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춘곡'과 '병오창의'가 탄생한 선비들의 교육장
'상춘곡'과 '병오창의'가 탄생한 선비들의 교육장
  • 이건웅 글로벌사이버대학교 교수
  • 승인 2024.01.02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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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①정읍 무성서원

2019년 6월 30일부터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을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되었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한국의 서원’은 소수서원(경북 영주), 도산서원(경북 안동), 병산서원(경북 안동), 옥산서원(경북 경주), 도동서원(대구 달성), 남계서원(경남 함양), 필암서원(전남 장성), 무성서원(전북 정읍), 돈암서원(충남 논산) 등 총 9곳으로 모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된 이름이 높은 서원들이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서원’은 세계유산으로써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국의 서원은 조선시대 성리학 교육 시설의 한 유형으로,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중반에까지 향촌 지식인인 사림에 의해 건립되었다. 이 유산은 교육을 기초로 형성된 성리학에 기반 한 한국 사회 전통문화의 산증거들이다.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은 동아시아 성리학 사립교육기관의 한 유형인 서원은 중국에서 기원했지만, 이를 보다더 발전시켜 한국적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조선 시대 교육기관은 향교와 서원이 있었는데, 성균관이나 지역의 향교가 공립교육기관이었다면 서원은 사립교육기관의 역할을 했다. 한국의 서원 9곳은 가장 완비된 형태로 지금까지 400여 년 전승되어 온 제향의례, 서원이 자리 잡은 위치와 배치 공간의 탁월함, 유산 보존의 온전함, 각 서원이 행하는 지역문화 활동의 중심 역할, 다양한 도서와 책판, 고문서의 소장 전수, 서원 건물의 성격과 이해를 위한 안내 역할을 하는 현판과 기문 등은 서원의 진정성과 완전성을 잘 보여준다. 이에 ‘한국의 서원’ 9곳을 순차적으로 소개한다. 

무성서원. (사진=이건웅)
무성서원. (사진=이건웅)

1. 무성서원 

무성서원은 신라 말의 고운 최치원과 조선 중종 때 태인 현감이었던 신잠을 향사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신잠은 간성 군수로 이임한 뒤 백성들은 그를 위해 생사당과 선정비를 세우고, 신잠과 그의 아내 등을 조각으로 만들어 태인의 성황산 성황당에 모시고, 최치원과 합향했다. 태인 신잠 선생과 부인의 조각상은 정읍문화원에 보관하고 있다.  

광해 7년(1615) 원래는 태산서원이라 불렀던 것을 숙종 22년(1696)에 사액됨으로써 무성서원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사실 무성서원이 발전하는 토대는 정극인이 큰 공헌을 했다. 그는 1436년 부인의 고향이었던 태인으로 귀향해서 교육 활동에 집중했다. 정극인은 글방(가숙)을 열어 인근의 자제들을 모아 교육에 매진했고, 이것이 훗날 송세림에 의해 향학당(鄕學堂)으로 발전했다. 정극인은 가사 문학의 효시로 손꼽히는 ‘상춘곡’으로 유명하다.

이후 향학당은 태산사와 합쳐지며 무성서원의 토대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무성서원이 있게 만든 최치원, 신잠, 정극인, 송세림, 정언충, 김약묵. 김관 등 7명을 배향한 곳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게 되었다. 

무성서원. (사진=이건웅)
무성서원. (사진=이건웅)

무성서원은 사액 이후 영의정을 역임한 남구만이 원장으로 오면서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 위기를 맞이한다. 고종 5년(1868) 대원군이 주도해 전국의 47개의 서원만 빼고 나머지는 철폐하기 시작하는데, 호남에서는 장성의 필암서원과 광주 포충사와 함께 간신히 살아남았다. 장성의 필암서원도 무성서원과 더불어 ‘한국의 서원’ 중의 하나다. 

무성서원의 참모습은 혼란기 때 도드라진다. 광무 10년(1906년) 최익현을 중심으로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킨다. 최익현은 무성서원에서 80여 명의 선비와 함께 거의를 역설하고, 호남 최초의 의병을 일으켰다. 당시 태인, 정읍, 순창 등을 차지했으나 관군과 대치하다가 자진 해산했다. 이를 ‘병오창의’라고 부르며, 호남 최초의 의병 활동이라는 역사적 상징성을 가진다. 이후 1968년 사적 제166호로 지정되었고, 2019년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8곳의 서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무성서원에는 둘레길에 잘 조성되어 있는데, 무성서원에서 출발해 서원 쉼터→은석천→한정/필양상→송산사→시산사→송정/영묘당→후송정→정극인 동상→선비문화사료관→무성서원 주차장으로 이어진다. 무성서원 둘레길은 원촌마을 정비사업을 통해 조성되었다. 

무성서원. (사진=이건웅)
무성서원. (사진=이건웅)

 

무성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을 건립하고 있다. 2023년 10월 건축공사에 들어가 고운 최치원과 불우헌 정극인의 유교사상과 선비문화를 교육 체험할 수 있는 전통문화 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정읍시는 무성서원을 중심으로 한 무성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을 건립할 예정이고, 선비문화수련과 체험, 교육을 통해 윤리의식을 높이고 인성 함양에 도움을 주는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선비문화수련원은 무성서원 인근 시산리 690-1번지 일원이고, 대지면적 4,500㎡, 연면적 1,120㎡, 규모는 지상 3층, 공사비용은 약 51억원이 소요된다.     
          
2. 무성서원과 원촌마을

무성서원은 정읍시 칠보면 원촌마을에 위치한다. 서원은 일반적으로 뒤에 산이 있고, 앞에 계곡과 물이 있는 무이구곡을 지향하지만, 무성서원처럼 마을 속에 있는 서원도 있다. 한국의 서원 9곳 중에서 서원과 마을이 구성된 곳은 무성서원이 유일하고 인근에 세심마을이 있는 옥산서원까지 넓게 봐도 2곳에 불과하다.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성황산(城隍山) 아래 자리한 원촌마을은 규모는 작지만, 고적 유물이 많은 아름다운 마을이다. 칠보면은 1914년 칠보산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으며, 원촌마을의 유래는 ‘서원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원촌’이 되었다. 서쪽에 성황산이 있고, 남서쪽에는 화룡산(花龍山)이 있다. 또한, 마을 앞에는 수령이 300년 이상 된 버드나무가 마을의 서낭당 역할을 하고 있다. 

불우헌 정극인 묘. 조선 전기 문신으로 통례문통찬, 사간원 정언 등을 역임한 정극인(1401~1481) 선생의 묘이다. 정극인은 우리나라 최초로 민간 주도의 태인 고현동향악(1475)을 제정하여 풍속 교화에 힘썼다. (사진=이건웅)
불우헌 정극인 묘. 조선 전기 문신으로 통례문통찬, 사간원 정언 등을 역임한 정극인(1401~1481) 선생의 묘이다. 정극인은 우리나라 최초로 민간 주도의 태인 고현동향악(1475)을 제정하여 풍속 교화에 힘썼다. (사진=이건웅)

무성서원을 등지고 오른쪽으로 마을을 거슬러 올라가면, 무성리 삼층석탑, 석불입상 등이 있고. 최초의 가사 작품 ‘상춘곡’과 불헌 정극인의 묘 등이 칠보를 중심으로 하는 마을의 대표적인 유산이고, 매년 ‘불우헌 정극인 학술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유산과 자연 생태적인 문화를 잘 접목해 역사와 전통을 지키는 문화마을로 자리하게 되었다. ‘불우헌(不憂軒)’은 “세상의 모든 일을 잊어버리고 근심하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무성서원을 등지고 왼쪽으로 가면 마을 입구에 신체를 단련할 수 있도록 체육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소규모 공원인 체력단련공원이 있다. 소공원에는 영성정이라는 정자가 있고 바로 안쪽으로 조선 전기의 문인이자 학자인 정극인의 동상과 선비문화사료관이 자리하고 있다.

태산선비문화사료관 앞면에는 칠광·십현도(七狂·十賢圖) 조형물과 함께 칠광·십현이 있다. 동상 옆에는 ‘상춘곡 시비’와 ‘태산선비사료관’이 세워져 있다. 지리적으로 정읍의 동북부에 위치하여 옹동, 산내, 산외로 통하는 교통의 중심지이며, 삼국시대부터 읍의 치소, 유상곡수 등 태산선비문화의 중심지로 남도 풍류의 원류로 평가되던 지역이다. 

정읍 무성리 삼층석탑.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삼층석탑이다. 1998년 1월 9일 전라북도의 유형문화재 제158호로 지정되었다.
정읍 무성리 삼층석탑.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삼층석탑이다. 1998년 1월 9일 전라북도의 유형문화재 제158호로 지정되었다. (사진=이건웅)

무성서원과 원촌마을의 성공 요인을 꼽는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자체장인 정읍시장의 강력한 사업추진 의지, 둘째, 원촌마을 만들기를 통해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관리함으로써 정비 이후 발생하는 관리에 대한 부담을 해당 부서에서 덜 수 있었다. 셋째, 원촌마을 주민 혹은 마을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여러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실무자와 사업 시공사는 협의와 조정이 중요하게 진행했다. 넷째, 주민이 참여해 만든 하나의 발전계획안을 공유함으로써 예산집행의 효과를 높이고, 사업추진에 따른 민원 발생을 최소화했다는 점이다. 

3. 태산선비문화권

태산선비문화권이라는 용어는 2000년 11월, 국립전주박물관에서 “태산선비문화 조명 학술대회”를 진행했는데, 여기에서 오병무 교수(순천대)는 ‘한국 유학의 발생과 태산’이라는 주제로 발제하며 태산선비문화권에 대한 개념을 처음 주장했다.

2002년에 <태산선비문화권 개발계획 연구>라는 연구 용역을 통해 개념 확립되었고, 2007년 ‘태산선비권역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에 의해 연꽃연못, 다도체험관, 권역안내판 설치, 도수로 복개 및 주변 정비, 전통가로경관 조성 및 마을회관 리모델링을 진행했다. 그리고 원촌마을 중심으로 한 태산선비문화권은 인근 마을 세 곳의 부녀회가 중심으로 현재의 무성서원 마을로 발돋움했다. 이후 2008년 문화역사마을가꾸기사업, 2008~2010년 문화재정비복원사업 등을 통해 현대화했다.   

또한, 2023년 11월, 제2회 불우헌 정극인 학술대회에서 전북대학교 박정민 교수는 ‘태산선비문화권의 설정과 활성화 방안’이라는 주제로 태산선비문화권 방안을 제시했다.

태산선비문화사료관. 태산선비문화사료관은 1988년 개관하여 정읍의 동부권에 위치한 태산선비문화권역의 예술 민속문화, 누정, 향교, 서원, 사우, 불교유적 등 주요한 문화자원을 소개 전시하고 있다. (사진=이건웅)
태산선비문화사료관. 태산선비문화사료관은 1988년 개관하여 정읍의 동부권에 위치한 태산선비문화권역의 예술 민속문화, 누정, 향교, 서원, 사우, 불교유적 등 주요한 문화자원을 소개 전시하고 있다. (사진=이건웅)

최근에는 태산선비문화권의 전통문화와 연계한 농촌개발사업으로 연꽃연못 조성 등에 90여억 원, 놀이형 관광시설 확충의 일환인 ‘칠보물테마유원지’ 조성사업에 89여억 원을 투입해 추진하고 있다. 태산선비문화권도 관광 명소 순례길을 만들었는데, 피향정 ⇨ 무성서원 ⇨ 섬진강수력발전소 ⇨ 김명관고택 ⇨ 옥정호 ⇨ 임병찬 창의 유적지가 그 코스다.

이건웅 글로벌사이버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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