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외방송=내외뉴스 기자) 앵커(anchor)란 움직이지 못하도록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닻을 의미한다. 즉, 배를 한 곳에 멈추어 있게 하기 위해 줄에 매어 물 밑바닥으로 가라앉히는 갈고리가 달린 기구(器具)를 말한다. 닻의 갈고리가 흙바닥에 박혀 배가 물결에 따라 움직여도 멀리는 흘러가지 않게 된다.
또는 연약한 지반(地盤)이 거동(擧動)하지 못하도록 구멍을 뚫어 쇠줄과 시멘트 몰탈(mortar)을 넣어 굳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을 앵커(anchor)라고 한다. 이러한 앵커의 뜻을 생활심리에 적용한 것을 앵커링 기법(技法)이라고 한다.
앵커의 다른 뜻은 정신적 지주이다. 심리적으로 혼돈과 공허와 암흑이 느껴질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엄마 또는 하나님을 부르게 된다. 이는 무의식에 내려져 있는 심리적인 닻, 정신적 지주를 찾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여성들은 마음이 힘들 때마다 출산 직후 아기와 함께 했던 상황을 떠올리면서 기분전환을 시도한다고 한다. 과거에 가장 기뻐했던 장면을 떠올리는 것이다.
어떤 남성들은 힘들 때마다 좌절 끝에 찾아온 전화위복(轉禍爲福, 재앙이 복으로 바뀜. 화가 복이 될 수도 있고, 복이 화가 될 수도 있다는 순환하는 세상 이치를 일컫는 말로 지금 재앙으로 여겨지는 것이 언젠가 복이 될 수도 있고, 지금 복이 언젠가 화가 될 수도 있으니 현재 상황에 너무 연연해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음)의 경험을 생각해내면서 용기를 찾는다.
믿음이 좋은 종교인들은 소망으로서 천국(天國)의 기쁨과 환희를 앵커링하면서 현재의 고난을 이겨낸다. 요컨대, 앵커링 기법의 핵심은 마음의 현실(現實)을 바꾸는 것이다.
외부 현실과 마음의 심리 세계는 다르다. 마음은 실재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기보다는 무의식적인 해석(解釋)과정을 거치게 된다. 즉, 문장이나 사물의 뜻을 자신의 논리에 따라 이해한다. 사람마다 무의식적으로 앵커링(anchoring)된 해석체계, 가치관, 이해의 필터링(filtering) 과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을 판단해야 하거나 협상을 해야 할 때 어떤 기준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마음속에 주어진 닻(앵커링된 가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이를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의식적으로 얼마나 온전한 대상(조건, 가치)에 닻을 내리고 있느냐의 문제라고 하겠다.
앵커링은 일종의 연결(連結)심리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주 노란색의 귤을 먹고 새콤함과 같은 자극적인 신맛을 느꼈다면 노란색만 보아도 입안에 자극적인 신맛이 상상되면서 침이 고이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데 이는 노란색과 신맛을 느낀 심리가 서로 연결(앵커링)돼 있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음악을 듣게 되면 마음이 아주 편해지는 경우, 자기 침대에 놓여있는 인형을 보거나 퇴근할 때 자신을 반기는 반려견을 보면서 하루의 피로가 날아가는 느낌을 경험하는 것 등 역시 일상에서의 앵커링 심리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앵커링 기법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엄마(양육자)가 울며 보채는 아이에게 "울면 귀신이 나타나 잡아갈 수도 있다"고 달래면서 "뚝!"이라고 말하는 것도 아이의 심리를 앵커링 시켜놓는 것이다. 아이에게 엄마(양육자)가 하는 말은 닻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엄마는 아이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무의식적으로 가장 밀접하게 연결(連結)된 존재이고, 영(靈, 망령이란 인간이나 동물의 시체로부터 떨어져 나온 혼을 가리킴)이며, 대타자(big other, 메시지를 완전무결하게 해독하는 이)이기 때문이다.
조직에서는 직속상관이, 엄마에게는 사랑하는 아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money)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앵커링 대상이다.
평상시 친하게 지내는 가족들을 대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낯선 사람을 만나게 되면 지나치게 위축되는 경우가 있다면 낯선 이를 만날 때마다 가족을 떠올릴 수 있는 앵커링 행동을 유발시킬 필요가 있다. 손을 잡는 행동이나 부드러운 웃음을 떠올린다든지 또는 즐거웠던 크리스마스 가족 모임을 생각해내는 일 등은 앵커링된 마음으로 편안하게 낯선 사람들을 대할 수 있도록 앵커링 기법을 적용하여 훈련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궁극적인 앵커링 대상을 발견하는 것이 영성 심리의 과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소크라테스(Socrates)가 사람들에게 배신당해 독배를 마시는 순간에도 휘둘리지 않고 마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차원의 영원한 진리의 차원에 앵커링 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김서정 박사
- 시인
- 상담심리학 박사
- 『작은 영웅의 리더십』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