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구와 대화를 나누어보라, 자연을 보는 눈이 바뀐다"
[인터뷰] "지구와 대화를 나누어보라, 자연을 보는 눈이 바뀐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4.02.28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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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관 건국대 지리학과 교수가 전하는 '예술지리학'의 세계
박종관 건국대 지리학과 교수. (사진=임동현 기자)
박종관 건국대 지리학과 교수. (사진=임동현 기자)

(내외방송=임동현 기자) 지리학과 미술. 얼핏 유기적인 관계가 떠오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산의 형태, 물의 흐름, 태양의 중심, 땅 위에 사는 인간의 패턴을 그린다고 생각해보면 조금씩 관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를 구성하는 빛과 물, 땅, 인간이 작품의 소재가 되고 주제가 된다. 그리고 이를 표현하는 방법은 점점 더 다양해진다. 

'지리학에 대한 약간의 지식만 있어도 작품은 달라질 것이다'. 박종관 건국대학교 지리학과 교수가 선보인 '예술지리학'의 중심이 되는 말이다. 그는 지난 20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인전 <4 SPHERES>(지구 4권역)를 열었다. 

그림을 통해 대중들과 지구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연 이 전시는 빛, 물, 땅, 인간 네 섹션을 통해 지구에 대한 다양한 선문답을 관람객들에게 던졌다. 그리고 관람객들은 자신 나름대로의 '지구에 대한 이야기'를 가슴에 담아갔다.

지리학과 교수, 미술 작가,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환경전문기자'. 다양한 활동으로 지구의 이야기를 전했던 그는 이제 정년을 맞아 작가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박종관 교수의 '예술지리학'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전시장인 인사아트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MAGNIFICENT HEAVY RAIN'. (사진=임동현 기자)
'MAGNIFICENT HEAVY RAIN'. (사진=임동현 기자)

<4 SPHERES> 전시회를 연 소감은?

우선 인사동 한복판에서 국내 최초로 예술지리학 전시회를 갖게 되어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었다. 이번 전시는 지리학자의 지구에 대한 추상 기록전이었다. 대중들에겐 이번 개인전이 다소 생소했을 것이다. 500호를 비롯해 전시장에 걸린 30여 점의 대형 작품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 지구를 말하고 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지구는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 하시는 '예술지리학'이란 무엇인지?

지리학은 지구 공간을 연구하는 과학이다. 지리학은 기후나 물, 지형 등을 살피는 자연지리학과 그 공간에서의 인간의 행위 패턴을 연구하는 인문지리학으로 나뉜다. 예술지리학(Art Geography)은 예술 작품의 지리적 영향을 탐구하고, 또 지리학의 구성요소를 예술 시각으로 구현하는 응용지리학 분야다. 

지리학의 모든 구성 요소는 예술지리학의 탐구 대상이다. 지리학에 대한 약간의 지식만 있어도 평면이나 입체 작품들은 그 내용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지리 공간을 해석하는 안목이 생기기 때문이다. 예술지리학이 중요한 이유다.

이제야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이 이해가 간다. '지리학에 대한 약간의 지식만 있어도 작품은 달라질 것이다'

코로나19 이전에 예술의전당에서 '우리땅 지리여행'이라는 강좌를 진행했었다. 5년간 전국 50군데를 다니며 지역성을 확인하는 답사 프로그램이었다. 지역의 자연경관을 토대로 영위해 온 주민의 삶의 방식도 함께 관찰했다. 이는 예술지리학의 중심 콘텐츠이기도 하다. 

'CAIRNS AUSTRALIA'. (사진=임동현 기자)
'CAIRNS AUSTRALIA'. (사진=임동현 기자)

지리학을 하시면서 미술 작가의 길을 걷고 계신데 작가의 길을 가게 된 계기가 있다면?

친구들과 정년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나중 산에만 다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얘기를 자주 했었다(웃음). 보다 생산적인 일을 하고자 했다. 그래서 찾아낸 게 그림이다. 현직에 있을 때 학자들과 학회에서 논문으로 지구 얘기를 했었다면, 정년 후에는 대중과 그림으로 지구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이다. 

내 칠판은 캔버스였다. 색분필과 마카는 훌륭한 그림 도구들이었다. 답사 때 그렸던 연필과 펜 스케치들은 소중한 아카이브 겸 에스키스였던 것이다. 지구를 세밀하게 분석하는 작품관을 일궈왔던 것이다.

선생님은 '우리나라 제1호 환경전문기자'이시기도 하다. 지리학과 미술 사이에 '환경기자'가 있다는 게 색다르다

지리학은 환경학이다. 대학의 모든 전공은 현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론화된 것이다. 환경학의 베이스는 지리학이다. 전문기자가 된 것은 1992년 아버지께서 '이것도 환경이네' 하시며 신문을 툭 던지신 것이 계기가 됐었다. 그 신문 1면에 환경전문기자를 찾는 사고(社告)가 실렸던 것이다. 박사학위가 있다고 특채가 된 것도 아니었다. 당시 환경처를 출입하면서 환경 기사는 르포로 작성해야 한다는 말을 기자실에서 자주 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 전시의 주된 내용과 주안점이 있었다면?

지구는 기권, 수권, 암석권, 생물권 등 4개 권역(sphere)으로 구성된다. 이번 <4 SPHERES> 전은 빛, 물, 땅, 인간 등 지구의 4권역을 주제로 삼고 있다. 각각의 섹션에서 '보이지 않는 빛은 어떤 색일까?' '움직이는 물은 추상일까, 구상일까?' '당신은 비행기에서 지구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가?', '지구 생물 중 가장 오만한 생명체(인간), 이 무표정을 깨뜨릴 레드썬은 없는 것일까?' 등의 선문답을 던졌다. 

전시의 주안점보다도 방문객들을 어떻게 편하게 모실까를 우선 신경 썼다. 작품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를 고민했다. 모름지기 작가는 손님들에게 전시장에 들어오길 잘했다는 만족감을 선사해야 한다. 갤러리를 배려하는 마음이 전시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THE GIANTS'. (사진=임동현 기자)
'THE GIANTS'. (사진=임동현 기자)

'지구를 살리려면 지금이 데드라인'이라고 하셨다. 왜 그런가?

지구는 죽어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코로나 같은 대형 악재를 만나 지구 생명선이 툭툭 떨어짐을 느낀다. 문제는 지구가 죽어가고 있는데 인간은 이에 대해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을 가장 '오만'한 생명체로 규정하고 인간의 무표정을 그린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생님이 생각하는 '지구의 미래'는?

암울? 조건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개인은 지구에 대해 감사함을 갖고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 지구환경 문제는 국제 정치가 해결해야 할 숙제이나, 한 가지 방법을 알려줄까? 지구와 대화를 해보라. 

예컨대 돌은 엄연히 살아있는 존재다. 흙도 마찬가지다. 지구 자연체 모두 살아있는 존재다. 대화를 나눠보라. 상대의 숨소리가 들릴 것이다. 자연물을 보는 시각이 달라질 것이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신설된 '여행지리' 개설 배경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박종관 교수가 관람객들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임동현 기자)
박종관 교수가 관람객들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임동현 기자)

현재 'the EARTH(디어스)'라는 네트워크를 결성해 공동 작업을 진행 중인데?

40세 미만의 젊은 설치미술 전문가들과 디어스를 만들었다. 그들에게 내 경험을 제공할 생각이다. 지구에 대한 자연과학, 인문학적 지식을 작품 속에 녹일 수 있다면 대단한 일이 될 것이다. 내년 상반기에 ‘해수면 상승’을 주제로 설치전을 기획하고 있다. 그들의 창작물에 양념 살짝 쳐주는 정도로 그냥 뒷바라지 역할만 해볼 생각이다.

이제 퇴임을 하시는데 앞으로 어떤 작품들이 나올 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어느 분이 저한테 작품에 너무 전공 색을 넣지 말라고 하더라. 또 색감이 통일되었으면 좋겠다는 코멘트도 있었다. 정말 감사드린다. 하지만 이번 전시전은 지구 기록전이다. 전공일 수밖에 없고 색감 통일도 무의미하다. 일반 회화전과는 다르다. 

내년쯤 단일 주제를 심층 표현한 추상전을 기획하고 있다. 그러나 흔히들 즐겨 말하는 ‘사유’는 아닐 것이다. 평범한 작가 노트로 지구를 따뜻하게 그려볼 생각이다. 예술지리학적 관점에서 화단에 잔잔한 동심원을 던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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