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악예술원 박옥초 원장, 한과 흥, 멋을 지닌 우리 소리를 알린다
[인터뷰] 국악예술원 박옥초 원장, 한과 흥, 멋을 지닌 우리 소리를 알린다
  • 홍송기 기자
  • 승인 2020.08.05 14:2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사진=내외방송 김준호 기자)
▲ 국악예술원 박옥초 원장. (사진=내외방송 김준호 기자)

(내외방송=홍송기 기자) 아무래도 대한민국은 이상한 유전자를 지닌 민족인 것 같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거쳐 오면서 수많은 외세의 침입을 받았고, 지겹고도 질긴 가난 속에서도 기구한 운명을 헤쳐 나와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고,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는 세계 최고의 방역 모범사례와 뛰어난 시민의식을 선보였다. 이를 계기로 해외 언론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 이면에는 恨이라고 하는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한이라는 감정만으로 한국의 발전을 설명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이자 국악예술원을 통해 후학들을 양성하면서 국악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박옥초 원장은 한 나라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문화적 특성을 알아야 하고, 그 근저를 꿰뚫고 있는 주된 흐름을 읽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박 원장을 통해 우리나라의 문화적 특성과 우리 소리, 국악이 가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해 알아봤다.

▲ 2016년 12월 15일 대한민국예술인센터 2층 대공연장에서 개최된 예촌예술인문화상에서 문학부문 예술인 대상을 받은 박옥초 원장과 수상자들이 당시 한국국악협회 홍성덕 이사장(왼쪽에서 세 번째)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2016년 12월 15일 대한민국예술인센터 2층 대공연장에서 개최된 예촌예술인문화상에서 문학부문 예술인 대상을 받은 박옥초 원장과 수상자들이 당시 한국국악협회 홍성덕 이사장(왼쪽에서 세 번째)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우리 소리의 키워드는 恨

박옥초 원장은 우리 소리의 근원에 대해 이해하려면 기본적으로 오랜 세월 한국 특유의 슬픈 정서인 한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원망하거나 슬퍼하거나 한탄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데, 이때 보통 유럽이나 일본, 중국 등의 역사를 보면 피해자(패자)가 심각한 피해(핍박)를 본 이후 가해자(승자)에게 비슷한 강도나 그보다 더한 강도의 복수를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한국 문화 속의 한은 끊임없는 외침과 내란의 역사 속에서 수난의 삶을 살아야 했던 민족적 비극과 뛰어넘을 수 없는 뿌리 깊은 신분제도로 인해 대부분의 백성은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를 안고 살아왔다. 우리 민족이 다른 나라들처럼 복수하지 않는 것은 그렇게 잔인하지 못한 데서 오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지금의 중국이나 러시아, 일본에 침략한 역사가 있지만, 특수한 사례에 국한된 것이었고, 우리 민족 근간을 관통하고 흐르는 감정의 기류는 한이라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한은 우리 민족 남녀에게 공통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여성들에게만 특별히 나타나는 종류의 한도 있다. 그것은 우리 현대사에서도 남아있던 남존여비사상과 가부장적인 사회로 인해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한으로, 남성 위주 사회에서의 소외, 순종을 미덕으로 강요당한 시집살이, 가난으로 인한 굶주림, 출산과 육아, 집안 살림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 고달픔 등은 전통사회 속의 대부분의 여성이 겪었던 애환이었다. 특히, 여성은 신분이 높고 낮음을 떠나 언제나 약자일 수밖에 없어 한을 이야기할 때 특히 여성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고 한다.

恨을 메꿔주는 흥과 멋

박 원장은 우리 민족에게 한이라는 감정만 있었다면 수준 높은 우리 문화를 설명하기 힘들다면서 흥과 멋의 의미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 민족은 술과 노래(놀이), 흥을 자주 즐겼다고 전해져 오는데, 흥은 한과는 반대의 의미로,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도 흥미를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흥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역사 곳곳에서 우리 민족이 흥이 많다고 나오고 있고, 사물놀이처럼 즐겁고 빠른 박자로 흥겹게 춤을 추고 노는 문화가 많았다는 것은 단적인 증거다.

우리 조상들이 흔히 즐겼다는 멋은 우리 삶 속에서 광범하게 쓰이고 있는 말이면서도 개념의 미학적 정의가 뚜렷하지 않은 말이다. 멋은 맛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학자들 사이에서는 두 단어가 감성적인 멋이나 감각적인 맛의 어감상 차이가 있을 뿐 유사한 말이라고 보고 있다. 멋은 사물의 위치나 자연의 조화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추구해온 우리 조상들의 높은 수준의 미적 감정이었으며, 단순히 아름답다나 예쁘다와는 의미 차이가 크다.

전문화되고 공연화되면서 대중과 괴리

국악은 우리나라 전통음악을 아우르는 말로, 통상 아악과 당악, 향악으로 구분되지만, 현대에서는 흔히 정악과 민속악, 제례악(종교음악), 창작국악 등으로 구분되며, 향악과 민속악이 국민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아악은 송나라 때 전해진 음악으로 엄밀한 의미의 아악은 문묘제례악 1곡뿐이고, 당, 북송 때 전해진 당악은 보허자, 낙양춘 2곡뿐이다. 아악과 당악을 제외한 모든 곡이 향악으로, 우리 국악의 주요 근간을 이루고 있는 전통음악이다.

정악은 궁중음악과 풍류방에서 즐기던 음악을 말하고, 민속악은 민간에서 향유했던 민요나 산조, 시나위, 잡가, 판소리를 말한다. 제례악(종교음악)은 유교 제례악과 불교음악을 여기에 포함하기도 하고, 창작국악은 일제강점기 때 판소리의 변형 및 서도잡가로부터 해방 이후 새로운 악기가 나오면서 늘어나기 시작한 셈이다. 국악이 대중들과 멀어진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서양 음악교육이 보편화되고, 국악의 전문화 및 공연화로 대중들과 멀어지기 시작했고, 도시화 및 대중문화의 확산으로 어느 사이 익숙하지 않은 음악으로 전락하고만 측면도 있다.

우리 민족에게 소리는 보편적이다

우리 민족은 서글픈 인생의 고단함에서 오는 한을 무력한 체념이나 억제된 우울, 복수를 위한 폭력도 아닌 음악과 놀이로 승화해왔다. 이러한 한을 푸는 방법으로 서민들이 가장 선호한 것은 일차적으로 노동의 고단함을 잊기 위한 노동요부터 한과 원을 풀 수 있는 민간신앙 및 종교였다. 뿐만 아니라 민요나 마당극, 판소리 역시 한을 표출하고 위안받는 방식이었다. 한을 푸는 방법에 건강한 웃음과 익살과 해학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가요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전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소리 한 가락 정도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노동이나 활동에서 소리는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전국 팔도에 걸쳐 폭넓게 퍼져 있었다고 보면 된다. 박 원장은 농요 베틀가를 보면 “베틀을 노세 베틀을 노세 / 옥난간에다 베틀을 노세”라는 사설 위에 자신들의 경험담을 녹여 놨고, 경상도 민요 뱃노래에서는 “어기여차 뱃놀이 가잔다 만경창파 풍랑 헤치며 노 젓는 뱃사공 흰갈매기 친구를 삼고 흘러만 가누나”처럼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설명했다.

▲ (사진=내외방송 김준호 기자)
▲ 국악예술원 박옥초 원장. (사진=내외방송 김준호 기자)

판소리와 민요가 가장 대중화

판소리는 크게 동편제, 서편제, 중부제로 나뉜다. 동편제는 섬진강 동편지역을 중심으로 지리산을 닮아 호방하고 직선적인 게 남성적이고, 서편제는 섬진강 서편지역을 중심으로 한을 다루듯 섬세하고 애절한 느낌이 여성적이며, 중부제는 경기・충청지역을 중심으로 꾸밈없이 담백하고 자유분방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판소리하면 대부분 영화 ‘서편제’의 영향으로 애절하고 가엾은 곡조로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경기민요는 여성처럼 부드럽고 서정적인 게 특징으로 맑고 경쾌하다면 전라민요는 통성을 사용해 경기민요보다는 남성적인 색채가 강한 편이고, 강원민요는 산세를 닮아 메아리 같은 여운이 있으며, 경상민요는 씩씩하고 우직한 느낌을 주는데, 지역별로 내는 소리에 따라 소리 창법이 다르다고 한다. 이처럼 민요는 그 지역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닮았다는 점에서 당시 서민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잡가는 판소리나 민요 등을 포용해 더욱 더 전문적인 장르로 발전했다.

이 중에서 민요는 가장 대중화된 장르로, 보통 작사자·작곡자가 따로 없으며 민중들 사이에서 구전돼 전해오고 있다. 민요에는 노동의 피로를 잊고자 박자를 맞추거나 흥을 돋는 노동요, 무용과 놀이를 함께 하는 유희요, 종교의식이나 제사의식에 사용되는 의식요, 녹두새요와 같이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정치요 등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노들강변이나 도라지 타령, 청춘가 등과 같이 민요는 우리 생활과 밀접한 풍경이나 사물, 인생에 관한 내용을 가락 위에 앉힘으로써 하나의 위대한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단순히 사설 위에 가락을 얹혀 있을 때보다 국악을 연주하는 악기가 더해지면 음악적인 확장력은 더욱 배가된다. 국악 악기 종류는 연주음악에 따라 가야금, 거문고, 아쟁, 태평소 등과 같이 상당히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물놀이에 사용되는 장구, 북, 꽹과리, 징 등이 가장 많이 거론된다. 특히, 이 중에서 장구와 북은 판소리나 민요 공연에서 흔히 자주 볼 수 있는데, 장구는 하나의 단조로운 소리를 강, 중, 약으로, 북은 고수가 가객의 소리에 맞춰 연주함으로써 음악적 완성도와 음의 폭을 배가시키는 악기로 많이 쓰인다.

국악인이 겪어야 했던 사회적 차별

박 원장이 국악을 하게 된 배경에는 학창시절 합창단 활동할 때 오랜만에 만난 선배가 국악을 배워볼 것을 권유했지만, 당시 국악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평가가 그다지 좋지 않아 많이 망설였다고 한다. 이어 계속된 선배의 권유로 1년간 국악을 배워보겠다는 결심하게 됐고, 잘 차려진 한복을 입고 화장한 모습으로 공연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고 마음을 굳혔다. 이후 일취월장 실력이 늘면서 본격적으로 공연에 참여하게 됐는데, 한 국회의원의 요청으로 간 공연에서 아직 기억에 남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그 공연 후 한 사람이 본인에게 술을 따르라고 했고, 모멸감을 느낀 박 원장은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 뒤에 안 사실이지만 술을 따라 달라고 했던 사람은 박 원장의 실력을 알아보고 칭찬하며 부탁한 말이었는데, 마치 본인을 기생 취급하는 게 기분이 나빠 오해한 것이었다. 그곳에서 무례한 사고가 벌어졌다는 것을 안 선생님이 “너는 그런 자리 가지 말고, 지도자를 꿈꿔라”는 충고를 했고, 이후 박 원장은 그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국악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박 원장이 결혼할 무렵 국악인이라는 이유로 집안의 반대도 심했다. 특히, 결혼생활 내내 시어머니의 편견은 계속 이어져 왔는데, 시어머니의 환갑날 박 원장 제자들의 공연을 흡족히 관람한 후에야 시어머니 본인이 지난 세월 국악에 대한 편견과 아집으로 인해 국악뿐만 아니라 소중한 며느리한테까지 오해했다면서 미안함을 전했다. 예술인에 대한 제대로 된 경제적인 대우를 받지 못해 마음고생 했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갔고, 달라진 국악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날이었다.

여성국극 아직 되살려야 할 기회 잡아야

안타까운 사연도 전했다. 한때 남성 역할을 대신한 여성국극의 인기가 대단히 높았지만, 영화가 등장하면서 시대적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체계적인 후진 양성 시스템도 없어 지금은 거의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국극은 창극을 말하는데, 여러 사람이 판소리 가락으로 연기하면서 극을 이끌어가는 연극으로, 박 원장도 한때 여러 작품에 출연한 바 있고, 위원장으로서 국극의 인기를 되살려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국악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성국극에 출연한 바 있는 대부분의 여성국악인들이 고령화됨에 따라 활성화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젊은 국악인들이 여성국극을 배우려고도 하지 않는 데다 국가지원사업에도 빠져 있어 예전에 사용했던 의상이나 공연 관련 기자재들을 그대로 사용하는 등 전반적으로 열악한 상황이고, 재원 마련 및 공연장 섭외마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현대적인 감각으로 대본을 재구성해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악 계속 발전하며 세계로 진출

박 원장은 2014년 정부지원사업의 일환으로 한국국악협회에서 호주 입양아 가족에게 우리 문화예술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할 수 있도록 무용, 풍물놀이, 판소리 등의 공연을 보여주고 가르쳤다. 그런데 그곳의 아이들은 처음에는 이미 현지화되고 한국의 문화와 정보를 쉽게 접하고 배울 기회가 없어 현지 부모들이 적극적으로 참여를 권유해도 우리 문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점차 우리 문화를 받아들이고 친밀감을 표시하는 등 해외 문화교류에서 잊을 수 없는 기억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박 원장은 우리 조상들의 생활이 다양한 형태의 국악으로 완성됐으며, 단순히 국악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다양한 분야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발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악의 창법이 트로트 등의 가요에서 사용되기도 하고, 국악 역시 새로운 방식과 의미 해석으로 진보하고 있다. 실제로 국악을 배우러 오는 사람 중에는 가수 지망생과 현업 가수도 포함이 돼 있고, 더욱 많은 사람이 국악을 배워 다양한 분야에 접목시켜 우리 문화 콘텐츠를 다양하게 발전시켰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올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후학들을 양성하는 국악예술원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감염 확산을 우려해 비대면 교육방식이 강조되면서 오프라인 교육방식 대신 온라인 교육을 위해 국악 교육 동영상을 제작하고 있는데, 교육자료를 만들면서 온라인으로 수강생을 만날 생각에 여태까지 알지 못한 새로운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국악을 전문적으로 익혀 실력을 인정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용 등 다양한 분야를 익혀 안목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 유튜브를 통해 어거스트 디(Agust D)의 ‘대취타’, 블랙핑크의 한복 패션 등이 화제가 되고,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대한민국이 집중 조명되면서 K-팝과 K-드라마 등을 중심으로 제3의 한류가 확산되고 있다. 역사와 문화는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 온다. 한복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부터 전통과 현재가 공존하는 서울의 모습은 우리나라 문화의 축소판이자 반만년 동안 이어져 온 우리 민족의 역동적인 역사의 축약판이기도 하다.

국악 후진 양성과 대중화에 앞장서

박 원장은 이 모두가 유구한 역사를 거쳐 오는 동안 축적된 문화이기 때문에 가능했고, 이러한 민족의 유산은 계속 이어져 가야 한다면서 앞으로도 차기 국악인 발굴과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 홍보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소리 이수자이자 중국 길림성 예술대학 종신교수로도 활동 중인 박 원장은 마포구 시니어계층에 경기민요를 보급하고 있으며, 각종 공연 및 대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관여하고 있다.

경기민요의 전통계승 발전에 헌신하고 국악의 대중화 및 세계화에 이바지하면서 후진 양성 선도에 기여한 공로로 ‘2014 대한민국 사회공헌대상’을 수상한 박옥초 원장은 무엇보다 가족들의 노력과 지원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결혼 전부터 국악공연 및 사회활동을 이해하고 배려해준 남편과 엄마 없이도 강하고 듬직하게 자란 아들과 그 옆에 함께 하고 있는 며느리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특히, 요즘에는 5살 손자의 재롱을 보면 행복하다고 활짝 웃는 박 원장의 모습은 국악 원로이기 전에 우리들의 할머니 같은 모습이었다.


관심기사

오늘의 이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법인 : (주)내외뉴스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04690
  • 인터넷신문등록일자 : 2017년 09월 04일
  • 발행일자 : 2017년 09월 04일
  • 제호 : 내외방송
  • 내외뉴스 주간신문 등록 : 서울, 다 08044
  • 등록일 : 2008년 08월 12일
  • 발행·편집인 : 최수환
  •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3 (뉴스센터)
  • 대표전화 : 02-762-5114
  • 팩스 : 02-747-5344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유진
  • 내외방송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내외방송.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nwtn.co.kr
인신위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