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의 두 풍경
노벨문학상의 두 풍경
  • 석정순 기자
  • 승인 2020.03.04 16:3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로 다른 행보로 묘한 대조
▲ 올가 토카르추크, 페터 한트케
▲ 올가 토카르추크, 페터 한트케

(내외방송=석정순 기자)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선 한림원

지난해 성추행 스캔들로 노벨문학상을 발 표하지 못했던 스웨덴 한림원은 올해는 작 년 수상자를 포함해 두 명의 수상자를 동시 발표했다. 2019년 10월 10일 한림원이 선택 한 작가는 올가 토카르추크(57)와 페터 한트 케(77)였다. 2018년 성추행 스캔들로 8명의 위원이 사퇴와 활동 중지를 선언하면서 오명을 쓴 한림원이 이번에 발표한 결과는 또 다시 작은 논란을 낳고 있다.

2018년 수상자인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 르추크와 2019년 수상자인 오스트리아 작 가 페터 한트케는 둘 다 동유럽 출신이지만, 정치적·문화적으로 결이 다른 문학의 길을 걸어왔다. 올가 토카르추크는 폴란드에서 대중적 인기와 평단의 지지를 두루 얻고 있는 작가로, 채식주의자이면서 환경보호론 자로 살아오고 있다. 현재 폴란드 우파 정 부에 대해 대외적으로 비판적인 견해를 드러냄으로써 우파 민족주의자들로부터 살 해위협을 받기도 하는 등 정치적 성향도 뚜렷한 편이다.

반면, 오스트리아 출신 작가 페터 한트케 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거센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한트케가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 ‘인종 청소’를 저지른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와 세르비아 정부를 옹호하는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전력이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수난과 질곡의 역사를 들추다

1962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공산 정권하 에서 유년기를 보냈던 토카르추크는 “어딘 가에 갇혀 있는 듯한 구속감을 느끼곤 했다”고 표현했다. 1989년 처음으로 여권을 받고 자유로운 여행이 가능해지자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소설 『방랑자들』은 여행에 대한 100편의 단편 모음집으로 떠남과 이동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담겼다.

이후 올가 토카르추크는 신화나 전설을 차용해 허구와 현실을 오가는 문체로 인간의 고독과 욕망을 탐구해왔다. 1996년에 출간돼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줬던 대표작 『태고의 시간들』은 네 명의 천사가 지키는 폴란드 가상의 마을이 배경이다. 84편의 조각으로 나뉜 소설은 삼대에 걸친 가족과 이웃 뿐 아니라 자연과 사물까지 짤막한 글의 주인공이 된다.

1, 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 공산정권의 지배까지 폴란드의 비극적 역사와 그 안에서 삶을 이어나가는 인물들을 기이하면서 도 환상적으로 풀어낸다. 특히, 남편이 전쟁터에 끌려간 아내, 독일군과 러시아군에게 강간당한 여성 등 역사 속 잊힌 여성들의 목소리를 되살려냈다.

토카르추크 작품세계의 바탕에는 심리학과 철학이 있다. 바르샤바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작가가 되기 전 심리치료사로 일했으며, 스스로 칼 융의 제자라 생각 해 그의 학문을 소설에 녹여내기도 했다.

토카르추크는 자신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는 대중적 지식인이자 실천적 운동가이기도 하다. 동료 유대인을 강제 개종시키려 한 종교 지도자 이야기를 다룬 ‘야고보서 (The books of Jacob)’는 폴란드 최고 권위인 니케문학상 대상을 받았지만, 폴란드의 어두운 역사를 들춰내 명예를 훼손했다며, 극우세력에 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다. 토카르추크는 “역사는 우리를 규정짓고, 공동의 정체성을 확립시켜주며 긴밀한 동질감을 형성한다”면서 “수난과 질곡의 역사를 겪어온 폴란드인들은 역사를 돌이켜보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 올가 토카르추크 (사진=민응사 제공)
▲ 올가 토카르추크 (사진=민음사 제공)

 

관습적인 문단을 뒤흔든 언어실험

1942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페터 한 트케는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 속에 태어나 알코올 중독자인 계부의 가정폭력과 슬로 베니아인 어머니의 언어적 문화적 이질성을 경험하며 자랐다.

어릴 때부터 슬로베니아어를 독일어와 함 께 사용하며 자란 한트케라는 성을 물려준 계부보다는 피가 이어진 어머니와의 유대감이 훨씬 강했다. 그의 어머니와 이웃들은 정치적으로 친세르비아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그도 그런 정치관을 이어받았다. 한트케는 오스트리아 국적을 가지고 독일어로 작품 활동을 했지만, 유고인, 슬로베니아인의 정체성을 갖게 됐다.

1965년 첫 소설인 『말벌들』이 고무적인 반응을 얻자 학업을 중단하고, 전업 작가로 나섰다. 그해 독일어권의 신예 작가그룹인 47그룹에 참여해 기성작가들과 문학관에 독설을 퍼부으며 문단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1966년 발표한 희곡 ‘관객모독’은 첫 상연과 동시에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별 다른 서사 없이 배우들이 관객들의 관습적인 관람형식을 고발하고 험담과 모욕을 내 뱉는 게 전부인 이 작품은 잠시 논쟁의 중심에 섰고, 전통희곡의 어법을 완전히 파괴한 혁신을 통해 페터 한트케는 단숨에 세계적인 극작가로 떠올랐다.

그의 주도하에 47그룹은 독일어 문학계에서 새로운 비평 질서의 중심에 섰으나, 68 운동에 대한 구성원들의 정치적 견해가 대립하면서 쇠퇴해져 1977년 공식적으로 해체됐다. 페터 한트케는 ‘관객모독’ 이후 희곡 ‘카스퍼’를 통해 자신의 스타일을 좀 더 심화시켰으며,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과 『소망 없는 불행』 등 소설을 발표해 소설가로서의 입지도 다져갔다. 1978년에는 감독으로서 자신의 소설인 『왼손잡이 여인』을 영화화했으며, 1987년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의 시나리오를 집필해 시나리오 작가로서도 명성을 얻었다.

시에도 관심을 가져 1969년 시집 『외부 세계의 내부 세계』를 통해 시적 언어의 재구축을 실험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 대부분은 파격성과 불가해성으로 오늘날까지도 논쟁의 대상이 되지만, 유럽 문학계는 수십 년간 그에게 매년 크고 작은 문학상을 수여함으로써 그의 치열한 언어실험의 의의를 인정해줬다.

▲ 페터 한트케
▲ 페터 한트케

 

누구도 자기 뿌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1901년부터 시작된 노벨문학상 역사에서 올해는 1974년 이후 45년만에 한 해에 수상자 2명이 선정됐는데, 둘 다 유럽권 작가이면서도 사뭇 결이 다른 문학적 정취를 추구 해왔기에 묘한 대조를 이룬다. 올가 토카르 추크가 역사의 비극 속에서 희생당하고 억압당한 사람들의 내면의 목소리를 통해 현실의 부조리를 낱낱이 고발한다면, 페터 한트케는 언어와 의식에 관한 관심으로 실험 적인 형식들에 천착해왔고, 인간 소외를 통 해 존재의 본성을 탐구해왔다.

두 작가는 정치적 입장에서도 대조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토카르추크는 극우세력의 살해 협박에도 독재와 학살로 점철된 폴란드의 어두운 현대사를 들추어내고, 거기에서 강인하게 생을 이어가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데 경주한다. 반면, 한트케는 유고 내전에서 타민족에 대한 인종 청소를 자행해 ‘발칸의 도살자’로 불린 독재자 밀로셰비치와 세르비아 정부를 옹호했고, 2006년에 치러진 밀로셰비치의 장례식에도 참여해 조사를 읽고 비슷한 논조를 담은 글 까지 썼다. 2007년 베를린 앙상블에서 5만 유로가량의 성금이 들어오자 전액을 코소보의 세르비아 마을 아이들을 위해 기부했을 정도로 세르비아와 통합된 유고에 애착이 있었다.

작가가 가진 정치적 지향을 들여다보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뿌리를 찾아보는 일이 다. 올가 토카르추크의 조국 폴란드는 17세 기 초까지는 동유럽의 패자가 될 정도로 막 강한 위치에 있었으나, 이후 쇠퇴의 길을 걸 었고, 18세기 이후로는 프로이센, 러시아, 오 스트리아 등 주변 강대국들이 분할통치를 이어갔다. 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나치가 도시와 국토가 거의 파괴했고, 수많은 국민 들이 학살당했다. 전후에는 소련의 위성국 으로 전락했으며, 민주화 이후에도 이웃국 가 독일의 성장에 짓눌린 채 옛 영광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1962년 폴란드 술레후프 에서 태어난 토카르추크는 공산 정권하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희생으로 얼룩진 민족의 역사와 체제의 구속이라는 이중감옥에 갇혀 지내야 했다.

페터 한트케의 가정사는 어떠한가? 한트 케는 본래 슬로베니아 영토였으나, 1920년 오스트리아로 넘어간 케른텐 태생으로, 어 머니 마리아 한트케는 2차 세계대전 때 이곳에 주둔한 독일군 병사와의 하룻밤 연애 로 페터를 잉태했다. 유부남이었던 생물학적 아버지는 마리아를 떠났고, 마리아는 자신 에게 호감을 품은 또 다른 병사 브루노 한 트케와 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 된다. 원치 않는 결혼이라 부부 사이가 원만치 못했고, 마리아는 결혼생활을 비관했다. 어릴 때부 터 슬로베니아어를 독일어와 함께 사용하며 자란 한트케라는 성을 물려준 계부보다는 피가 이어진 어머니와의 유대감이 훨씬 강 했다. 또, 한트케의 이웃들은 마리아와 같은 슬로베니아 이민자들이었다. 그의 어머니와 이웃들은 정치적으로 친세르비아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그도 그런 정치관을 이어받았다. 한트케는 오스트리아 국적을 가지고, 독일어로 작품 활동을 했지만, 유고인, 슬로 베니아인의 정체성을 갖게 됐다.

순수한 문학은 존재하는가?

한림원은 토카르추크의 노벨상 선정에 대해 “백과사전적 열정으로 삶의 한 형태로서의 경계 넘나들기를 묘사하는데 있어 서사적 상상력을 보여줬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또, 한트케에 선정에 대해서는 “독창적인 언어로 인간 경험의 섬세하고 소외된 측면을 탐구한 영향력 있는 작품”을 그 이유로 들었다.

올가 토카르추크의 수상 소식에 대해서는 문학계에서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지만, 페터 한트케의 수상 소식은 첨예한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트케의 수상 사실이 알려지자 코소보 내전 학살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한림원의 결정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거세게 일었다. 1995년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카 학살의 생존자들은 “부끄러운 일이다”며, 한림원 측에 노벨문학상 선정 취소를 촉구했고, 유고 내전 피해자인 코소보의 블로라 치타쿠 주미대사는 “훌륭한 작가들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노벨위원회는 하필 인종적 증오와 폭력의 옹호자를 수상자로 선정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됐다”며,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코소보에서 출생한 젠 트카카즈 알바니아 외무장관도 “인종청소 를 부인하는 인물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하다니 끔찍하다”며, “2019년에 우리가 목격하는 이 일은 얼마나 비열하고 부끄러운 행태인가”라고 비판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매츠 말름 스웨덴 한림원 상임비서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수상자는 문학적, 미적 기준으로 선정됐다”면서 “정치적인 고려사항과 문학적 우수성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은 한림원의 권한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여기서 해묵은 논쟁의 불씨가 다시 한번 반짝였다. 궁극적으로 정치와 문학은 분리될 수 있는가? 정치적 현실로부터 독립된 순수한 문학이란 가능한가?

남아메리카의 환상적 리얼리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거두였던 보르헤스는 “안 주면 노벨문학상의 수치”라고까지 언급되던 작가 였음에도 칠레 독재자 피노체트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 하나로 끝까지 수상을 외면했던 한림원이기에 이번에 페터 한트케에게 왜 다른 논리를 적용하는지 의구심이 커지는 것이다.



오늘의 이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법인 : (주)내외뉴스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04690
  • 인터넷신문등록일자 : 2017년 09월 04일
  • 발행일자 : 2017년 09월 04일
  • 제호 : 내외방송
  • 내외뉴스 주간신문 등록 : 서울, 다 08044
  • 등록일 : 2008년 08월 12일
  • 발행·편집인 : 최수환
  •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3 (뉴스센터)
  • 대표전화 : 02-762-5114
  • 팩스 : 02-747-5344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유진
  • 내외방송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내외방송.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nwtn.co.kr
인신위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