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고흐의 자화상에서 읽는 다이나믹 멜랑콜리(2-1편)
[문화산책]고흐의 자화상에서 읽는 다이나믹 멜랑콜리(2-1편)
  • 전기복 기자
  • 승인 2022.02.01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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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1), 파리, 1887년,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자화상(1), 파리, 1887년,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내외방송=전기복 기자) 팬데믹의 긴터널, 멜랑콜리. 고흐라면 이러한 시기를 어떻게 대처할까. 그가 평생 느꼈을 경제적 궁핍이며 건강문제도 지금의 환란에 못지 않은 개인적인 어려움이었을 터.

"절망에 굴복하는 대신 나는 적극적인 멜랑콜리를 결심했어. 우울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절망적인 멜랑콜리보다 바라고 추구하고 얻으려고 노력하는 멜랑콜리를 더 중시하겠다는 뜻이야" 

이는 고흐가 화가의 길을 시작할 무렵 동생 테오에게 작성한 편지 글의 일부다. 이러한 정신이 향후 겪게 되는 어려움에도 자신을 지탱할 수 있게 해주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화가의 '적극적인 멜랑콜리' 개념을 자화상이 역동적으로 변화해가는 맥락 속에서 이를 '다이나믹 멜랑콜리'라 해본다. 화가의 정신이 가장 집약적으로 들어나는 자화상을 통해서, 이 다이나믹 멜랑콜리의 의미를 읽어보자.

고흐가 네덜란드 누에넌에서 유명한 '감자 먹는 사람들'(1885.4)을 그리기 위해서 농부의 두상을 연구하고 수없이 그렸다. 다른 사람들의 얼굴 형태를 오랫동안 그린 다음에서야 자신의 얼굴을 그리게 되는데, 이러한 자화상들은 그가 1886년 프랑스 파리로 거처를 옮긴 이후의 일이다.

고흐가 그린 자화상이 총 43점이라는 기록도 있지만 나는 35점 이상 그의 자화상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가 파리로 온 1886년 3월부터 마지막으로 자화상을 그린 1889년 9월까지 42개월이라는 기간을 고려해 보면, 대략 한 달에 한 점의 자화상을 그린 것이 된다. 가장 많은 자화상을 남긴 화가로 유명한 판 레인 렘브란트(1606〜1669) 이후 이렇게 많은 자화상을 그린 화가가 있을까.

모델료를 지불할 수 없는 경제적 궁핍, 심리상태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모델을 구할 수 없어 자신을 연구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말이다.

"모델이 없는 경우 자화상을 그리려고 일부러 좋은 거울을 샀단다. 만약 그리기 까다로운 내 머리의 색상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머리도 문제없이 그릴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해"

다수의 자화상이 다른 그림의 이면에 그려졌거나 이전 그림 위에 바닥칠을 하고 그려졌는데, 종이 한 장도 허투루 쓸 수 없는 그의 심정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제 감상할 '검은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도 '서 있는 나체여인' 습작 위에 그려졌다.

검은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 파리, 1886년 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검은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 파리, 1886년 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1886년 봄에 그려진 초기의 작품인 '검은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을 보자.

검은 펠트 모자에 외투를 입고 남성용 스카프를 맨 신사의 모습이다. 아직은 도시적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탓일까. 거의 정면을 응시하는 눈매가 강하나 표정은 정적이다. 네덜란드 시기의 어두운 색채와 안트베르펜에서 잠시 수학한 아카데미적인 분위기가 연상되는 요소가 다분히 남아 있다. 초기에 그려진 자화상과 앞으로 소개되는 작품들을 나열해 보면, 그가 얼마나 다양하게 이미지를 창출하고자 했는지 그리고 색채며 표현기법들이 역동적으로 변화했는지 알 수 있다.

다음은 "자신의 외면과 내면의 감정을 충실하게 표현하기 시작한 자화상"이라는 평가를 받는 '잔이 있는 자화상'을 보자.

잔이 있는 자화상, 파리, 1887년 1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잔이 있는 자화상, 파리, 1887년 1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이 작품 또한 기존 그림 위에 그려진 자화상이다. 고흐가 잔을 앞에 두고 얼굴을 왼쪽으로 4분의 3 정도 돌린 상태로 앞을 바라보며 앉았다. 입에는 파이프를 물고 있다. 얼굴엔 두껍게 붓질하여 입체감을 주고 배경에는 빨강과 초록색 점을 찍었다. 이는 앞으로 자주 보게 되는 색점과 색선, 보색효과 등의 시발점이 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점이다. 그만큼 고흐가 이 자화상에 대해 의미를 두었거나 만족한 증표인 듯, '빈센트' 서명이 그림 좌측 상단에 선명하다.

또 다른 '자화상'(1)을 보면 그 변화가 더 다이나믹하게 느껴진다. 이전 자화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색상과 거친 붓질이 확연하다. 처음으로 얼굴에 노란색이 칠해진 작품이다. 점묘파들의 점보다는 짧은 선으로 표현되는가 하면 배경엔 휘감듯 한 묘사가 나타난다. 아직은 강렬함이 덜하지만 얼마나 밝고 활달한 느낌의 노랑이고 역동적인 변화인가.

회색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 파리, 1887년 9-10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회색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 파리, 1887년 9-10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다음 그림 '회색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은 조르주 쇠라의 점묘화법을 초월하여 강렬한 색선으로 역동적인 표현에 중점을 둔 그림임을 알 수 있다. 상의며 배경의 푸른색이 얼굴의 노랗고 붉은 색과 대비되어 얼굴을 더 강렬하게 돋보이게 한다. 후광과 같은 배경의 원형을 그리는 붓질은 고흐 그림의 특징을 보여준다. 내면의 에너지가 얼굴을 통해 폭발하듯 선이 얼굴 밖을 향해 퍼져나가며 예술혼을 발산하는 모양새다.

이젤 앞에 있는 자화상, 파리, 1888년 1-2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이젤 앞에 있는 자화상, 파리, 1888년 1-2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이제 파리 시기의 마지막 자화상을 보자.

그의 말대로 "이마와 입 주변에는 주름이 있고 나무처럼 딱딱하며 빨간 수염을 지닌 덥수록하고 슬픈 모습"으로 묘사하기에 이른다. '이젤 앞에 있는 자화상'(1888.1)으로 팔레트와 붓을 들고 이젤 뒤에 선 화가의 모습이다. 차려입었으나 사치스럽지 않다.

"열정이 모두 사라진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표현했다"고 하나 그림을 확대해 보라. 얼굴에 두텁게 칠한 붓질이며, 회색빛이 도는 하얀 벽을 배경으로 칠해진 거침없는 채색이 얼마나 돋보이고 강렬한가. 슬픈 모습이나 절망적인 멜랑콜리가 아닌 새로운 남녘을 꿈꾸고 고뇌하는 멜랑콜리. '내 안에는 무언가가 있는데, 그게 대체 뭘까!, 어떻게 그것을 표현할까'를 고뇌하는 화가의 풍모를 하고 섰다.

잘 다듬어진 수염의 주황색과 상의 파란색이 서로를 돋보이게 한다. 상대적으로 창백해 보이는 얼굴과 이젤을 주시하는 녹색 눈이 우울함을 자아낸다. 그러나 다시 말하건대 파리생활에 지친 심신에도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직시하고 새로운 변화를 갈구하는 긍정적인 멜랑콜리가 느껴진다.

이 그림은 년도를 나타내는 숫자와 함께 서명이 되어 있는 두 점의 자화상 그림 중 한 점인데 나머지 한 점은 앞서 감상한 ‘잔이 놓인 자화상’이다.

이제까지 시기별 고흐의 자화상에서 멜랑콜리한 이미지 이면에서 광기에 가까운 에너지를 발산하는 강렬한 묘사들을 보았다. 이를 파노라마처럼 연결해 보면, 초기의 어둡고 사실적인 표현에서부터 인상파적인 색채며 거친 붓 터치, 내면의 깊은 고뇌와 열정을 소용돌이 치는 자신만의 양식으로 고양 시킨 과정 즉 다이나믹 멜랑콜리를 읽을 수 있다.

펜데믹의 긴터널, 우울을 이야기한다면 절망적 멜랑콜리는 레거시함으로 치부하자. 그래서 고흐의 자화상에서 읽는 다이나믹 멜랑콜리를 감상해 볼 일이다. (2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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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성 2022-02-01 11:37:00
원래 자화상은 자기를 미화해서 많이그리는데 그림이 비슷한거보니 저얼굴이 맞나보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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