협하는 주요 문제로 인식됐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0.84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1960~1970년대 OECD 주요국과 비교해 출산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한국이 불과 60년만에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됐다.
기존 세대보다 ‘덜 참는’ 세대는 결혼이나 부모 되기를 거부하고 결혼도 평생의 맹세가 아니라 언제든지 갈라설 수 있는 임시적 관계로 인식한다. 정상가족은 삶의 목표가 아니며 결혼과 이혼, 출산과 같은 행위도 선택사항이다. ‘거부’는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는 그들만의 방식이지만 기존 세대에게 이러한 현실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특히 ‘부모 자식’ 관계에서 말이다. 앞서 서술했듯이 전통적 가족은 부모에게는 희생으로 자식에게는 효로 대변되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삶을 희생하고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것은 권리이자 의무였고 부모는 당연하듯 자신을 희생하며 자식을 성장시켰다. 몸과 마음, 시간과 물질을 쏟아부은 오롯한 희생 끝에 자식과 함께하는 행복한 노후의 청사진을 그리면서 말이다.
그러나 2000년의 현실은 예상과 사뭇 다르다. 전통적 관념 안에서 가족을 위해 모든 걸 소비한 결과는 통계로 나타난다. 통계청 조사 결과 65세 이상 고령자 가구의 지난해 기준 순자산액은 3억 4954만원으로 2019년 기준 상대적 빈곤율은 43.2%를 차지했다. 이는 이스라엘이 20.6%, 일본 20.0%, 영국 14.9%, 독일 9.1%, 프랑스 4.1% 등과 비교했을 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혼자 사는 고령자 중 노후 준비를 한다는 응답은 33.0%에 불과했다. 3명 중 2명꼴인 67.0%가 노후를 준비하지 않는다고 답한 것이다. 자식 없이 혼자 사는 고령자 가구도 166만 1000가구에 달해 전체 고령자 가구의 35.1%를 차지했다. 독거도인 가구 수는 2037년에는 2배 수준인 335만 1000가구로, 2047년에는 405만 1000 가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독거노인의 가장 큰 문제는 외로움과 금전적 문제였다. 통계청 ‘2016 사회조사보고서’에 따르면, 60세 이상 5.3%가 자살을 생각했다고 답했다. 경제적 어려움 35.7%, 건강문제 32.8%, 외로움 14.3%, 가정불화 10.3% 등이 주된 이유였다. 한국의 노인 자살률(2016년 기준)은 OECD 국가 평균(18.8명)보다 3배가량 높은 58.6명으로, 회원국 25개국 중 1위를 차지했다. 주목할 점은 60세 이상 고령층일수록 자살률이 더 높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의 ‘2019년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60대 자살 인구는 40.7명, 70대는 66.9명, 80살 이상은 94.7명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09년부터 5년간 우울증 확진자를 조사한 결과 우울증 환자 10명 가운데 6명이 50대 이상 노년층으로 나타난 사실은 이 같은 사실에 힘을 실어준다.
전문가들은 노인 우울과 자살은 현재 한국 사회가 노인과 젊은 세대간에 가치가 뒤섞이는 과도기를 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연령이 높을수록 전통적 가치를 기대하는 반면, 자식들은 개인의 삶을 중시하고, 이 가운데 발생하는 간극과 불일치가 좌절감과 소외감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충과 효라는 전통적 가치에 충실했던 세대일수록 자신을 희생한 것에 대한 보상 없음이 가난과 우울이라는 극단적 결과로 찾아오게 됐다.

결국 희생을 당연시했던 부모와 희생 받음을 당연시 한 세대간의 갈등이 대한민국을 노인을 위하는 나라일 수 없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됐다. 문제는 한국의 가족주의가 여전히 과거의 소모적 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2013년 ‘사법복지’의 일환으로 시작된 성년후견제도는 부모와 자식간에 발생하는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성년후견 제도는 질병, 노령 등으로 삶을 영위하기 힘든 상황에서 후견인을 선임하는 제도이다. 일반적으로 자식이 후견인으로 선임되는데 법적 취지와 달리 재산분쟁 싸움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사건을 집계한 결과 ‘후견개시사건 접수 건수(전국법원 기준)’는 2013년 474건에서 지난해 5274건으로 약 10배 이상 폭증했다. 원인은 ‘부모 재산은 내 재산’이란 인식이었다.
일부의 사례가 한반도의 모든 가정을 포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재산 분쟁 등 가족 문제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젊은 세대들은 부당한 대우와 희생의 문제를 비혼, 출산 거부 등의 방식으로 해결하지만 전통적 시대를 살아온 세대는 ‘거부’와 ‘가족 깨기’ 등을 통한 해결을 구사하지 못한다, 이 점에서 노인의 위치는 더 악화하는데, 특히 자식이기에 모든 것을 희생하는 태도는 문제를 곪아 터지게 만들고 있다.
얼마 전 변호사인 아버지 명의로 111억원을 빌리고 갚지 못하자 아버지를 살해하려고 시도한 30대 남성이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이 일어났다. 아버지의 법률사무소 직원으로 일하던 A씨는 차용증을 위조해 지인들에게 돈을 챙겼고 이를 갚지 못하자 아버지의 머리를 둔기로 때려 살해하려 한 것이다.
언론에 하루건너 하루 친족간 범죄가 보도된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발생한 존속범죄는 1만여 건을 넘어섰다. 수면 위로 드러난 부분이 빙산의 일각인 점을 고려했을 때 상당한 수치다. 패륜 범죄는 가족 사이에 일어나는 아동, 배우자 범죄와 결을 같이한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에게 가하는 폭력은 ‘용서’ 된다는 점에서 해결이 쉽지 않다. 살해 미수에 그친 둔기 사건의 피해자 아버지는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며 법원에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다른 사건도 있다. 한 어머니는 자신을 폭행한 아들이 구속되자 아들의 선처를 호소했다. “아들의 행위에 어머니로서 책임이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타인의 잘못을 자신의 잘못으로 들리는 이러한 행위는 ‘내재화 방어기제’로 정의되는데 자신의 욕구나 충동,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억누른다는 점에서 합리화에 해당한다. 스스로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논리를 부여함으로써 용납될 수 없는 행동에 이유를 제공하려는 심리다. 이는 자식을 잘 키우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자 현실 부정의 일종으로 결국 우울증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된다. 자식이 태어나는 순간 ‘너’의 삶이 ‘나’의 삶이 되던 것이 당연하던 시대에 자식의 배신은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우리나라 노인복지법은 “노인은 후손의 양육과 국가 및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여 온 자로서 존경받고 건강하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아야 하며, 능력에 따라 적당한 일에 종사하고 사회적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 또한 노령과 심신의 변화를 자각하여 항상 심신의 건강을 유지하고 그 지식과 경험을 활용하여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규정(제2조)을 기본이념으로 두고 있다. 급격한 고령화로 공적부양을 위한 국민연금법,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의 확대, 제정 시행하고 있지만 생활을 영위하기에는 미흡한 수준이다. 때문에 친족이 부양하는 사적부양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법률에서 부모 부양은 2차적 의무에 해당한다. 따라서 본인의 경제적 자력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부모님을 부양하며, 합당한 사유가 있다면 부양 기피도 합법이다.
고령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는 2025년에는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의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매해 가속도가 붙으며 급증하는 노인문제는 이제 시작인 셈이다. 그러나 노인문제를 바라보는 인식과 제도적 보안은 고착화되어 있다.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인을 인간의 존엄성 및 인권 보장 차원에서 바라보려는 시각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존엄하며 시간이 지난다고 그 존엄성이 훼손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물질의 가치 속에 잊혀지고 있는 이러한 사실은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더 이상 이상이 아닌 현실에서 답을 찾아야 할 어려운 문제가 됐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