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보험 문제 많아...입증·심사·승인 모두 복잡·까다로워
산재보험 문제 많아...입증·심사·승인 모두 복잡·까다로워
  • 이지선 기자
  • 승인 2021.01.20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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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입증 책임은 재해자에게 있는데 동료 입증 돕다가 벌금형 받기도
‘업무상 질병’ 입증하려면 8단계 심사
일부 질병은 산재 승인까지 평균 330일 걸려...“적시에 못 도와”
▲ 우리나라 산재보험이 승인절차가 너무 까다롭고 복잡해 적시에 재해자를 돕기 힘든 심각한 상태로 드러났다. (사진=고용노동부)
▲ 우리나라 산재보험이 승인절차가 너무 까다롭고 복잡해 적시에 재해자를 돕기 힘든 심각한 상태로 드러났다. (사진=고용노동부)

(내외방송=이지선 기자) 우리나라에서 산재보험은 현재 승인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복잡하다. 산재보험은 일터에서 사고를 당하거나 업무로 인한 질병을 얻은 노동자에게 신속·적절한 보상을 지급하고 이들이 일터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그러나 승인 절차가 문제다. 재해자를 제대로 돕지 못하고 있다. 현미향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산재보험은 절차가 복잡하고 심사·승인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등 본래 취지와 달리 재해자 중심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산재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산재 입증→심사→승인' 세 단계를 거쳐야만 하는데 매 단계 모두 통과가 쉽지 않다.

우선 산재를 당한 재해자는 업무와 사고, 질병 등 재해간의 인과관계를 스스로 입증해야만 한다.

업무상 사고로 산재 보상을 신청하는 경우에는 재해와 업무 간 인과가 명확해 입증이 쉽다. 그러나 질병으로 인한 산재 보상은 조금 다르다. 입증이 어렵고 심사가 무척 까다로워진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질병으로 인한 산재 신청의 유형별 승인율은 직업성 암 71.1%, 근골격계 질환 69%, 정신질환 65.6%이었다. 뇌심혈관 질병이 38.9%로 가장 낮은 승인율을 기록했다. 산재 보상 신청자 10명 중 적게는 3명에서 많게는 6명이 불승인 통보를 받은 셈이다.

입증 책임이 있는 재해자가 사업장 내에서 수행하던 업무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촬영하는 등 자료 수집 과정에서 사업주와 마찰이 빚어지기도 한다.

서현수 금속노조 충남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노동안전보건부장은 지난해 8월 근골격계 질병을 앓는 한 조합원을 대신해 작업 현장을 촬영하러 항만 원료 부두에 갔다가 건조물 침입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부두 입구에서 노조 직책과 출입 목적을 설명했으나, 항만이 보안 시설이라는 이유로 무단 침입으로 간주됐다. 50만원 벌금의 약식명령을 받은 서씨는 이에 불복하고 정식재판을 청구해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이는 현행법에 노동조합 간부가 사업주를 상대로 산재 관련 자료를 요구할권한이나 사업장 출입 권한이 명시돼 있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지난해 8월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노동자가 산재를 신청할 때 사업주가 재해 입증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이를 위반할 시 처벌하는 것을 내용의 산재보상보호법 일부대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현행 법규에 따르면 재해자가 산재 입증에 필요한 자료를 구하는 과정에서 사업주의 조력 의무가 명확하게 명시돼 있지 않다.

박다혜 금속노조법률원 변호사는 “산재의 입증 책임이 재해자에게 있는데, 현행법에는 사업주의 조력에 대한 모호한 규정만 있다”며 “사업주가 구체적으로 자료를 제공하고, 증거 촬영 시 사업장 출입을 허용하는 등의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재를 입증하는 자료를 모아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하면 또 까다로운 심사과정이 기다린다. 일례로 업무상 질병을 인정받기 위해선 최장 8단계에 이르는 산재 심사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복잡한 심사 과정에도 불구하고 재해자 작업 현장의 실태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근로복지공단이 실시하는 재해 현장 조사의 경우 1~2시간만 진행되는 탓에 노동자가 매일 다른 일을 하거나 오전, 오후 업무가 다른 경우 자료를 수집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산재를 유발하는 신체적, 정신적 부담이 큰 업무 대신 비교적 부담이 적은 업무만 조사에 반영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사 과정이 지나치게 복잡한 탓에 산재 재해자를 제때 돕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근로복지공단의 2018년도 자료에 따르면 사고로 산재 보상을 신청하고 승인 여부를 통보받기까지 평균 17일이 걸렸지만, 직업성 암은 330일 소요됐다. 정신질환은 181.8일, 근골격계는 116.4일, 뇌심혈 관계는 105.6일이 걸렸다.

같은 해 근로복지공단 질병판정위원회가 심의한 1만6건의 업무상 질병 판정의 경우 53.4%에 달하는 5347건이 심의 과정에서 20일 넘게 걸렸다. 60일 넘게 걸린 비율도 8%에 달한다.

산재보상보험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질병판정위원회 심의는 20일 이내에 마쳐야 하며, 부득이한 경우 심의기간을 최대 10일 연장할 수 있다. 과반이 넘는 경우에서 이러한 규정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산재 심의가 지연되는 탓에 많은 재해자가 수입 없이 치료를 받고 있고 생활고를 경험한다. 이 때문에 재해자들은 산재 승인을 기다리는 동안 치료를 받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적금·보험을 해지하거나, 대출을 받기도 한다. 산재가 승인돼 일을 쉰 기간만큼 휴업급여를 보상받는다고 해도 평균임금의 70%만 받을 수 있다.

지난 2019년 8월 마산창원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이 국회 토론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산재 재해자 중 74.8%가 생계의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산재 승인 여부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안정적으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재해자 또한 72.3%에 달했다.

노동계는 재해자들이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받게 한다는 산재보험의 원래 취지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하며 그 심사 절차를 간소화하고 신속한 승인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도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심사과정 단축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미향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산재 승인 여부를 결정하기까지 과도하게 반복되는 절차를 축소하고, 전문의가 판정한 질병을 지나치게 반복 검토하는 절차 또한 간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무상 질병의 경우 많게는 5번에 걸쳐 10명이 넘는 전문의의 검토를 받도록 한 복잡하고 까다로운 현행 산재 심사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현미향 사무국장은 “재해자가 산재 보상을 신청했을 때 가능한 빨리 해결해 주고, 사회 복귀를 위한 치료에 전념할 수 있게 해줘야 사회 보험으로서 의미가 는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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