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고흐의 자화상에서 읽는 다이나믹 멜랑콜리(2-2편)
[문화산책]고흐의 자화상에서 읽는 다이나믹 멜랑콜리(2-2편)
  • 전기복 기자
  • 승인 2022.02.05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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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고흐처럼 다이나믹 멜랑콜리를 외쳐보자"
팔레트를 든 자화상, 생레미, 1889년 9월, 미국 워싱턴 국립미술관
팔레트를 든 자화상, 생레미, 1889년 9월, 미국 워싱턴 국립미술관

(내외방송=전기복 기자) 멜랑콜리. '정확히 이렇다할 이유없이 괜시리 기분이 울적하고 뭔가 애매한 기분이나 느낌'을 일컫는 말이다. '액티브'한 수사를 평행선상에 놓기에는 앞뒤가 안 맞는 어법으로 읽힌다. 그러나 고흐의 그림을 감상하면서 느끼는 감정이라면 일면 이해될 수도 있겠다.

불안이나 깊은 고뇌로 읽히는 표정에서도 또 다른 내면의 일렁이는 열정의 표현들, 거칠고 투박한 묘사들 속에서 느끼는 평온한 치유감…이렇듯 고흐의 그림에는 양립시키면 모순되는 어법의 표현도 묘사되는 힘이 있다.

그래서 계속해서 오늘도 감정이 잘 나타나는 얼굴 그것도 고흐의 자화상에서 다이나믹 멜랑콜리의 의미를 읽어본다.

자화상(폴 고갱에게 헌정), 아를, 1888년 9월, 미국 케임브리지 포그 미술관
자화상(폴 고갱에게 헌정), 아를, 1888년 9월, 미국 케임브리지 포그 미술관

[2-1편에 이어서] 1888년 2월 눈내리는 아를에 도착한 고흐는 남쪽의 화가공동체를 꿈꾸면서 고갱이 합류하기를 기다린다. 이때 고갱에게 줄 선물로 '자화상(폴 고갱에게 헌정)'(1888.9)을 그렸다. 1년 뒤, 생의 마지막 자화상(1889.9)을 그리면서 수염을 깎은 것처럼 머리를 박박 민 유일한 자화상이다. 사실 동양의 그림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시절이 있었듯이 자신을 마치 불교의 승려처럼 보이도록 그린 것이다. 아를에서 '그림 외는 어떤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수도승 처럼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았을 터이다.

앞서 소개한 자화상이 고갱과의 만남을 고대하면서 그려졌다면,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은 고갱과의 불화로 자신의 귀를 자른 사건을 기록이라도 하듯 그린 작품이다. 이 자화상은 사건이 있은 다음 달인 1889년 1월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그린 것이다. 동일한 모티브로 그린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이 있다.

몸을 살짝 오른편으로 틀어 잘린 왼쪽 귀를 감싼 흰천이 확연하게 보이도록 했다. 정면을 응시하지 못하는 녹색 눈에서 불안한 심경이 읽힌다. 이뿐인가 얼굴은 많이 수축해 보이고 붓질이 고르지 않다. 당시의 학자들은 "심리상태를 표현할 때 수직선과 슬픔을 연관지었다"는 것이다. 단추가 잠긴 상의가 녹색 수직선으로 표현되었다.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가 외견적으로는 차분한 분위기를 더해주나 외투의 초록색과 배경의 빨강이 보색을 이루며 강렬한 느낌을 준다.

마치 내면의 열정을 표현한 듯하다. 불안, 고독, 절망에 붕대를 두르고 치열하게 삶을 영위해 가자고. 나는 위험한 사람이 아니야, "영혼 안에 커다란 난로가 들어 있어", 이 추운겨울 가까이 오라고… 차분하게 눈 이야기 건네는 듯하다.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 아를, 1889년 1월, 개인 소장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 아를, 1889년 1월, 개인 소장

고흐는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을 그린 4개월 뒤인 1889년 5월에 자발적으로 생폴드모졸요양원에 들어간다. 여기서 생애 마지막 자화상이라고 이름 붙혀지는 세 점의 각기 다른 자화상을 거울을 통해서 마주하게 된다. 요양원에 입소한지 4개월 뒤, 고흐가 사망하기 10개월 전의 이야기다.

그 첫 번째인 '팔레트를 든 자화상'은 약 5주간의 발작에서 "회복해서 일어난 첫날에 그리기 시작했노라"고 고흐 스스로 1889년 9월 초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글에서 밝히고 있고. '소용돌이치는 배경의 자화상'과 '면도한 자화상'이 마지막 자화상에 대한 논쟁은 있으나 같은 9월에 그려졌음과 수염이 자라는 기간을 고려한다면, '소용돌이치는 배경의 자화상' 보다 '면도한 자화상'이 뒤에 그려져야 가능한 일이 된다. 무엇보다도 1889년 9월말 다시 그린 '아를의 빈센트의 침실'(세가지 버전이 있음) 벽면에 '면도한 자화상'이 걸린 점 등을 분석한 결과라고 한다.

'팔레트를 든 자화상'은 병세에서 회복한 환자의 야위고 창백함이 역력하다. 하지만 또렷한 눈매, 배경의 짙은 청자색과 노란 수염이며 머리칼에 창백한 안색의 보색대비로 얼굴이 더 강렬하게 도드라져 보인다. 그뿐일까!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단 말인가. 병상에 누웠던 농부가 깨어나며 '집에 있는 소 여물을 챙겨줘야 하는데…'라고 하는 일성과 일맥상통하는 화가로서의 소명의식은 아닐까. 화가로서, 농부로서의 천직. 팔레트와 붓을 굳이 넣은 이유는 그림을 계속 그리겠다는 의지이리라.

그 의지와 고뇌의 궁극적 목표는 삶을 보듬고 위로하며 자연과 사람에 대한 사랑의 메시지를 녹여내는 것일터. 이런저런 생각에 그림을 책상 위에 놓고 비스듬한 각도로 보니 고흐의 노란 얼굴이 웃는 얼굴로 보인다. 얼마나 액티브한 멜랑콜리인가.

소용돌이치는 배경의 자화상, 생레미, 1889년 9월,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용돌이치는 배경의 자화상, 생레미, 1889년 9월,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두 번째로 '소용돌이치는 배경의 자화상'은 정장에 머리를 뒤로 넘기고 옷과 배경이 청색톤이라 더없이 단정한 차림새다. 여기서도 머리와 수염의 노랑과 청색톤이 색채의 효과를 잘 보여준다. 다문 입과 찡거린 듯한 미간, 감상자와 마주치는 눈매에서 보이는 경직된 듯 강한 이미지. 특히 배경의 현란한 붓놀림으로 묘사한 소용돌이 치는 물결문양이 주는 심리적 불안감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 당시 고흐가 생폴드모졸요양원을 나가 파리 인근으로 떠나고자 했던 노력을 생각하면, 이 자화상을 통해서 동생이나 또 다른 이에게 정상적인 자신의 외양과 미술적 능력을 보인 바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소용돌이치는 물결문양이 재킷의 색상과 통일성있게 연결되어 정장을 돋보이게 한다. 열린 단추는 관계와 개방성을, 찡그린 듯 감상자를 응시하는 눈매는 '나 정상적인 사람이요'라는 이미지를 강조하듯 묘사되었다. 고흐 스스로 "나의 얼굴이 훨씬 더 차분해졌다"고 표현한 연유도 생각해 볼 일이다.

소용돌이치는 물결문양은 생레미 시기에 그려진 그림, 다시 말하면 사이프러스나무, 올리브나무 등에서 나타나는 특징이자, 고흐를 상징하는 기법이기도 하다.

면도한 자화상, 생레미, 1889년 9월, 개인 소장
면도한 자화상, 생레미, 1889년 9월, 개인 소장

고흐는 1889년 9월 후반에 생애 마지막 자화상인 '면도한 자화상'을 그린다. 고흐도 새치라도 뽑고 부모님을 뵙는 아들의 심정이었을까. 면도며 머리도 짧게 단정히 하고 뒤로 넘겨 깔끔한 모습을 했다. 어머니께 선물로 보낸 작품이다. 고흐가 어머니께 쓴 편지에서 자신을 "아직도 네덜란드 쥔데르트 출신의 농부와 별 다를 바 없어 보인다"고 했다. 1885년 집을 나오고 한번도 고향을 찾은 일이 없으니 집 나올 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잘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싶었으리라. 화가로서 내면의 고뇌, 열정을 표현하기보다는 고흐 자신의 모습에 가장 어울리고 어머니가 기억하는 그런 모습에 가까운 그림이겠다. 그런 선입견 때문인지 고흐가 19세 때 찍은 사진과 가장 닮은 자화상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까지 쉼없이 고흐의 자화상을 감상해 왔다. 혹여 고흐의 삶이나 그림에 대하여 피상적인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겠다.

가왕 조용필이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흐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라고 노래했듯이 고흐의 멜랑콜리한 면을 떠올리는 이가 많다. 특히 자화상을 감상하면서 실존적 불안, 고독, 고뇌, 결핍 등의 잔상이 그런 측면을 강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경지에서 늘 치열하게 삶을 살아왔다. 화가로서 인간의 깊은 고뇌를 그림으로 보여주기 위해 그가 갖는 육체적, 정신적, 물질적인 한계들을 마주할 때마다 "절망적인 멜랑콜리보다 갈망하고 추구하고 얻으려고 노력"하는 다이나믹 멜랑콜리로 승화시키면서 예술가로서 삶의 목적에 다가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싯구처럼….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고흐처럼 다이나믹 멜랑콜리를 외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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