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한 현실'에 '자신만의 기괴함'으로 맞서는 '1936년생 젊은 작가'
'기괴한 현실'에 '자신만의 기괴함'으로 맞서는 '1936년생 젊은 작가'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3.08.2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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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김구림'
김구림 작가. (사진=임동현 기자)
김구림 작가. (사진=임동현 기자)

(서울=내외방송) 1936년생. 미술대학을 자퇴하고 독학으로 미술 공부. 한국 최초의 '일렉트릭 아트'와 실험영화. <현상에서 흔적으로>로 대표되는 대지미술과 파격적인 퍼포먼스. 영국 테이트 모던에서 잭슨 폴록, 앤디 워홀 등 세계적인 행위예술가와 어깨를 나란히 한 작가. 한국 실험미술의 선구자이자 살아있는 역사...

김구림. 그의 미술세계는 '전위'와 '파격'의 연속이었다. 회화, 설치, 판화, 퍼포먼스를 넘어, 영화, 비디오아트, 무용, 연극, 음악 등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작품들에 해외 미술 관계자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국내에서 '작가 김구림'은 '아웃사이더'였다. 

특정대학 출신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던 한국의 미술계는 그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미술관을 천으로 묶는 퍼포먼스는 2023년에도 여전히 미술관으로부터 거부당하고 있다. 이전의 미술을 부수고 새로운 '전위'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 그리고 지금도 그 세계를 걷고 있는 작가 김구림. 하지만 우리는 아직 '김구림'이라는 작가를 완전히 알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난 25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구림>전은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김구림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 그리고 보수적인 시각과 인맥으로 둘러싸인 한국 미술계에 홀로 맞선 한 작가의 노력을 볼 수 있는 소중한 전시다.

87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신작을 발표하고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김구림은 '1936년생 젊은 작가'다. '영원한 현역' 같은 영혼없는 찬사는 그에게 아무 쓸모가 없다. 그는 지금도 보여주고 있고 맞서고 있기에 충분히 '젊은 작가'라고 불릴 만 하다.

한국 실험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손꼽히는 <1/24초의 의미>(1969), 80년대부터 시작한 <음과 양> 시리즈, 잔디를 태우고 새로운 잔디가 돋아나는 과정을 보여준 <현상에서 흔적으로>(1970), 비디오 매체의 특성을 살린 <걸레>(1974) 등 김구림을 대표하는 작품들과 함께 다양한 아카이브, 그리고 <음과 양>을 오브제한 소품 등이 김구림 작가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음과 양 : 자동차'. (사진=임동현 기자)
'음과 양 : 자동차'. (사진=임동현 기자)

그는 이번에 두 편의 신작을 내놓았다. 노란색 자동차가 반으로 갈라져 있다. 그 사이에는 신발들이 수북히 쌓였고 해골도 보인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의미힌다. 순식간에 자동차 안에서 혹은 이 세상에서 갑작스럽게 죽고 만, 그리하여 현장에 신발만 남겨진 채 사라져야했던 사람들. <음과 양 : 자동차>가 보여준 현실의 비극이다.

설치미술 <음과 양>은 수많은 스크린에 각각의 뉴스 화면이 반복해서 나오고 있다. 코로나 방역, 우크라이나 침공, 각종 경제 뉴스 등이 끊임없이 나온다. 각각의 정보들이 여러 채널을 통해, 여러 스크린을 통해 전해지지만 이들은 아예 '공해'처럼 느껴진다. 뉴스는 반복되는데 해결됐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불필요한 뉴스의 홍수 속에서 도태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신작은 그렇게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번 전시를 앞두고 김구림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과 갈등을 겪었다. 자신의 실험미술 대표작인 가스 파이프 설치 작업과 얼음이 녹는 과정을 보여주는 수조 설치작업, 그리고 미술관 건물을 천으로 묶어 '미술관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현상에서 흔적으로> 퍼포먼스를 미술관이 불허한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본관이 등록문화재라는 점, 준비 기간이 촉박하다는 점 등이 그 이유였다.

이로 인해 그는 지난 24일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아방가르드한 작품이 아닌, 고리타분한 작품만 보여드리게 되어 죄송하다. 4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설치 자체도 못할 줄은 미처 몰랐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이런 곳인 줄 알았더라면 나는 이 전시를 안 했을 것"이라며 미술관을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구순을 앞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을 건 전시에서마저 자신의 작품을 걸 수 없는 아이러니를 만난 노작가는 자신의 감정을 절대 숨기지 않았다. 그의 저항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설치 '음과 양'. (사진=임동현 기자)
설치 '음과 양'. (사진=임동현 기자)

욕조 위에 누워있는 젊은 사람(으로 추정되는 이)의 해골, 빨간 물감으로 얼룩지고 그 가운데 조그만 해골이 놓여진 성경책, 성인잡지의 사진들을 오려붙인 듯한 작품 등을 보면 김구림하면 떠오르는 파격, 저항, 전위와 함께 우리의 삶이 한편으로는 죽음으로 가는 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래서 혹자는 김구림의 작품이 '기괴하게' 보일 수도 있다. '보통과 다르게 유별나고 이상한' 느낌. 기괴.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생각지 못한 '기괴함'의 연속이다. 불과 얼마전까지 인사를 나눴던 지인이 갑작스런 참사로 목숨을 잃고, 의도치 않게 좋지 않은 일에 휘말리고 안 좋은 소문의 주인공이 되는 상황을 맞게 된다. 어느 순간 뉴스는 비상식적인 발언과 정책들로 도배가 되고 있다. 비극적인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나도 희생자가 될 지 모른다'라는 불안감이 커진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감이 커지면서 삶을 놓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삶과 죽음이 한순간에 뒤바뀔 수 있는, 기괴한 현실을 우리가 살고 있다.

자신의 작품 '음과 양'을 바라보고 있는 김구림 작가. (사진=임동현 기자)
자신의 작품 '음과 양'을 바라보고 있는 김구림 작가. (사진=임동현 기자)

김구림은 그 기괴한 현실을 '자신만의 기괴함'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그 현실을 깨려는 시도를 한다. 제도에 순응하고 무조건 따르며 가슴아파하기보다는 그 현실을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깨보려는 노력이 그의 작품 곳곳에 배여있다. 

비록 누군가에게는 작품 자체가 기괴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우리의 현실, 그리고 우리의 지나간 과거를 생각해보면 정작 기괴했던 것은 그의 작품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왔던 시간들이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긴 자신의 이름을 건 전시에서 자신의 퍼포먼스가 거부되는 상황 역시 '기괴한' 일이긴 하다.

전시는 내년 2월 12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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