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 단상] 그들이 농담을 시작하자...
[내외 단상] 그들이 농담을 시작하자...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3.06.23 14:1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동현 문화부 부장.
임동현 문화부 부장.

비지스(Bee Gees)의 'I started a joke'를 듣는다. "내가 농담을 시작하자 온 세상이 울기 시작했어요".

가수는 노래한다. 자신의 농담으로 인해 온 세상이 눈물을 흘렸고 결국 자신이 한 농담처럼 '내가 침대에서 굴러떨어져 죽자' 세상이 되살아났다고. 즉, 자기의 농담이 수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입혔고 자기가 한 농담 그대로 본인이 죽으면서 모든 게 해결됐다는 이야기다. 속된 말로 '말이 씨가 된' 셈이다.

우리는, 아니 나 스스로도 간혹 말실수를 하게 되면 '농담이었어', '그냥 해본 소리야' 등의 말로 넘어가려고 한다. 물론 가벼운 경우에는 '말 좀 조심해서 해라'고 상대방이 주의를 주는 것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내가 무심코 한 말이 만약 다른 사람에게 비수가 된다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갈 수가 있다. '웃자고 한 이야기'가 결국 나를 죽이는 흉기가 된다.

프로축구 K리그 울산 현대의 선수들이 SNS를 통해 태국 축구 선수를 비하하는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들의 '놀림'의 대상이 된 태국 선수는 K리그에서 뛴 경력이 있는 선수였다. 태국의 네티즌들은 해당 선수의 SNS에 "우리는 당신의 인종차별 발언을 기억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남겼고 해당 선수도 자신의 SNS에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구호를 올렸다.

그런데 지난 22일 열린 상벌위에서 이들이 받은 징계는 '1경기 출장 정지, 제재금 1500만원'이었다. 사회적인, 국제적인 파장에 비하면 그야말로 '솜방망이'의 징계였다. 엄연히 연맹 상벌 규정에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선수에게 '10경기 이상 출장 정지, 1000만원 이상의 제재금 부과'를 하도록 돼 있기에 이들이 중징계를 받을 것은 기정 사실로 여겨졌다.

그러나 상벌위는 '둘 중 하나의 징계만 기준을 넘으면 된다'는 이유로 출장경기 기간을 1경기로 대폭 줄였다. 직접적인 발언이 아닌 'SNS 게시글'이었다는 점 역시 '솜방망이 처벌'의 이유였다.

선수들은 "반성하고 있다"고 했지만 진실한 반성의 모습으로 비춰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해당 선수에게 직접 사과한 선수가 없었다. 그들은 여전히 '장난 한 번 친건데, 농담 한 번 한 건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들이 농담을 시작하자 태국 선수와 태국 축구팬들은 큰 상처를 받았고 K리그 팬들의 마음에도 상처를 입혔다. 그래도 그들은 계속 축구를 할 것이다. 벌금만 내고 한 경기만 안 뛰면 그만이다. 결국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과연 이렇게 차별에 관대해도 되는 것일까? SNS로 한 것이기에 큰 문제가 아니라고 여겨도 되는 것일까? 

그렇지만 선수들과 상벌위를 비판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내고 싶지 않다. 어쩌면 차별에 관대한 이는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애인을 비하하고, 뚱뚱한 여성을 비하하고, 성소수자를 비하하고, 타국인을 비하해도 '뭐 웃자고 한 이야기인데'라며 넘어가고 웃었던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언젠가 나의 부주의한 말 때문에 내가 당하는 날이 온다.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차별을 당하게 된다. 자신이 한 농담 그대로 어처구니없는 최후를 맞은 노래 속 주인공처럼 말이다. 나부터 조심해야할 일이다. 


오늘의 이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법인 : (주)내외뉴스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04690
  • 인터넷신문등록일자 : 2017년 09월 04일
  • 발행일자 : 2017년 09월 04일
  • 제호 : 내외방송
  • 내외뉴스 주간신문 등록 : 서울, 다 08044
  • 등록일 : 2008년 08월 12일
  • 발행·편집인 : 최수환
  •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3 (뉴스센터)
  • 대표전화 : 02-762-5114
  • 팩스 : 02-747-5344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유진
  • 내외방송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내외방송.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nwtn.co.kr
인신위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