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고흐의 설중귀인도(雪中歸人圖), '눈 속의 광부들'
[문화산책]고흐의 설중귀인도(雪中歸人圖), '눈 속의 광부들'
  • 전기복 기자
  • 승인 2022.02.16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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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공기에, 흰 눈이 주는 새로운 풍광
눈 속의 광부들, 벨기에, 1880년,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
눈 속의 광부들, 벨기에, 1880년,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

(내외방송=전기복 기자) "황혼녘에 하얀 눈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광부들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인 광경이야…, 저녁때면 작고 네모난 유리를 끼운 창 너머로 정겨운 불빛이 새어 나온단다"

고흐가 벨기에 보리나주라는 탄광촌에서 전도사로 일할 때,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크리스마스 전 내린 눈에서 받은 소회를 적은 글이다. 이를 모티브로 한 그림이 '눈 속의 광부들'(1880년)인데, 물론 화가 이전의 전도사 고흐가 그린 그림이다. 우리네 화제(畵題)로 표현하면 '눈 속에 돌아가는 사람', 설중귀인도(雪中歸人圖)가 되겠다.

고흐가 전도사가 되기 전에는 화상 일이며 교사, 서점 점원을 전전했다. 더구나 목사가 되기 위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신학교 입학을 준비했으나 그리스어를 못해 입학에 실패하고 전도사를 양성하는 벨기에에 있는 브뤼셀신학교 수습과정을 밟게 된다.

사실 전도사 과정도 못 마치고 퇴학당한다. 급하고 다혈질적인 성정이 반항적 자세였을 터. 요즘 말로 하면 목사인 아버지가 학교에 마지막으로 기회를 달라며 탄원서를 낸 '아빠찬스' 덕분에 보리나주에서 평신도 전도사로 일하게 된다.

보리나주는 벨기에와 프랑스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탄광촌으로 고흐의 고향 네덜란드는 프랑스 반대쪽에 위치한다. 고흐는 가스폭발, 갱도 붕괴, 가스 질식사 등으로 악명 높은 마르카스탄광이 있는 보리나주에서 약 22개월을 보낸다.

한번은 두레박처럼 생긴 우리 같은 것을 타고 지하 700미터를 내려가 탄광 여기저기를 보게 된다.

"여기서 몇 년을 산다 해도 갱 안으로 들어가 보지 않으면 정확한 생활상을 이해할 수 없다"라고 그 스스로 이야기하듯, 소년들이며, 여자아이들까지 막장에서 석탄을 화차에 싣는 일을 할 줄은 몰랐다. 이를 본 고흐는 많은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광부들이 느꼈을 고된 노동과 질병, 잿빛 마을의 음산한 분위기도 눈 내린 설경이 주는 감흥은 또 다르게 다가왔나 보다. 

고흐는 왜, 눈을 밟으면서 퇴근하는 광부들을 보고 감동적이라고 했을까. 그림을 보자. 온통 잿빛과 흰빛이다. 그래서 탄광촌의 설경으로 이해된다. 굴뚝 청소부처럼 시커멓게 탄광을 나선 광부들은 흰 눈에 대비되어 더 강렬하게 보였으리라. 뒤처져 고개 숙인 광부에게서 느껴지는 힘겨움도 있지만 앞서 중간쯤에서 발맞추듯 걷는 두 명은 활달하게 묘사되었다. 덩치 작은 어린듯한 선두에 선 이들은 '내일 다시 보자'며 인사 나누는 모양새다. 예나 지금이나 힘든 일을 하나 좀 편안한 일을 하는 이나 퇴근이 주는 기쁨은 같은 것. 

길가로 늘어선 검은 산사나무 울타리는 눈 위에 쓰인 어린아이들의 글자처럼 꼬부랑 그 자체다. 어설프게 다가오는 전체적인 그림이 주는 느낌과 비슷하다. 중간부의 여백을 통해서 흰 눈 내림이 더 강조되었고 집 몇 채가 배경을 이루는 그림이다.

아마도 갱도를 나온 광부들은 차가운 공기에, 흰 눈이 주는 새로운 풍광에 더 살아있음을 느낄 터. 고흐는 짧은 순간이나마 노동에서의 해방감, 살아서 집으로 돌아간다는 실존의 안도감, 가정집에서 새어 나오는 정겨운 불빛이 주는 존재를 보듬는 위안을 그들을 통해서 보았음이랴.

자신을 돌보지 않고 전도사로 헌신하는 자신의 처지와 그들이 같다라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지치고 병든 이들에게 입은 옷과 음식을 다 내어놓는가 하면 짚 위에서 잠을 잘 정도의 그였으나 지역 기독교위원회는 고흐가 광부들과 너무 같은 처지로 생활하는가 하면 설교 능력이 떨어진다고 평가하고. 심지어 그가 종교에 미친 사람으로 취급했다. 시쳇말로 고용 연장이든, 재계약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설중귀인이라 했다. 앞서 '눈 속을 걸어가는 광부들'에서는 광부들이 눈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즉 퇴근하는 풍경이다. 더 이상 전도사 길을 걸을 수 없는 고흐가 돌아갈 곳은 어딜까. 광부들처럼 집으로, 고향으로 돌아갔을까?

솔직히 '눈 속을 걸어가는 광부들'을 보면, 어설퍼 보이나 다른 상상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대체로 그림 속에 등장하는 설경들은 풍경 그 자체를 그리거나 빙판 놀이며 사냥하는 사실적인 표현들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물론 동양화에서는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우정이나 추구하는 정신세계를 빗댄 그림들이 많다.

광부들이 고된 노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듯 고흐도 지친 육신을 이끌고 고향 네덜란드로 가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고흐가 마음속 깊이 숨겨 둔 생각으로 '되돌아감'이라는 상상을 하곤 한다. 

밝혔듯이, 눈 밟으며 퇴근하는 광부들의 모습이 감동적이라고 한 그 편지의 바로 앞 문장을 보자.

"크리스마스 전 눈이 쌓였지. 농민 화가 브뤼헐의 눈 덮인 풍경화가 생각났단다. 다른 많은 사람들의 그림, 저 빨강과 초록, 검정과 하양의 독특한 효과를 실로 적절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들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더구나"

베들레헴의 인구조사, 벨기에, 1566년, 벨기에 브뤼셀 왕립 미술관
베들레헴의 인구조사, 벨기에, 1566년, 벨기에 브뤼셀 왕립 미술관

피테르 브뤼헐(1525~1569)의 그림은 벨기에 브뤼셀 왕립 미술관에 소장된 '베들레헴의 인구조사'(1566년)를 말한다. 고흐가 브뤼셀신학교를 다니며 브뤼셀에 체류할 당시 방문한 동생 테오와 함께 미술관에 갔던 추억을 상기한 대목이다.

내린 눈을 보고 옛 거장 피테르 브뤼헐의 눈 덮인 풍경화를 떠올리는 고흐. 브뤼헐이 누구인가. "최초로 눈이 내리는 풍경을 그린 화가 중의 한 사람"이지 않던가.

그의 '베들레헴의 인구조사'는 성서에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인구조사를 명해 모든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요셉과 마리아도 고향으로 향하던 중 플랑드르 마을에 당도한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물론 전경에 묘사된 나귀 끄는 요셉과 나귀를 탄 마리아의 존재감은 미미하게 표현되었다. 돼지를 잡는 사람, 세무서로 보이는 집 앞에 모인 사람들, 언 연못을 건너거나 얼음을 지치는 사람들, 집짓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인구조사하는 심정으로, 몇사람이 한 장면에 묘사되었는지 셈하듯 이모저모를 감상하는 재미가 있는 그림이다. 

생각이 있으면 언젠가 행동은 나오고 따르기 마련인 법. 고흐는 생각에 그치지 않고, '눈 속을 걸어가는 광부들'을 그렸다. 이 순간만큼은 전도사가 아닌 마음속 꿈꾸었을 화가 고흐로 돌아온 것. 설중귀인 고흐, 설중귀인도 '눈 속을 걸어가는 광부들'!!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그 '없다'라고 말하는 생각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흐의 또 다른 편지글을 보자. "장차 내가 화가가 될 리도 없고 지금 그 일을 억제하고 있으니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게 좋겠다"

과연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반대로 도외적 풍경이나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 등을 많이 그렸다고 한다. 이중 편지에 동봉한 한 작품이 '카페 오 사르보나주'(1878년)라는 습작이다.

카페 오 사르보나주, 벨기에 , 1878년,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
카페 오 사르보나주, 벨기에 , 1878년,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

초승달 달빛은 재빛 마을을 비추고 탄광촌에 어울리는 소박한 카페를 그린 그림이다. 걷힌 커튼이며 또 다른 열린 창문은 화인(畵人)으로 가닿는 고흐의 숨길 수 없는 열린 마음처럼 보인다.

이뿐일까. 많은 기록들을 보면, 보리나주에서 가난하게 생활하면서도 사고로 다치거나 병에 걸린 광부 등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했다. 그런 가운데 1879년 8월 언젠가는 브뤼셀까지 걸어서 목사이자 아마추어 화가인 피터르선이라는 사람을 찾아가서 광부들을 스케치한 자신의 그림을 보여 주며 조언을 구한 일이 있었다. 

1880년 연초에는 교통비가 없어 70여 킬로미터를 걸어서 프랑스 쿠리에르에 사는 화가 쥘브르통(1827~1906)의 집앞까지 찾아갔으나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고흐는 왜 편지에서 그림이야기를 자주 들먹이고, 습작 등을 그려서 조언을 구하는 등의 행동을 했을까. '그림에 관심있노라, 그런 마음을 알아보고 손잡아 달라'는 아우성은 아니었을까. '내 재능이 화가로서의 소질을 가졌는지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고흐는 이렇듯 마음속 깊은 데서 꿈틀거리는 화가의 길을 선뜻 나서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십 대 후반이나 이십 대 초반이면 화가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정작 본인은 하는 일마다 말썽으로 끝났고 가족들로부터의 신뢰도 바닥난 상태였다. 무엇보다 생활력이 없었다. 다른 일을 새로 시작하기에는 당시로선 만만찮은 27세의 많은 나이. 이제 어떻게 할까.

처음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더이상 전도사 길을 걸을 수 없는 고흐가 돌아갈 곳은 어딜까? 광부들처럼 집으로, 고향으로 돌아갔을까. 생각해 볼 수 있는 바는 '눈 속을 걸어가는 광부들' 그림 아닐까. 하얀 눈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광부들의 모습에서 받은 감동적인 광경, 가슴에서 밀려오는 감동을 그림으로 표현했다는 사실 말이다. 그림을 계속 그린다는 사실 말이다.
  
그는 약 22개월간의 보리나주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브뤼셀로 돌아왔다. 더 깊은 신학 공부가 아니라 미술학교를 다니기 위함이었다. 고흐는 잠시나마 왕립미술아카데미에서 수학한다. 이로써 고흐는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1880년 10월의 일이다.

고흐의 삶에서 벨기에 보리나주 시기는 평신도 설교자로서 자신도 돌보지 않고 '과함이 문제'가 될 만큼 힘든 시기였다. 그런 와중에도 겨를이 있을 때마다 그림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화가의 길을 걷기 전 고흐가 그린 '눈 속을 걸어가는 광부들'을 볼 때마다 순진무구한 아이가 그렸나 라는 생각과 함께 눈 내리는 날 화가로 돌아온 고흐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곤 한다. 

설중귀인(雪中歸人), 흰 눈을 보면서 자신만의 브뤼셀로 발길을 돌려야 하는 많은 이들을 위해서. 올겨울, 눈이 자주 내리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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