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명절증후군
고흐의 명절증후군
  • 전기복 기자
  • 승인 2020.10.06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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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방송=전기복 기자) '언택트 추석'이다. 모 지자체는 '불효자는 옵니다'라며 귀성 반대에 나섰고 정부도 '거리 두기가 곧 효'라는 방침이다. 이맘때면 등장하는 명절 스트레스나 명절증후군 이야기가 올해는 어떤 흐름일지 자못 궁금하다. 설·추석이 끝난 후 법원에 이혼 신청이 늘어난다는 기사도 있지 않던가.

고흐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의 설·추석 명절은 그의 성탄절에 비유될까. 언젠가 "모든 일은 최선의 세계에서 늘 최선의 길을 가고 있다"고 한 고흐의 성탄절은 평상시보다 더 행복했을까?

'그렇지 못했다'이다. '간절한 즐거움'과 '안타까움의 연속'이었다. 고흐는 여덟 살 때 마을에 있는 쥔데르트공립학교에 다녔으나 이내 자퇴한다. 주의가 산만한 그의 태도가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는 학교 와 맞지 않아 장기간 결석 끝에 학교를 그만두게 된 것이다.

이후 열한 살에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프로빌리 기숙학교에 맡겨졌다. 예민하고 내성적인 그는 기숙학교의 생활여건이나 단체생활의 적응보다는 힘겨움과 고독감을 호소한 나날을 보냈다. 결국 두번째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훗날 그는 생레미 요양원에 있는 날들을 프뢰빌리 기숙학교에서 보낸 날들에 비유했다. "나는 어느 모로 보나 지금 적절치 않은 곳에 있다고 느낀다. 열한 살 적 기숙학교에 있을 때 그랬던 것처럼"이라고 편지했다.

고흐는 14세 때인 1866년 9월 집에서 더 먼 곳인 틸부르흐의 빌럼2세 기숙학교로 한 번 더 옮기게 된다. 그는 외로움에 휩싸였고 고독감을 빗발치듯 쏟아 냈다. 가족들을 보기 위해 성탄절까지 기다려야 했다. 기숙학교 시절 가족들을 만난다는 그 자체로 성탄절은 행복절일 수밖에 없었다.

고흐의 여동생 리스가 오랜 시간이 지난 1875년에 작은오빠 테오에게 "큰오빠가 기숙학교에서 집에 왔을 때 어땠는지 기억해? 그 후로는 한 번도 그토록 즐거운, 아니 그토록 행복한 나날을 함께한 적이 없었지."라고 편지한 것에서도 느낄 수 있다. 이를 두고 나는 이름하여 고흐의 어린시절 '간절한 즐거움'이라 표현한다.

각설하고, 본격적인 화가의 길로 들어선 후 고흐의 명절 즉 성탄절은 어떠했을까? 고흐의 성탄절 전후사는 잔혹사였다. 집에서 추방당하고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사회성으로 사건을 일으키는가 하면 온전하지 못한 건강으로 간질성 발작의 연속이었다.

▲ 누에넌 목사관, 누에넌, 1885.10.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
▲ 누에넌 목사관, 누에넌, 1885.10.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

성탄절, 부모님의 집에서 추방된 것은 1881년의 일이다. 고흐가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지 1년 조금 지난 에턴시절의 이야기다. "의례적으로 교회에 가는 게 싫다"며 성탄절 교회 예배에 참석하기를 거부하면서 일어난 사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흐 아버지는 개신교의 보수적인 목사였다. 목사인 아버지는 큰아들인 고흐의 입에서 "목사를 꿈꾸며 공부하던 그 시절이 가장 비참한 시기였어요"라며 끝까지 말대꾸와 반항에 결국 "내 집에서 나가라"고 하기에 이른 것이다.

집을 나온 고흐는 헤이그로 향했다. 그곳에서 1883년 9월까지 머물렀고 이 기간 고흐의 아버지는 누에넨에 있는 새로운 교회로 발령을 받아 이사하게 된다.

이렇다 할 수입이 없던 고흐는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생활비를 충당받았으나 생활고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1882년 성탄절은 빈곤과 고독의 명절이었다.

달리 갈 곳 없던 고흐는 부모님이 사는 누에넨에 1883년 12월 5일 도착했다. 환영받지 못한 그는 도착하자마자 사사건건 아버지와 부딪혔다.

언젠가 고흐가 "너무나 오랫동안 아버지의 감정을 봐주었으며 참을수 없는 모욕에 시달려왔다"며 "분노를 속에 담아 둘 수 없다"고 토로한 것만 보아도 요란스러워진 집안을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다.

2년 전 성탄절, 에턴에서 쫓겨날 때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았고 짐작컨대 1883년과 1884년 성탄절도 불화의 연속이었을 게다. 그럴 것이 아직 찬기운이 남은 1885년 3월 26일 초저녁 일을 보고 집에 들어선 고흐의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쓰러져 사망하게 된다.

▲ 성경이 있는 정물, 누에넌, 1885.4.
▲ 성경이 있는 정물, 누에넌, 1885.4.

그의 '성경이 있는 정물' 속 성경과 소설이 암시하는 양극성만큼이나 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가져온 결과였을까. 큰아들과의 계속된 불화로 지쳐있던 아버지였다. 고흐가 "아버지를 죽게 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가족들의 원성을 들으면서 고립과 죄책감은 그의 몫 자체가 됐다.

고흐는 그해(1885년) 11월 집을 다시 나와 벨기에 안트베르펜에 잠시 머물게 되면서 성탄절을 맞이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자신을 향해 말하고 행동하던 기억 때문에 괴로움을 호소했다. 울적함에 도시의 번화가를 배회했을 고흐를 상상할 수 있다. 이미 성탄절만 다가오면 이름모를 우울감 즉 명절증후군에 시달리는 고흐가 된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고흐는 이듬해 3월부터 약 2년간 프랑스 파리에서 그리고 남프랑스 아를에서 약 1년 2개월여를 보내게 된다. 그의 생애있어 가장 활동적이고 아름다운 시기라고 할 수 있으나 한결같이 향수병, 고립감, 자책감, 우울증 등과 같은 감정을 떨칠 수 없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아를, 1889.1. 영국 코톨드 미술관
▲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아를, 1889.1. 영국 코톨드 미술관

특히 아를에서의 성탄절은 너무나 유명한 귀 절단 사건(12. 23)으로 우리들의 기억속에 남아 있다.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여기서는 귀 절단의 원인을 찾고자 함은 아니다. 혹자는 고갱과의 불화에서 원인을 찾는다. 누구는 동생 테오의 결혼 소식을 담은 편지를 받고 동생의 정신적, 재정적 지원을 잃을 거라는 두려움의 결과라고 말하다. 유전적 또는 생후 원인에 기인한 신경발작 등 지병을 그 이유로 들 수도 있다.

이제 그의 생애 마지막 성탄절만 남았다. 죽기 전해인 1889년 가을에 접어들면서 고흐의 관심은 올리브 숲을 캔버스로 옮기는데 있었다.

▲ 올리브 나무 숲: 오렌지빛 하늘, 생레미, 1890.11. 스웨덴 예테보리 미술관
▲ 올리브 나무 숲: 오렌지빛 하늘, 생레미, 1890.11. 스웨덴 예테보리 미술관

올리브 숲 그림을 그리다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다. 사용하던 물감을 먹으려고 하다가 빼앗기며 정신을 잃은 것이다. 이전에 있어왔던 성탄절에 대한 공포가 생애 마지막 성탄절에 일어난 발작의 원인이 된 것은 아닐까.

아무튼 성탄절 시기만 되면 일어나는 고흐의 명절증후군이라 할 수 있는 성탄절 잔혹사의 한 장면임은 분명하다.

▲ 노란 하늘과 태양 아래 올리브 나무들, 생레미, 1889.11. 미국 미니에나폴리스 미술관
▲ 노란 하늘과 태양 아래 올리브 나무들, 생레미, 1889.11. 미국 미니에나폴리스 미술관
▲ 올리브 나무들, 생레미, 1889.9. 개인소장
▲ 올리브 나무들, 생레미, 1889.9. 개인소장

'올리브 나무들'(1889. 9), '올리브 나무 숲'(1889. 11), '노란하늘과 태양 아래 올리브나무'(1889. 11) 등 수십 점의 올리브 나무를 주제로 한 그림들만이 말없이 남아있다.

고흐의 성탄절증후군은 그가 '여지없이 패망한 상태임을 비유적으로 하는 말' 같이 들릴 수 있다. 그의 건강상태나 생활은 그랬다. 그러나 고흐는 "뭔가 가치있는 일은 없을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초심을 잃은 적이 없었다.

모든 일이 최선의 세계에서 늘 최선의 길을 내어주지는 않았지만 그가 느끼고 바라보는 시선으로 가장 사람 냄새나고 가장 자연에 온당한 그림들을 우리들에게 펼쳐 놓았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서 우리는 따뜻한 위안을 받는다.

'언택트 추석!',

명절증후군을 떨칠 명화 감상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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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j 2020-10-06 17:16:14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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