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같이 놀래?" 잃어버리고 깨뜨려버린 '동심'을 찾아서
"나랑 같이 놀래?" 잃어버리고 깨뜨려버린 '동심'을 찾아서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3.06.2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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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 기념 특별전 '백희나 그림책'
'나는 개다'. (사진=임동현 기자)
'나는 개다'. (사진=임동현 기자)

(서울=내외방송) 한때 '동심파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동심파괴'를 마치 유희처럼 즐겼던 시간도 있었다. 우리가 어린 시절 들었던 동화나 동요 등을 '유치하게' 여기고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라는 동화의 결말을 '행복은 개코나' 같은 시니컬한 말로 받아치는, 그렇게 '어른'임을 내세우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그렇게 '어른'이라는 이유로 동심을 스스로 깼지만 그런 우리가 만들어낸 세상은 삭막하고 정이 없는, 걸핏하면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심지어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는 세상이었다. 동심이 파괴되면서 남은 것은 어른의 비참한 삶, 하루하루를 힘겨워하는 삶이었던 것이다.

구름으로 만든 빵을 먹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구름빵', 입 안에 굴리면 반가운 목소리가 들리는 '알사탕'을 만들었던 백희나 작가가 최근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기념 특별전인 <백희나 그림책>전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구름빵'. (사진=임동현 기자)
'구름빵'. (사진=임동현 기자)

작가의 첫 단독 대규모 개인전인 이 전시는 종이와 섬유, 스컬피로 만든 캐릭터 인형들, 직접 제작한 미니어처와 소품들, 목탄과 색연필을 활용한 드로잉과 더불어 작가가 완벽한 구상을 위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찍은 그림책의 한 페이지도 볼 수 있다. 전시는 10월 8일까지다.

아이와 아버지, 할머니와 살아가는 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가족의 이야기 <나는 개다>는 주인공 개의 조상(?)들과 그 개와 함께 울고 웃는 주인공 소년, 할머니, 아버지의 모습이 다정하게 느껴진다. 닭이 낳은 달걀을 뺏어먹는 뚱뚱보 욕심쟁이 고양이가 갑자기 '병아리를 낳은 엄마'가 되면서 병아리를 지켜주기 위해 애쓰는 <삐약이 엄마>의 드로잉 역시 정감 있다.

'이상한 엄마'. (사진=임동현 기자)
'이상한 엄마'. (사진=임동현 기자)

백희나 작가의 작품에는 어린이의 바램이 만드는 신기한 사건이 주를 이루고 있다. 동생을 갖고 싶어하는 아이에게 갑자기 기묘한 생명체가 나타나고(<이상한 손님>), 일터에서 아이가 아프다는 말을 들은 엄마의 전화를 받은 이는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다(<이상한 엄마>). 혼자 노는 데 익숙한 아이는 알사탕을 녹여먹으면서 아빠, 강아지, 친구들의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알사탕>). 

그리고 그 이상한 '이벤트'는 아이를 한층 더 성장시킨다. 생명체는 남매에게 평생에 잊혀질 추억을 안기고 아픈 아이를 걱정하는 엄마와 아파서 고생한 아이에게 '이상한 엄마'는 특대형 오무라이스를 남기고 떠난다. 알사탕을 통해 아빠와 친구의 마음을 알게 된 아이는 아빠를 가만히 뒤에서 껴안고 친구들에게 "나랑 같이 놀래?"라고 말한다. 미니어처로 표현된 그들의 집과 살림살이들, 그림책을 통해 만난 인물들이 너무나 정겹다.

'알사탕'. (사진=임동현 기자)
'알사탕'. (사진=임동현 기자)

감기에 걸린 덕지의 이마를 짚어주던 <장수탕 선녀님>의 선녀님은 목욕탕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연이와 버들 도령>은 미디어 콘텐츠로 구성되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림책에서 보지 못한 <구름빵>의 원작을 표현한 작품들은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구름빵'을 상상하던 옛날의 기억으로 우리를 다시 데려간다.

전시를 보면서 벽에 붙어있던 여러 말들을 떠올려본다. "나랑 같이 놀래?" "빨리 나으려무나", "아빠에게 구름빵을 주자"... 별 것 아닌 것 같은 말, 무심하게 한번쯤 지나가는 말로 생각할 수 있는 말. 하지만 이 전시를 보다보면 이 말들이 사실은 우리가 정말 듣고 싶어하고 하고 싶어했던 말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에 없는 말이라도 "같이 놀자", "꼭 나아야해" 같은 말을 듣는다면, 한다면 삭막함이 조금이라도 풀릴 수 있지 않을까? 어린이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이 "같이 놀자"였다는 뉴스를 접했던 것을 생각하니 더더욱 그 생각이 든다.

'장수탕 선녀님'. (사진=임동현 기자)
'장수탕 선녀님'. (사진=임동현 기자)

<백희나 그림책>전은 그렇게 우리가 잃었던 동심을 다시 일깨우고 착한 아이들이, 동물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살아가는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생각해보니 이런 세상은 불과 몇십년 전 우리가 살았던 세상이었다. 언제부터 아이들의 입에서도 꿈이 아닌 욕이 나오고, 서로 죽고 못사는, 죽여야만 해결할 수 있는 어른들만 사는 세상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하나의 이유는 분명한 것 같다. 우리가 동심을 스스로 차버렸기 때문이다.

백희나 작가의 말을 전한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만드는 것이 바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전시실 벽에 써진 글 하나를 마지막으로 전한다.

"사랑해 나도... 나랑 같이 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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