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8시에 떠나네”
“기차는 8시에 떠나네”
  • 정옥희 기자
  • 승인 2020.03.04 12:5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좌) 아그네스 발차(우)
▲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좌) 아그네스 발차(우)

 

(내외방송=정옥희 기자) 이별의 정서 가득한 기차역에서 당신은 누구를 기다리나요?

연인은 오지 않고 기차는 떠나네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대중문화에서 기차역은 이별의 정서를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이별의 종류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기차역에서의 이별은 왠지 더 진한 쓸쓸함과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것 같다. ‘기차는 8시에 떠나네’는 그러한 이별가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곡이 하나가 아닐까 싶다. ‘기차는 8시에 떠나네(The Train Leaves at 8)’는 우리나라에서 현 재 조수미의 노래로 자주 접할 수 있지만, 그 이전에는 모 인기 드라마의 주제가로 사용되면서 큰 인기를 얻었던 아그네스 발차(Agnes Baltsa)의 노래가 특히 유명했다. 가사가 암시하는 내용만큼이나 그리스의 민속악기 부주키가 빚어내는 애잔한 선율을 배경으로 수놓아지 는 여가수의 짙은 음색이 슬픈 사랑의 노래임을 짐작케 한다.

젊은 레지스탕스의 슬픔

이 연가(戀歌)는 나치에 저항했던 그리스의 한 젊은 레지스탕스를 위해 만들어졌으며, 노래에서 카타리나로 떠나 돌아올 줄 모르는 그 가 바로 청년 레지스탕스다. 노래에는 레지스탕스인 애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애틋한 여심(女心)이 그려져 있다. 그리스가 터키로부터 독립한 이후 왕정과 외세의 침탈, 군부독재 로 이어져 민주화는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기차는 8시에 떠나네(To Treno Fevgi Stis Okto)’는 군부독재에 저항하여 싸우던 한 청년 레지스탕스와 그의 애인이 겪은 이별의 아픔을 그린 작품이다. 젊은 레지스탕스와 그의 여인은 지중해 연안의 아름다운 카타리니 로 가서 행복하게 살기로 작정했다. 그들이 함께 떠나기로 한 11월의 어느 날, 만나기로 한 기차역에서 여인은 사랑하는 청년을 기다렸지만,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기차가 출발할 시간은 다가오는데 애 인이 나타나지 않자 처절한 심경으로 여인은 하는 수 없이 혼자 8시 기차에 오른다. 그 모습을 숨어서 지켜봐야 하는 청년 레지스탕스의 운명. 그 청년 은 그에게 부과된 중대한 임무와 목적이 있었다. 군부독재 치하에서 억압받는 민중을 놔두고 자기 혼자만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떠날 수 가 없었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이 노래는 ‘일요일은 참으세요’, ‘페드라’, ‘희랍인 조르바’ 등으로 유명한 그리스 출신의 세계 음악계의 거장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가 작곡했다. 그 역시 평생 그리스의 군부독재와 탄압에 맞서 싸우다 여러 차례 투옥된 장본인이기도 한데, ‘기차는 8시에 떠나네’는 독재에 맞서 싸우다 죽은 그의 친구를 슬퍼하며 만든 곡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의 20세기는 동족상잔의 내전, 나치 독일의 침략, 미·영의 내 정간섭, 군부 쿠데타 등 마치 20세기 한국사를 보는 듯해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그들의 가슴 속에도 우리와 비슷한 투쟁의식과 한의 정서가 깃들어 있다고 느껴진다. 테오도라키스는 중산층과 지식인들이 외면하던 그리스 민족음악

의 정수인 민요 렘베티카를 많이 작곡했다. ‘기차가 8시에 떠나네’ 이 노래도 렘베티카이며, 그리스 민속악기 부주키의 선율이 애절하게 흐르고 있는 게 특징이다. 표현의 제약을 받던 시절에 만들어져 레지스탕스의 투쟁은 가사의 행간에 숨어 있을 뿐이다. 결국 1967년 그의 음악은 그리스 전역에서 연주가 금지됐고, 음반을 듣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으며, 마침내 그가 군사재판에 회부돼 투옥되자 쇼스타코비치, 레너드 번스타인, 해리 벨라폰테 등 유명 음악인들이 발 벗고 나서 구명운동을 벌였고, 그는 1970년 석방돼 파리로 망명을 떠났다.

세월은 가고 노래는 남았네

세월이 흐르고 정치적 상황은 변했지만, ‘기차는 8시에 떠나네’는 여전히 지구촌 곳곳에서 불려지고 있으며, 이 노래가 전해주는 울림은 언제나 전 세계인들의 마음속에 진한 여운을 남기며 깊게 울려 퍼지 고 있는 것 같다. 신경숙의 소설 ‘기차가 7시에 떠나네’의 제목도 바로 이 노래에서 출 발한다. 소설 속의 여자 주인공은 이 노래의 제목이 ‘기차가 8시에 떠나네’인 줄 알면서도 DJ에게 늘 ‘7시’ 로 적어서 이 노래를 신청했는데, 이 시간이 야학에서 배우지 못한 아이들을 가르치던 그들만의 모임시간을 알리는 암호였다.



오늘의 이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법인 : (주)내외뉴스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04690
  • 인터넷신문등록일자 : 2017년 09월 04일
  • 발행일자 : 2017년 09월 04일
  • 제호 : 내외방송
  • 내외뉴스 주간신문 등록 : 서울, 다 08044
  • 등록일 : 2008년 08월 12일
  • 발행·편집인 : 최수환
  •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3 (뉴스센터)
  • 대표전화 : 02-762-5114
  • 팩스 : 02-747-5344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유진
  • 내외방송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내외방송.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nwtn.co.kr
인신위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