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정 칼럼] 동해 유전의 경제성 효과
[김서정 칼럼] 동해 유전의 경제성 효과
  • 김서정
  • 승인 2024.06.18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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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진행된 국정브리핑. (사진=대통령실)
지난 3일 진행된 국정브리핑. (사진=대통령실)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첫 번째 열린 국정브리핑에서 영일만의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 가능성을 발표했다. 영일만의 물리 탐사자료를 분석하고 140억 배럴의 매장량을 추정했으며 성공률이 20%라고 했다. 또한 경북 포항 영일만 일대와 21세기 최대 심해 유전이 발견된 남미 가이아나 인근 해역이 지질학적으로 유사하다고 평가했다. 이를 통해 가이아나보다도 성공률이 높으며 매장량도 높다는 것이다. 가이아나는 성공률이 16%였으고 총매장량이 110억배럴이며 지금 석유가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갖는다.

아브레우 박사는 “영일만 일대 해역은 이미 여러 차례 가스가 발견됐거나 석유∙가스징후(시추 샘플 분석에서 나타난 석유∙가스가 있었던 흔적)가 나온 지역”이며 “석유나 가스가 생성될 수 있는 근원암이 있고 자원이 이동하는 통로와 모여 있을 수 있는 지층 내 공간이 있는 등 여러 조건을 종합했을 때 남미 가이아나 유전과 지질학적 특성이 유사하다고 본다”라는 의견을 한국석유공사를 통해 산업부에 전했다.

남미의 가이아나 유전은 1916년부터 약 100년에 걸쳐 탐사가 진행됐지만 성과가 없다가 2015년 엑손모빌이 스타브룩 광구 ‘리자-1’ 시추공에서 처음 석유를 발견하며 국면이 바뀌어 이후 인근에서 30개가 넘는 유전이 발견되며 가이아나는 하루 65만4000배럴(2024년, 올해 초 기준)을 생산하는 산유국이 됐다. 2027년 말이면 생산량은 130만 배럴로 늘어난다. 총매장량은 석유 110억 배럴이다.

2008년 가이아나 해역 탐사에 뛰어든 엑손모빌이 이곳을 발견하기까지는 7년이 걸렸다. 석유공사와 아브레우 박사가 현재 대표로 있는 브라질 에너지 회사 ‘FLUXUS OGE’의 웹사이트 등에 따르면 아브레우 박사는 ‘리자-1’ 시추 때 스타브룩 광구 일대 지질 분석 및 매장 가능성 평가를 종합 지휘했다. 
엑손모빌에서 퇴사한 이후엔 2016년 지질탐사 컨설팅 기업 액트지오를 설립해 가이아나 해역 유망구조 평가 업무를 이어서 수행하기도 했다.

액트지오의 회사 규모는 작지만 100년 동안 못 찾았던 가이아나의 유전을 발견하였다. 액트지오의 소유주이자 고문인 비토루 아브레우 박사의 오랜 경험과 경력자가 말하는 소리에 조용히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또한 아브레우 박사는 이렇게 엄청난 사실을 한국 사람들은 못 믿는 것에 의아해 했고 "이 정도면 투자자가 경쟁하며 줄을 설텐데"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1975년 ‘영일만 석유 발견’이라는 말이 사실 있었다. 그리고 포항시 일대는 지하자원 매장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신생대 3기 지층이 있으며 어느 정도의 천연가스가 있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일부 언론과 야당 지도부는 액트지오가 구멍가게 수준이라 믿을 수 없으며 경제성도 없는 일에 왜 헛수고를 하느냐고 반대 의견이 거세다.

가이아나 유전의 경우를 보면 석유 탐사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무려 100년 전에 탐사를 시작했고 영일만보다 해안선에서 2배나 멀고 2배 가까이 깊은 심해에서 석유가 발견된 것이다. 가이아나의 경우도 만약 저들처럼 적극적인 반대에 탐사 시추를 포기했더라면 가이아나 유전은 지금도 없을 것이다.

가이아나의 유전은 ‘서울 가본 사람’인 액트지오의 비토루 아브레우 박사가 발견한 것이다. ‘서울 안 가본 사람이 말싸움에 이긴다“는 속담이 있듯이 석유탐사 경험이 일천한 국내 전문가의 주장을 빌어 영일만에서 석유가 나올 가능성이 없다고 우기는 사람들은 더 공부를 하고 직접 가이아나에 가서 실습 경험을 쌓아야 할 일이다. 

이번에 발견된 석유 탐사는 끈기가 필요한 일이다. 뚜껑도 열기 전에 미리 포기할 필요는 없다. 산유국이 되기를 원한다면 느긋하게 기다릴 필요가 있다. 

1887년 초여름 파리 제7구 샹드마르스에 위치한 현장에서 에펠탑 건설이 시작되었다. 에펠탑은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300미터가 넘는 에펠탑은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로 빨간색이라 처음에는 더 낯설고 기이했을 것이다. 파리 시민들은 이 빨간 탑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고풍스러운 고딕 건물로 이루어진 파리에 무게 7천 톤, 높이 320미터나 되는 철골 구조물은 천박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에펠탑이 처음 세워질 당시에는, 프랑스의 정치가들과 유명한 학자들, 비평가들의 극렬한 반대와 비판이 있었다. 모파상을 비롯한 프랑스 작가들은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에펠탑을 가리켜 "유령의 꿈", "볼트로 조인 창백한 금속 기둥"이라며 신랄한 비판과 반대 서한이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나 건축 이후 에펠탑에 대한 여론은 달라졌고 딱딱하고 차가운 철로 만들어진 미려한 곡선은 완성된 후에 많은 사람을 감탄시켰다. 비난 일색이던 예술가들도 칭찬하기 시작했다. 이후 많은 예술가가 에펠탑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거나 에펠탑 광장에서 예술 활동을 했다.

이러한 에펠탑의 건설 과정을 지켜본 파리 시민들의 심리가 바로 에펠탑 효과이다. 처음에는 싫어하거나 무관심했지만 점점 노출도가 높아지면서 좋아하게 되는 심리 효과이다. 에펠탑은 단지 철골을 높이 쌓아올린 단순한 탑이 아니라 세밀한 설계도면과 치밀한 계획에 의해 탄생한 걸작이다. 

건축가인 구스타프 에펠은 "나는 에펠탑을 질투하지 않을 수 없다. 나보다 그 탑이 더 유명하다. 사람들은 그 탑이 내 유일한 작품인 줄 안다"고 했다. 

에펠은 프랑스와 미국의 우정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 작업에도 참여했다. 이 여신상은 프랑스에서 만들어져 미국으로 수송되기도 했다. 지금은 말 많던 에펠탑이 세계 제일의 관광명소로 자리잡아 파리시민의 경제를 책임질 정도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파리로 여행가면 에펠탑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기념품 에펠탑을 사 오는 엽서의 표상이 되었다. 그리고 밤을 비추는 등불로 매일 밤, 길이 80km의 광선이 마치 밤의 등대와 같이 파리 전체를 에펠탑에서 쏟아내는 불빛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빛이 되었다. 유럽의 건축물을 보면 백년대계를 바라보면서 오랜 세월 동안 세밀하게 짓고 오래 보존한다. 비용이 든다고 포기하는 어리석음은 관광자원을 포기하는 일이며 후손에게 남겨질 경제 논리에 맞지 않다.

어떤 좋은 일을 하려면 무조건 근거 없이 반대만을 하는 것은 역사를 거스르는 것일 수도 있으며 좋은 모습은 아니다. 대한민국이 산유국이 되어 자손들이 경제적 자유로움 속에 자신만의 꿈을 펼치며 국가를 사랑하는 세계의 리더가 배출되기를 희망한다.

김서정 박사(사진=김서정 박사)
김서정 박사(사진=김서정 박사)

 

● 김서정 박사
- 시인
- 상담심리학 박사
- 『작은 영웅의 리더십』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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