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두 마리 낙타'처럼 서로를 안았던 두 여자, 애니와 헬렌
'사막의 두 마리 낙타'처럼 서로를 안았던 두 여자, 애니와 헬렌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3.12.08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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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기획공연 '나는 재미있는 낙타에요'
국립극장 기획공연 '나는 재미있는 낙타에요'. (사진=국립극장)
국립극장 기획공연 '나는 재미있는 낙타에요'. (사진=국립극장)

(내외방송=임동현 기자) 앤 설리번과 헬렌 켈러.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승과 제자의 이름이다. 하지만 동시에 몸과 마음의 장애를 딛고 일어선 두 여인의 이름이기도 하다. 불우한 가정 환경 속에서 시력까지 잃으며 유년기를 보내야했던 앤 설리번,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생후 19개월만에 시력과 청력을 잃은 헬렌 켈러. 환경과 나이, 사제지간이라는 차이가 분명히 있지만 이들은 어느덧 동지가 되어 서로의 삶에 희망을 불어넣기 시작한다.

국립극장이 기획공연으로 내놓은 음악극 <나는 재미있는 낙타에요>(12.6~10 국립극장 달오름극장)는 한글 자막과 음성해설, 수어통역이 제공되는 '무장애공연'이다. 앞서 작은 키 때문에 고민하는 쌍둥이 형제의 재미있는 모험을 그린 무장애공연 <합★체>가 호평을 받은 데 이어 이번에는 배우 2명과 수어통역사 2명, 그리고 타악과 전자음악, 마림바와 우리의 악기인 북과 장구, 판소리가 120분간 무대를 채운다.

제목인 <나는 재미있는 낙타에요>는 헬렌 켈러가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낙타를 흉내내면서 한 말을 옮긴 것이다. 그리고 낙타는 헬렌(정지혜 분)과 애니(한송희 분)가 서로 공감하는 것을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무대의 두 주인공 애니와 헬렌은 고비사막을 걷는 두 마리의 낙타에 비유된다. 영하 30도에서 영상 4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를 견디며 살아가는 두 낙타는 너무 더운 날씨에는 서로 몸을 기대어 포개며 체온을 내리곤 한다고 한다. 사막의 공기보다 낙타의 몸이 더 시원하기 때문이다.

공연은 애니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시작해 시력을 잃었던 애니가 퍼킨스맹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하면서 시력을 회복하고, 헬렌의 가정교사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헬렌 역을 맡은 배우 정지혜는 애니의 남동생 지미, 고아원에서 만난 친구 넬라, 맹학교의 홉킨스 선생님, 해설자를 연기하며 애니와 헬렌의 공감대를 관객들에게 이해시키는 역할을 한다.

공연은 정지혜(위), 한송이 배우의 2인극이다. (사진=국립극장)
공연은 정지혜(위), 한송희 배우의 2인극이다. (사진=국립극장)

애니와 헬렌의 에피소드는 사제지간의 교육이라기보다는 두 여성이 서로를 알아가고 공감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자기 멋대로 살아가던 헬렌은 애니와 함께 하면서 점점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마침내 차가운 물을 느끼는 순간 '물'이라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낙타의 흉내를 내고 풀 이름, 나무 이름을 계속 물어보면서 헬렌은 애니를, 애니는 헬렌을 서로 의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헬렌은 '장애를 극복한 푸른 눈의 천사'로 세상의 찬사를 받게 된다.

그러나 헬렌이 세계 각지에서 강연을 하는 동안 세간에서는 '사회주의자', '장애인이 뭘 안다고'의 굴레를 계속 씌우고 헬렌이 한 쇼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통령을 풍자한 것을 두고 원색적인 비난을 가하게 된다. 이 상황은 헬렌, 아니 소리꾼 정지혜의 창을 통해 전달된다. 정지혜의 창은 헬렌에게 가해지는 세상의 폭력과 더불어 그 폭력 속에서도 자신이 하고픈 말을 하고 자신의 생각을 지켜나가겠다는 헬렌의 의지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역할을 한다.

극은 헬렌이 나이가 들어 쓰러진 애니를 일으켜세우고 낙타처럼 계속 서로의 몸을 포개며 사는 것으로 이야기를 맺는다. 실제로 앤 설리번은 말년에 다시 시력을 잃게 되면서 헬렌 켈러에게 많이 의지를 했다고 한다. 그렇게 이 둘은 평생 동지로, 평생 친구로 살아왔던 것이다. 정말로 사막에 사는 두 마리의 낙타처럼 말이다.

(사진=국립극장)
(사진=국립극장)

<나는 재미있는 낙타에요>는 배우들이 지문을 읽어주고 수어와 촉지화(수어의 일부로 손가락으로 글자를 표현하는 '지화'를 시청각장애인이 손으로 만져 뜻을 파악하는 방법)를 활용한 안무와 무대 화면, 흥겨운 연주와 창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아마도 공연을 보면서 애니와 헬렌의 교감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교감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즐거울 일일 것 같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120분이라는 시간이 조금 길다고 생각할 수 있다. 뒤로 갈수록 이야기의 속도가 늘어지는 듯한 느낌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자신의 색깔을 보여주는 한송희, 정지혜 두 배우와 이들의 이야기를 수어로 쉼없이 전하는 김홍남, 정지현, 이수현 수어 통역의 열정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이 음악극의 가치는 충분히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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