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천승환 사진작가 "잊혀져가는 관동대학살의 비극 알리는 것이 나의 사명"
[인터뷰] 천승환 사진작가 "잊혀져가는 관동대학살의 비극 알리는 것이 나의 사명"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3.09.1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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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사진전 개최 "남양군도 위안소, 사할린 조선인 학살도 알릴 예정"
천승환 작가와 그가 찍은 위령비 사진들. (사진=임동현 기자)
천승환 작가와 그가 찍은 위령비 사진들. (사진=임동현 기자)

(서울=내외방송) 지난 1일은 일본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지진 후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소문을 퍼뜨리며 일본의 경찰과 군인, 자경단이 일본 관동지역 곳곳에서 조선인을 학살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가 되는 날이다.

학살이 자행된 지 10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 사건은 제대로 된 진상조사, 진상 규명이 되지 않고 있다. 정확한 희생자 수와 명단조차 파악되지 않았고 이 학살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알려주는 이들도 많지 않다. 우리의 기억 속에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은 점점 사라져갔고 100주기를 맞은 올해는 때아닌 '추도식 참석' 논쟁으로 얼룩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려하는 사람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그 중 한 사람, 일본 곳곳에 있는 관동대학살 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비를 사진으로 담아내는, 관동대학살 사적지를 기록하고 있는 천승환 사진작가가 있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를 맞아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문화공간이육사에서 천승환 작가의 추모 사진전 <봉분조차 헤일 수 없는 묻엄>이 열리고 있다. 당초 오는 23일까지 전시가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많은 이들의 관심에 힘입어 전시가 연장이 됐다. 우리가 잊고 있던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아픔을 다시 떠올릴 기회가 생긴 것이다. 천승환 작가의 노력을 여기에 전한다.

조선인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위령비. (사진=임동현 기자)
조선인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위령비. (사진=임동현 기자)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를 맞아 이번에 추모사진전을 열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알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디테일하게 할수록 '내가 건드리는 것이 맞을까?', '내 행동 하나 때문에 역사를 왜곡해서 보는 분들이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도 들었다. 그래도 사진과 전시를 통해 많은 분들에게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알려줄 수 있게 되어 해야할 사명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희생자 위령비를 찍게 된 계기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기에 관동대지진에 대해서는 알고는 있었지만 자세하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17년에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을 봤는데 그 영화에서 15분 정도 관동대지진 학살이 묘사됐었다. 마침 그 해에 일본 도쿄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 영화 장면이 떠올라 관동대지진과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았고 상징성있는 위령비들을 찾게 되면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2019년에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우리 민족의 역경과 고난 극복의 역사를 주제로 전시를 했고 그 전시에서 관동대지진 사진을 같이 전시했는데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 그 때 처음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고 마음먹고 2023년이 100주기가 되니 지금부터 위령비들을 찍어야겠다고 했는데 코로나가 터졌다. 그래서 지난해까지 준비를 해왔고 이번에 다녀와서 전시를 하게 됐다. 

이전에는 주로 어떤 사진들을 찍었는지

제가 역사를 전공하다보니 역사에 관심이 많고 여행도 좋아한다. 그리고 공간을 찍는 것을 좋아하는데 중국에서 위안부들이 있었던 위안소나 하얼빈에 있는 독립운동의 흔적,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이준 열사의 흔적과 베트남 한국인 민간인 학살 위령비 등을 많이 찍었다. 이전에 했던 작업들과 맞물리면서 이번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위령비도 찍게 됐다.

위령비를 보고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의 느낌이 어떤지 궁금하다 

처음에는 숙연한 마음도 들고 했는데 하도 많이 찍다보니 요즘은 셔터를 누를 때는 별 생각이 들지 않는다(웃음). 다만 사진을 찍기 전이 더 경건한 마음이 든다. 

전시장 벽에도 적혀있지만 경건한 마음으로 주변을 청소하고, 의복을 단정히 하고, 향과 술을 올리는 최소한의 예를 갖춘 후에 사진을 찍는다. 청소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아이고' 소리가 나기도 하는데(웃음) 비석들의 크기가 제각각 다르다. 굉장히 작은 비석도 있고 제 키보다도 큰 비석도 있다. 위령비 주변을 청소하면서 여러가지 생각에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나온다.

제가 발견했던 위령비를 찍을 때는 내용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찍었고 뒤늦게 비석이 세워진 상황을 알게 됐다. 마달출이라는 이름의 조선인이 죽은 것도 있지만 가고시마현에 사는 미야와키 다쓰시라는 일본인이 왜 죽었을까를 생각해보니 일본말을 제대로 못하면 무조건 조선인으로 간주하고 조선인은 무조건 죽여야하는, 죽여도 되는 존재로 인식됐다고 봤다. 조선인은 죽어도 된다는 의식이 표출된 사건이고 그로 인해 많은 일본인들까지도 희생됐다는 것에 더 분노했던 것 같다. 

조선인 희생자 마달출과 일본인 희생자 미야와키 다쓰시의 묘. (사진=임동현 기자)
조선인 희생자 마달출과 일본인 희생자 미야와키 다쓰시의 이름이 있는 비석. (사진=임동현 기자)

앞에서 작가님이 위령비를 발견했다고 했는데 위령비를 찾아낸 과정을 알고 싶다

관동지역이 6개 현에 1개 도, 총 7곳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위령비를 찾았을 때는 5개 밖에 없었다. 나머지 두 곳에는 없는건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검색을 하다가 조선인의 묘가 있다는 옛날 신문 스크랩을 봤는데 엄청 옛날 사진이라 찾아가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도 멀어서 신칸센을 타면 왕복 15만원의 교통비가 든다. 하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일단 가보기로 했고 공동묘지를 예닐곱 바퀴 돌며 위령비를 찾아내려고 했다.

그런데 사진에는 뒤에 빌딩 같은 것이 있어서 헤맸는데 알고 보니 사진의 화질이 좋지 않아 주변 환경이 빌딩처럼 보였던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마달출과 미야와키 다쓰시의 이름이 있는 비석을 찾아냈다. 일본 내에서는 이미 발견이 되었지만 한국에 계신 분들은 이 비석의 존재를 다들 몰랐다. 

'불령선인(不逞鮮人)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데 프로젝트 내용도 궁금하지만 일제가 우리나라 사람들을 비하해서 부른 표현인 '불령선인'을 프로젝트 명으로 내세운 이유가 궁금하다

일단 프로젝트 내용은 정말 간단하다. 사적지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이를 전시하고 출판까지 하겠다는 게 이 프로젝트의 목표다. 어려운 부분이 있기는 하겠지만 출판을 꼭 하고픈 마음이 있다.

프로젝트 이름에 대해서는 연구하시는 분들도 염려를 하신다. 너무 자극적이지 않냐는 말씀도 하시고 차별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 적절하지 않다는 말씀도 하신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자극적인 용어이기에 사람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고 그 차별의 의미를 같이 공유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지금의 저도 '불령선인'이다. 일본이 숨기려는 역사를 드러내려는 사람이다. '불령선인의 후예'이기에 우리의 안타까운 역사를 들추어내겠다는 의미가 있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이 100년이 된 지금까지도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기에 국내에 미치는 영향이 없었기에 그렇다. 일본 내에서는 자연재해였고 또 그로 인한 희생을 직접 겪었기에 변화가 컸지만 조선에서는 크게 와닿지 않은 일이었다. 국내에 영향이 없었으니 역사 교과서 등도 이 부분을 소홀히 다루게 됐다.

또 학살에 대한 진상 규명이나 이를 밝히려는 노력이 많이 부족한 점도 한몫하고 있다. 정확히 몇 명이 죽었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빠른 시일 내에 진상 규명 노력을 했어야하는데 너무나 시기가 늦어버렸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는 거다.

조선인 희생자 강대홍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 엿장수로 일했던 그를 기리기 위해 비석 앞에 사탕이 놓여있다. (사진=임동현 기자)
조선인 희생자 강대홍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 엿장수로 일했던 그를 기리기 위해 비석 앞에 사탕이 놓여있다. (사진=임동현 기자)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가 윤미향 무소속 의원의 추도식 참석 문제로 '정치 공방'으로 얼룩진 느낌이다

이 문제가 이념을 가릴 문제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윤 의원이 외교부의 지원을 받아 일본에 와서 조총련 행사에 참여했다는 것이 문제라고 하는데 거류민단도 추도식을 하기는 했지만 초청한 사람만 참석하는 비공식 행사로 치뤄졌고 윤 의원은 초대받지 못했다. 당연히 상징성이 있는 곳에서 추모를 한 것 뿐인데 이를 정치적 공방으로 부각시킨 것은 결국 희생양을 만드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 예정인지

일단 앞에서 말한대로 출판을 꼭 하고 싶고 사람들에게 점점 잊혀져가는 것을 알리기 위해 더 노력하려 한다. 사이판에 있는 위안부 동굴을 찾아내서 사진을 찍었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남양군도의 위안소를 찾아 사람들에게 알리는 활동을 하려하고 사할린에서도 조선인 학살이 있었다고 하니 제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이 비극을 알리려한다. 사할린 학살은 저도 아직 잘 모르기에 더 자세하게 알아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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