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고흐의 바다 이야기 ③
[문화산책] 고흐의 바다 이야기 ③
  • 전기복 기자
  • 승인 2022.08.23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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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트마리 바다 풍경' 아를, 1888년 6월, 반 고흐 미술관
'생트마리 바다 풍경' 아를, 1888년 6월, 반 고흐 미술관

(내외방송=전기복 기자) 이제라도 다시 그의 바다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고흐는 프랑스 아를에 도착하여 봄꽃이며, 과수원 연작으로 봄날을 보내고 5월 30일 5일간의 여정으로 아를을 떠나 남쪽 지중해 연안인 생트마리 드 라메르로 갔다. 'la Mer'가 프랑스어로 '바다'이니 생트마리 바다 이야기다.

생트마리라는 마을 이름은 마리아에서 유래됐는데, 알려진 대로 예수의 빈 무덤을 처음 발견한 세 명의 마리아 중 두 명의 마리아가 전도를 위해 서기 45년 이곳을 찾았고, 이때 이들을 맞이한 이가 사라라는 집시 여인이라고 한다.

나중에 이들은 모두 성인품을 받아서 성녀 마리아와 성녀 사라로 칭해지고 뱃사람과 집시의 수호성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를 기념해 매년 5월 24일 사라의 기념일이 열리고 수만의 관광객이 이때를 놓치지 않고 방문한다고 하니 고흐처럼 생트마리를 여행해 볼 일이다. 고흐는 이곳에서 10여점의 바다와 마을 풍경을 유화와 수채화, 스케치를 남긴다. 

그림 '생트마리 부근의 바다 풍경'이나 '생트마리 해변의 고깃배'를 보면 고흐가 왜 아를로부터 약 40여 킬로미터 떨어진 지중해 어촌 바닷가를 찾았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전자의 경우는 바닷가에서 작품을 완성한 것이고, 후자는 해변에서 스케치하고 대상이 갖는 색상은 해당 부분에 표시한 후 아를로 돌아와서 이를 토대로 그림을 그린 것이다. 이는 어부들이 이른 아침에 어선을 타고 고기잡이에 나서니 마음 놓고 그릴 모델이 사라지는 제한을 극복하는 방편이기도 했다.

먼저 '생트마리 부근의 바다 풍경'을 보자. 피상적으로 파란 하늘 더 푸른 바다라고 하지만 바다가 표현하는 색채를 음표 삼아 파도가 마음껏 노래 부른다. 바다 위 세척의 어선은 삶의 현장이겠지만 그러한 느낌은 온데간데 없고 심지어 관념적이기까지 한다. 바다의 색채를 말하지 않고는 그림을 설명할 길이 없다. 고흐의 말을 그대로 옮겨본다.

"바다는 고등어 같은 빛깔로 끊임없이 변해 초록인지 보라인지, 늘 푸른지 어떤지 도무지 정하기 어렵고, 한순간 지나면 장밋빛이나 회색빛으로 반사되어버리지"

바다는 말처럼 색채의 향연을 보는 듯하다. 그저 색에 정신을 잃고 한동안 있다가 세척의 배에 시선을 둔다. 해안 가까이 오는 배 한 척, 큰 돛을 높이 올렸으나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어부는 노를 열심히 젓는 모양새다. 빨리 해안에 닿아야 할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저렇듯 서둘러 와야 할 사람이 있어 은연중 마음의 표현을 한 걸까.

고흐는 생트마리 드 라메르로 향하기 달포 전부터 테오에게 편지로 "나는 고갱을 생각하고 있다"거나 "두세 사람이 함께 살면 적은 비용으로 생활할 수 있다"며 고갱이 아를로 올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의논했다.

또한 고갱에게 쓴 편지를 보면 "얼마 전 방 4개짜리 한 채(일명 노란 집)를 빌렸다"거나 "동생 테오가 우리 두 사람 몫으로 한 달에 250프랑을 보내준다면 이곳에 올 마음이 있는지"를 직설적으로 묻기도 한다.

이러한 고흐의 마음이 반영된 배라면 그 만남의 대상은 고갱이고, 그가 아를로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하는 마음이 반영됐다고 해석하면 그림에 어울리지 않는 해석일까.

그래서일까 같은 이름의 또 다른 유화에서는 어선 10여척이 있는 바다 풍경인데, 배의 군무가 마치 그해 여름 고흐가 꿈꾸었던 화가공동체를 연상하게 한다.

'생트마리 해변의 어선들' 아를, 1888년 6월, 반 고흐 미술관
'생트마리 해변의 어선들' 아를, 1888년 6월, 반 고흐 미술관

마지막으로 '생트마리 해변의 고깃배'다.

화면은 위아래로 균등하게 나뉘었다. 바다 색깔이 파랑 동류로 하늘로 이어졌다. 모래에 닿은 바닷물 빛이 묽다 배경 깊숙이 갈수록 푸른빛을 더한다. 기막힌 농도며 색상이다. 배의 윤곽은 뚜렷하고 색채는 원색으로 강렬하다. 고흐는 화가 베르나르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평탄한 모래사장에는 초록, 빨강, 파랑, 쪽배들이 있는데 모양이며 색깔이 어찌나 예쁜지 꽃을 보는 듯했어"

세 번째 정박한 어선에는 흰 바탕에 '아미티에(Amitie, 우정)'라고 표기돼 있다. 감춰진 상징은 무얼까. 네 척의 배가 두 척씩 나란히 정박했다. 바다 위의 배도 두 척씩 나뉘어 서로 근접시켜 묘사했다.

테오나 고갱, 베르나르 등 동료화가들과의 우정…. 결국 고흐가 노란 집을 통해서 꿈꾸던 화가공동체로 귀결되는 감춰진 상징언어로 읽어본다. 갑자기 전경 중앙에 놓인 '빈센트'라고 서명된 노란 박스 하나가 뒤늦게 눈에 든다. 형언할 수 없는 색으로 넘실대는 파도에 실려 온 그의 ‘꿈과 희망’이 든 박스는 아닐까.

이제까지 바다를 모티브로 한 고흐의 작품에 대해 알아봤다. 물론 '생트마리 부근의 바다 풍경'과 동명인 더 많은 어선 10여척이 있는 바다 풍경의 그림도 있고, 얼핏 보아 '생트마리 해변의 고깃배'와 같은 구도를 한 동명의 수채화 등도 있다.

또한 고흐가 거쳐 간 항구도시인 안트베르펜의 부둣가를 묘사한 작품들도 바닷바람 풍긴다. 하지만 크게 헤이그 인근 스헤베닝언과 아를의 남쪽 지중해 연안의 생트마리 바다 풍경을 즐겨본 시간이었다.

전자의 작품에서는 네덜란드 시기의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였다면 후자의 경우에서는 색의 향연 그 자체로 밝고 조화롭고 균형 잡힌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스헤베닝언의 해변을 그린 그림은 네덜란드에서 17세기에 유행했던 바다 풍경 그림을 재현해 보고자 했던 헤이그화파의 활동시기와 '해변의 고기잡이배'(1882)를 그린 스승 마우베의 영향이 컸다. 그래서 스헤베닝언의 바다는 ‘배움의 바다’라고 할 수 있고, 생트마리 드 라메르는 태양이 주는 자극을 온전히 바닷물에 투사해서 색의 향연을 표현할 수 있게 한 ‘창조의 바다’라 생각한다.

올여름 고흐의 바다에서 휴가를 즐겨볼 일이다. 식후경이라면 고흐가 생트마리에서 먹었다는 '생선튀김'이 좋겠다. 여러분들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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