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무궁화가 손짓하는 홍천 '무궁화 마을'
[단독] 무궁화가 손짓하는 홍천 '무궁화 마을'
  • 정다연 기자
  • 승인 2019.10.10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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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본 홍천 무궁화마을의 전경. (사진=정동주 사진전문 기자)
▲하늘에서 본 홍천 무궁화마을의 전경. (사진=정동주 사진전문 기자)

(내외방송=정다연 기자/촬영=정동주 사진전문 기자) 한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 홍천강이 만나는 곳에 산수가 수려한 아름다운 마을이 있다. 아침이면 어제와 다른 꽃으로 피어나 한여름 뜨거운 햇살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하늘을 향해 한껏 기지개를 폈다가 어둠이 내리면 피웠던 꽃을 감추는, 무궁화가 손짓하는 '무궁화 마을'이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가 한서 남궁억 선생이 일제의 감시 속에서도 무궁화 묘목을 몰래 퍼뜨려 전국에 보급하고 교육 사업을 전개했던 곳으로 그 의미가 깊다. 

남궁억 선생은 격동의 시대였던 1863년 서울 정동에서 나고 자라 독립을 위한 일념으로 일생을 살았다. 선생은 1883년, 최초의 영어 학교를 최우등으로 수료하고 고종 황제의 영어 통역관을 시작으로 관직을 역임했다. 이후 독립협회와 대한협회 등 시민운동을 통해 민족의 주권을 지키고자 했고 황성신문을 창간해 초대사장을 지낸 언론인으로서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일제강점기에는 교육을 통한 구국의 일념으로 활동했다.

▲ 상공에서 바라본 한서 남궁억 기념관 전경. (사진=정동주 사진전문 기자)
▲ 상공에서 바라본 한서 남궁억 기념관 전경. (사진=정동주 사진전문 기자)

1918년에는 강원도 홍천 모곡리로 낙향, 모곡교회와 모곡학교를 설립하고 1백여 곡의 애국가요와 함께 역사책을 집필하고 30만주의 무궁화 묘목을 심고 가꾸어 전국 각지로 보급했다. 그러나 '무궁화 사건'으로 1933년 11월 수감되어 옥고를 치르게 되면서 그 후유증으로 1939년 4월 5일 만 77세에 운명하기에 이른다. 이후 1977년 선생에게는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선생은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내내 단 한 번도 굴복하지 않고 독립을 위해 일했던 불굴의 지도자였다. 기념관에는 남궁억 선생의 저서 '조선이야기' '한글서체교본' '가정교육 교육월보' 등이 있으며, 무궁화 사건을 취조한 장면과 재판 기록 20권도 있다. 더불어 남궁억 선생의 궁서체·붓글씨와 그가 받았던 상장들도 전시되어 있다.

▲ 남궁억 선생의 모습. (사진=정동주 사진전문 기자)
▲ 남궁억 선생의 모습. (사진=정동주 사진전문 기자)

이처럼 깊은 역사가 있는 무궁화마을에는 전통적인 풍경과 함께 역사적인 문화가 공존한 농촌체험을 즐길 수 있는 소규모 테마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에는 먼저 과거와 현재가 공존(共存)하고 어른과 아이가 공감(共感)할 수 있는 체험들이 있다. 할아버지가 손자손녀에게 가르쳐주듯 애정이 듬뿍 담긴 말로 짚풀공예(계란꾸러미 만들기)를 차근차근 가르쳐준다. 또 고소한 인절미를 맛보면서 이곳의 명물인 찰옥수수와 고구마를 수확하는 등 다양한 체험들이 기다리고 있다.

▲ 떡메치기 체험. (사진제공=무궁화마을)
▲ 떡메치기 체험. (사진제공=무궁화마을)

또한 관람차를 타면서 신나게 마을을 여행하고 마음까지 맑아지는 트래킹 길을 오르며, 맨손으로 메기를 잡고 카약을 타고 배바위에 가보는 등 사계절 내내 감성을 자극하는 체험들도 있다. 특히 무궁화의 어린잎과 꽃으로 차를 만들어 마셔보고 나만의 색깔이 있는 무궁화 우산도 만들어 보면서 특별한 추억을 쌓을 수 있다.

실제 체험마을로 들어서면 다양한 색을 입고 있는 무궁화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남궁억 선생 기념관 역시 무궁화들로 둘러싸여 있다. 마을 곳곳에는 옥수수 밭이 있는데 공기가 맑아 이곳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힐링이 될 수 있다.

▲ 카약을 타고 있는 아이들. (사진제공=무궁화마을)
▲ 카약을 타고 있는 아이들. (사진제공=무궁화마을)

이러한 무궁화마을 체험프로그램을 총괄하고 있는 이강목 위원장을 만나 무궁화마을과 한서 남궁억 기념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한서 남궁억 기념관 전경과 이강목 위원장. (사진=정동주 사진전문 기자)
▲ 한서 남궁억 기념관 전경과 이강목 위원장. (사진=정동주 사진전문 기자)

 

Q. 위원장님, 안녕하세요? 이곳 '한서 남궁억 기념관'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한서 남궁억 선생 기념관은 일제강점기 때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몸 바쳐 일했던 남궁억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입니다.

이곳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하던 일들이 무궁화를 전국에 보급하는 운동인데요, 일제의 눈을 피해서 전국에 무궁화를 보급할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이 일본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무궁화를 공급하는 것이었습니다.

뽕나무 묘목과 무궁화 묘목이 비슷합니다. 선생께서는 뽕나무 묘목에 무궁화 묘목을 섞어서 전국에 보급을 해서 그 다음해에 전국에 무궁화가 피는 그러한 일들을 하셨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일본 관헌에 붙잡혀 감옥에 투옥되고 결국 그곳에서 돌아가시게 됩니다.

▲ 이강목 위원장님이 가장 좋아한다는 남궁억 선생님의 구절. (사진=정동주 사진전문 기자)
▲ 이강목 위원장님이 가장 좋아한다는 남궁억 선생님의 구절. (사진=정동주 사진전문 기자)
▲ 무궁화를 들고 있는 남궁억 선생. (사진=정동주 사진전문 기자)
▲ 무궁화를 들고 있는 남궁억 선생. (사진=정동주 사진전문 기자)
▲ 남궁억 기념관 내부 모습. (사진=정동주 사진전문 기자)
▲ 남궁억 기념관 내부 모습. (사진=정동주 사진전문 기자)

 

Q. 기념관이 자리한 무궁화마을에 대해서도 소개 부탁드립니다.

무궁화마을은 홍천군 서면 모공리에 위치해 있고요, 남궁억 선생의 얼을 이어받아 이 마을의 무궁화를 전국에 보급하는 운동을 저희가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년 학생들이 오면 무궁화 묘목을 화분에 심어서 가지고 가서 가정에서 무궁화나무를 키워서 꽃을 피게 하는 그런 역할들을 하고 있고요.

특히 요즘 일본의 경제전쟁에 의해서 우리나라가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때인지라 독립을 위해서 일본사람들과 투쟁했던 선생의 모습이 더욱 더 간절해지는 그런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 마을은 학생들이 오면 나라사랑, 겨레사랑에 관한 일들을 많이 추진하고 있습니다.

▲ 무궁화 나무 심기 체험을 하고 있는 아이들. (사진제공=무궁화마을)
▲ 무궁화 나무 심기 체험을 하고 있는 아이들. (사진제공=무궁화마을)
▲ 우산에 무궁화를 그리고 있는 아이들. (사진제공=무궁화마을)
▲ 우산에 무궁화를 그리고 있는 아이들. (사진제공=무궁화마을)

 

Q. 마을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요?

저희뿐만이 아니라 광역사업으로 지원을 받은 곳이 전국적으로 150개 군데 정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책적인 후속조치가 전혀 되지 않아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있고 거기에 운영체제라든지 그에 뒤따르는 지원책이 전혀 없다보니 마을에서 그걸 감당하기가 매우 힘든 상황입니다.

또 무궁화마을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만 행정적인 뒷받침이 되지 않으니까 이 무궁화를 전국에 알리는 데 한계를 가지고 있고요. 그래서 저희 마을 사람들끼리 많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만 행정적인 뒷받침이 좀 더 필요한 상황입니다.

또 농림부, 교육부와 MOU를 체결하고 이곳을 인성학교로 지정했는데요, 현재 전국의 학생들이 이곳에 와서 인성교육의 장으로 활용해야 하는데 지금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아쉬운 대목입니다.

이곳에서 한서 선생의 얼을 이어받아 무궁화보급 운동을 하려고 해도 어떤 장소라든지, 학생들이 방문할 수 있는 콘텐츠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현재 비어있는 시간이 너무 많습니다. 교육부에서 이런 애로사항에 좀 더 관심을 갖고 학생들의 인성교육의 장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저희가 마을을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하늘에서 본 무궁화 마을 전경. (사진=정동주 사진전문 기자)
▲ 하늘에서 본 무궁화 마을 전경. (사진=정동주 사진전문 기자)

 

Q. 앞으로 무궁화마을을 어떻게 이끌어갈 계획이신가요?

현재 무궁화마을 체험관을 통해서 전국의 많은 학생들이 무궁화 사랑, 나라사랑, 겨레사랑에 대한 마음을 갖게 하는 일을 해나갈 계획입니다. 나라꽃 무궁화를 전국에 보급할 수 있는 그러한 일들을 할 수 있는 마을, 일본과 무역전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작금의 시대에, 이럴 때 일수록 더욱 더 무궁화를 통해 이 나라가 일본을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기르는 데에 일조하는 그런 교육의 장으로 이 마을을 잘 가꾸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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