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 지상주의’에 빠진 대한민국
‘젊음 지상주의’에 빠진 대한민국
  • 허수빈 기자
  • 승인 2022.01.04 13:0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초고령화를 앞둔 한국 사회를 바라보며

너의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닌 것처럼,

나의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영화 ‘은교’ 중에서

(내외방송=허수빈 기자) 한 해를 넘기며 문득 젊음에 대해 생각해봤다. 젊음과 늙음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오롯한 젊음을 규정하는 기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확인하기 위해 법령을 들춰봤지만 법적인 기준도 제각각이었다. 대통령령은 15~29세로, 청년의회는 19~39세로 학계는 20~39세로 젊음을 규정하고 있다. 차이는 있지만 대략 1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 정의되는데 기간을 따져보면 20년이 채 안 된다. 청춘의 몸으로 인생의 8할을 살 수 있다면 100년도 짧게 느껴질텐데 수명이 길어질수록 청춘은 더 아쉽기만 하다.

푸를 청(靑)자에 봄 춘(春)자를 쓰며 완연한 봄을 뜻하는 청춘은 스치듯 지나가는 봄처럼 찰나와 같다. 염원하던 100세 시대가 마냥 반갑지 않은 이유는 여전히 청춘은 순간인데 늙음의 시간만 길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젊음의 기준은 상대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보편적 기준이 적용되는 사회에서는 보편의 젊음만을 인정할 뿐이다. 20살이 되면 성인이 되고 60살이 되면 퇴직을 해야 하는 것처럼 사회는 재단된 숫자로 인생의 정도를 판단한다. 그렇기에 초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젊음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귀해진다. 비단 신체적 노화와 아쉬움 때문만은 아니다. 젊음이라는 단어에는 건강, 사랑, 도전과 창조, 가능성 같은 역동적이고 진보적인 상징이 담겨있다.

따라서 젊음을 잃는다는 것, 다른 말로 늙어간다는 것은 그 안에 의미를 상실하는 과정과도 같다. 이러한 면에서 상실의 문제는 인간의 존엄성 훼손과도 연결된다. 개개인의 가치로 인정받는 자본주의 개인화 사회에서 창조적 기능이 결여된 존재가 되는 것, 그렇기에 사회에서 불필요한 잉여물이 되는 것은 단순한 상실 이상의 공포를 안겨준다. 그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는 무가치한 존재론적 좌절이다.

젊음에 초점 맞춰진 사회

2021년 기준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857만명대로 집계됐다. 전체 인구의 14% 가량을 차지하는 수준이다. 통상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된다. 한국은 이미 2017년 비중이 14.2%를 기록했고 증가 속도는 급격히 빨라지고 있다. 현재 추세대로면 50년 뒤에는 인구의 45%를 노인이 차지하게 되고 2056년부터는 생산연령인구(15∼64세)보다 부양해야 할 인구가 더 많아진다. 노인은 늘고 젊은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결과적으로 총인구수는 2020년 기준 5184만명에서 향후 10년간 연평균 6만명 내외로 감소해 2030년 5120만명선이었다가 2070년에는 3766만명으로 1979년 수준으로 퇴보할 것으로 예측된다.

생산인구 소멸은 국가의 존폐에 영향을 미친다. 일할 사람보다 부양해야 할 사람이 많아지면서 부양비 부담이 증가하고 사회적으로도 경제를 지탱할 인력이 고갈되기 때문이다. 일명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갈 ‘쓸모’있는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다. 미래 없음에 대한 불안은 문제 해결 방향을 자연스럽게 젊음의 확대로 설정하고 정부는 수많은 대책을 내놓고 있다.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2005년부터 13년간 정부가 해결을 위해 투입한 금액은 268조 90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출산율 증가를 목표로 투입된 예산은 약 150조원으로 전체 예산에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결과는 ‘실패’였지만 출산장려금 지원 및 출산 축하용품 지원, 산모와 신생아 건강관리, 육아휴직 확대까지 정부가 쏟아낸 정책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청년 정책 비용도 만만찮다. 정부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에 대한 청년 일자리와 주거, 교육, 복지, 문화 지원 확대 계획을 내놓았다. 올해는 22조원이 투입됐고 2022년에는 23조 5000억원이 비용으로 집행될 예정이다. 반면 노인복지 예산은 올해 13조원으로 청년 정책 비용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예산 액수가 말해주듯 국가의 관심은 젊음에 쏠려 있다. 노인 예산이 매해 증가하고 있지만 출산과 청년 복지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고 정책 다양성도 떨어진다. 정책은 틀니 지원, 양로시설 운영 지원 등 건강/의료에 치중되어 세분될 뿐이다. 이러한 정책 현황은 국가와 사회가 젊음과 늙음을 어떻게,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로 생각하는지를 보여준다. 노인은 돌봐야 할 대상 그 이상이 되지 못하며 생산적 가치나 미래 가능성을 부여받지 못한다.

이러한 현상은 대선에서도 드러난다. 여야는 선거를 앞두고 각종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 2030은 한국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새로운 세력으로 주목받으며 정부의 애정공세 대상이 되었다. 후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청년을 위한 공약을 발표하고 청년과 어울리기 위한 활동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는 청년 창업과 취업 확대, 기본소득 보장 등을 내세우며 청년에게 다가가고,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후보는 일자리 창출과 학습권 보장, 청년도약계좌 지원 등을 내놓으며 2030 표심 잡기에 나섰다. 아직 실현 가능한 단계로 정교화 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련 공약은 하루가 멀다 하고 추가되고 있다.

사라져가는 노인의 존재

그렇다면 노인 복지 공약은 어떨까. 노인을 위한 공약은 공백에 가깝다. 이 후보는 노인 기본소득 공약을 마련하겠다고 의지를 내비쳤지만 아직 진행된 것은 없다. 윤 후보는 한발 먼저 초고령사회를 위한 사회구조 개편 관련 ‘그랜드 공약’ 밑그림을 공개했고 이에 대해 세분된 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힌 상태이다. 그러나 청년 정책과 비교해 발표 시기가 뒤처져 있으며 공약의 비중과 다양성도 비교되는 면이 있다. 노인에 대한 상대적 무관심은 비단 후보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약이란 사회적 이슈와 대중의 관심에 비례해 만들어지는바, 사회의 시선에서 벗어나 기획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청년 공약에 관해 물었을 때 줄줄이 얘기하지만 노인 공약에 관해 물어보면 공약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지 못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선 공약은 젊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 기류를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젊음은 빛나고 가치 있는 것으로 늙음은 부수적이고 비생산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방송프로그램, 시장 마케팅, 노동 등 사회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가시화되어 있다. 대중매체에서 노인의 존재적 공백은 더 뚜렷이 드러난다. 매체의 노인에 대한 관심은 형식적인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TV와 온·오프라인에서 노인의 모습은 점점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 드라마에서 노인은 조연으로, 쇼핑몰에도 노인은 기타 범주 안에서만 취급된다. 뉴스를 봐도 노인학대보다는 아동학대가 더 문제시되고 크게 다루어진다.

대중은 청춘을 찬미하며 시장은 청춘을 향해 손을 뻗는다. 낡은 것보다는 새것이 좋고 스터디셀러보다 신규 베스트셀러에 더 관심이 가듯 가치의 흐름은 과거에서 미래로 향하기에 대부분 무언가를 판단할 때 경중이 미래에 치우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치우침의 정도는 다를 수 있다. 해외에서는 흔한 모습이지만 한국에서 80세 노인이 서빙하고 백화점에서 화장품을 판매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시니어 시장’ 개념도 이제 막 태동하는 수준이다.

대한민국은 고령화를 고통스러워하고 늙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역으로 젊음에 집착하는 ‘젊음 지상주의’에 빠져 있다. 노인은 이러한 젊음의 스포트라이트 속에 주변부로 밀려나 젊음의 문화에 꾸역꾸역 몸을 맞춘다. 그러나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닌 것처럼, 늙음도 잘못으로 받는 벌이 아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존엄하며 시간이 지난다고 존엄성이 훼손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늙음을 무가치하고 잉여로운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하나의 생산성을 가진 주체, 그리고 존엄성을 가진 주체로 바라볼 때 사회는 고령화 그리고 젊음 지상주의에 빠져 스스로의 미래를 불행하게 만드는 비극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이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법인 : (주)내외뉴스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04690
  • 인터넷신문등록일자 : 2017년 09월 04일
  • 발행일자 : 2017년 09월 04일
  • 제호 : 내외방송
  • 내외뉴스 주간신문 등록 : 서울, 다 08044
  • 등록일 : 2008년 08월 12일
  • 발행·편집인 : 최수환
  •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3 (뉴스센터)
  • 대표전화 : 02-762-5114
  • 팩스 : 02-747-5344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유진
  • 내외방송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내외방송.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nwtn.co.kr
인신위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