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고흐의 바다 이야기 ②
[문화산책] 고흐의 바다 이야기 ②
  • 전기복 기자
  • 승인 2022.08.08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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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날씨의 스헤베닝언 해변, 헤이그, 1882년 8월, 미네소타 해양미술관
'고요한 날씨의 스헤베닝언 해변' 헤이그, 1882년 8월, 미네소타 해양미술관.

(내외방송=전기복 기자) 화가로서 마주한 그의 바다는 어떤 모습일까. 네덜란드 헤이그 인근의 '스헤베닝언'과 프랑스 아를 남쪽 지중해 해안의 어촌 마을 '생트 마리' 앞 바다가 떠오른다.

고흐는 1882년 헤이그로 가서 사촌 매형이자 화가인 안톤 마우베 집 근처에 거처할 집을 구했다. 마우베로부터 수채화며 유화의 기본을 배웠고, 생애 첫 유화를 그린 시기이기도 하다. 이때 네덜란드 시기를 통틀어서 단 2점의 바다풍경을 그렸는데 '고요한 날씨의 스헤베닝언 해변'과 '폭풍우 속의 스헤베닝언 해변'이다.

두 그림은 스헤베닝언의 변덕스러운 날씨를 보여줄뿐 더러 실제로 '폭풍우'가 몰아치기 직전에 그려졌다. 테오에게 쓴 편지를 보자.

"그곳에서 두 개의 작은 바다를 그려서 집으로 가져왔어. 그중 하나에는 모래가 살짝 덮여 있었는데 다른 그림은… 아주 두꺼운 모래층으로 덮여버려서 두 번이나 물감을 긁어내야 했지 뭐냐. 어찌나 바람이 강하게 불던지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정도였어"

'고요한 날씨의 스헤베닝언 해변'은 두 대의 배가 닻을 내리고 정박해 있는 풍경이다. 왼쪽 배 앞에 선 남녀처럼 다정하고 평온하다. 살짝 이는 배 앞의 하얀 포말이 돛대 끝 깃발의 나부낌을 느끼게 하고,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다. 전경의 누렇고 갈색빛 띤 모래언덕이 더없이 맑고 푸른 하늘과 수평선이 주는 안전감에 변화를 준다.

'폭풍우 치는 스헤베닝언 해변' 헤이그, 1882년 8월, 반 고흐 미술관.▶좌측 위 귀퉁이 색상이 부자연스럽다. 이는 2002년 12월 절도범에 의해 도난당했을 시 떨어져나간 부분이다. 2016년 반 고흐 미술관으로 돌아옴
'폭풍우 치는 스헤베닝언 해변' 헤이그, 1882년 8월, 반 고흐 미술관.▶좌측 위 귀퉁이 색상이 부자연스럽다. 이는 2002년 12월 절도범에 의해 도난당했을 시 떨어져나간 부분이다. 2016년 반 고흐 미술관으로 돌아옴.

반면, '폭풍우 속의 스헤베닝언 해변'은 해안선과 수평선이 평행을 이루어 3등분 된 안정감 주는 구도이나 금방 화가가 선 해변에도 폭풍우가 쏟아질 것 같다. 그래서일까 모래사장으로 배를 대피시키고자 여러 명의 어부가 말을 대기시키고 나왔다. 하늘의 먹구름, 세찬 풍랑에 뒤집힌 바닷물은 구정물처럼 표현됐다.

이 풍경화는 "정확한 색채 표현에 주목하면서 감상할 필요가 있다. 그의 뛰어난 분석력과 감수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바다 풍경은 그 바다를 누리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해질 때 완성되는데 '스헤베닝언의 생선건조장'이 이를 잘 보여준다.

'스헤베닝언의 생선건조장' 헤이그, 1882년 8월, 개인 소장.

여기저기 놓인 물고기 바구니 통, 길가 얼기설기 엮인 생선건조장 밑에서 그리고 멀리 돗자리를 깔고 생선을 말리는 여인의 손길, 그렇게 삶이 연속되고 피어나듯 굴뚝 위로 나는 연기, 삶의 바닥이 곧 바다인 것을, 어찌 어촌마을을 지나칠 수 있겠는가.

이후 프랑스로 터전을 옮긴 고흐는 바다를 보지 못하고 그 속에 사는 생선류들을 더 자주 접하게 된다. 보통은 식탁 위지만, 고흐는 정물화의 모델로 그들을 선택했다. 탁 트인 바다 그림을 기대했던 이들에겐 꿩 대신 닭이랄까. 그의 파리 시기에 그려진 어물전 같은 정물화 몇 점을 펼쳐보고 다시 그의 바다로 향해보자.

파리 시절에는 동생 테오와 함께 생활하면서 먹고 자는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실제 식재료로 구매한 생선인지 확인할 수는 없으나, 그의 작품 중에는 고등어, 청어, 홍합, 새우, 게 등이 등장하는데, 모든 작품을 한곳에 모으면 어물전을 방불케 한다. 찬거리 속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모델로, 다음에 그려질 그림들을 위한 색채 연구용 정물화들로 생각된다.

이중 '홍합과 새우가 있는 정물화'는 당시 상황이며, 고흐의 심성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는 그림이다.

'홍합과 새우가 있는 정물' 파리, 1886년 9-11월, 반 고흐 미술관.

그림이 제작될 당시 고흐는 파리 생활에 대한 염증, 새로운 햇살을 찾아 남녘으로 떠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뿐만 아니라 동생 테오는 화랑 일로 사장과 의견(사장은 기성화가의 작품을, 고흐는 신진화가들의 작품을 취급하자고 주장함)이 맞지 않아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써서 신경쇠약증세로 입원하게 된다.

평소 음식을 하지 않는 설혹 하더라도 잡탕으로 만들어 놓는 그에게는 사 놓은 찬거리인 홍합과 새우를 냄비 속으로 넣기보다는 캔버스에 담는 것이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그뿐일까. 사장과 테오의 불편한 관계, 싸움에 아무 관계 없는 고흐의 새우 등 터짐, 홍합과 새우의 엉켜있는 모습 같은 상황, 바다를 떠난 그들이 내지르는 아우성…, 살고자 하는 절규. 고흐 자신의 소리로 들어보자.

'외롭다', '가진 돈도 없다' 고흐는 한 작품을 거리의 만물상을 찾아 판매한다. "이런 그림을 누가 사 주냐"며 선심쓰듯 내어놓은 몇 푼을 받아들고 가게를 나섰으나, 길모퉁이에 앉아 동냥하는 할머니를 그냥 지나치지 못해 그 돈을 다 드리고 만다. 그때 판 그림이 '홍합과 새우가 있는 정물화'라고 한다.

게는 어떨까? '뒤집힌 게'는 자력으로는 일어나지 못한다. 테오에게 의탁한 자기 처지를 도와달라는 발버둥 그 자체다. 대부분 책에서 그림의 제작 연도를 아를 시기인 1888년 연말과 1889년 1월로 추정하면서 1888년 12월 23일 일명 귀 절단사건으로 인한 고갱과의 관계에서 고흐 자신의 처지를 나타낸 그림으로 해석하는 이가 많다. 뒤집힌 처지며, 잘려 나간 게 다리가 그럴듯하게 연결된다. 하지만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 안내는 이 그림이 고갱을 만나기 전 해인 1887년 작품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그림에서 '뒤집힌 게'는 동생 테오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 처지를 표현한 자화상 같은 그림이라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게 두 마리' 아를, 1889년 1월, 파지오나토 파인 아츠
'게 두 마리' 아를, 1889년 1월, 파지오나토 파인 아츠.

또한 귀 절단사건 이후인 1889년 1월에는 '게 두 마리'를 그렸다. 한 마리는 뒤집혀있고, 더욱 작은 한 마리는 온전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보는 이마다 해석은 다를 수 있으나 이 그림 또한 대체로 뒤집힌 게는 고흐를, 온전한 모습을 한 게는 테오를 상징한다는 풀이다. 소개한 어패류들이 바다와 연관된다는 단순한 생각에 연결 지어 이야기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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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성 2022-10-29 17:07:41
고흐의 그림들은 왠지 제목에 나와있는 대상을 정말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그런맛일까나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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