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찔레꽃...고흐, 찔레꽃처럼 살았지
고흐의 찔레꽃...고흐, 찔레꽃처럼 살았지
  • 전기복 기자
  • 승인 2021.05.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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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찔레꽃, 생레미, 1890.4-5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고흐 미술관
▲ 찔레꽃, 생레미, 1890.4-5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고흐 미술관

(내외방송=전기복 기자) 욕망하는 것은 눈에 들기 마련이다. 본다는 행위 자체가 욕망한다는 의미이다.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 무엇을 보고 그림으로 그 이름을 불러 피워낸 꽃!. 앞다투어 핀 봄꽃들이 지고 난 허전함을 살며시 보듬는 시기, 늦은 봄과 초여름 그리고 흙빛같은 우리네 심성과 잘 어울리는 ‘이런 그림도 있었나 싶은 그림’, 오늘은 고흐의 ‘찔레꽃’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정확하게는, 고흐의 그림 ‘찔레꽃’, ‘꽃 핀 밤나무 가지’ 그리고 ‘꽃이 핀 아카시아 가지’다. 세 작품 모두 1890년 봄(4-5월)과 초여름(6월)에 그려진 그림이다.

“시골 풍경의 기록이며 수목들이 자란 토지를 느끼게 한다”는 그의 말처럼 찔레·밤·아카시아는 동네 어귀나 산기슭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꽃이 작고 화려하지 않아 군락짓고 향기를 품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는 공통점이 있는 나무들이다.

그래서인지 고흐도 찔레며 밤나무, 아카시아나무에 바짝 다가서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구나“며 이젤을 세우지도 못한 채 그렇게 넋을 놓고 서서 “오래 보아야 더 사랑스럽네”, 그래 니가 그런 존재구나, 이 척박한 땅에 뿌리내려 억척스럽게도 피웠구나, 향기가 있어 더 아름답다며 특정부위를 클로즈업한 그림을 그렸으리라 상상해본다. 세 작품 다 정물화 같은 그런 구도를 하고 있다.

‘찔레꽃’ 작품이 그려진 시기는 생폴드모졸요양병원에서 파리 인근 오베르쉬르우아즈로 떠나기 전, 1890년 4월 발작이 있기 전부터 5월 중순 어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하루라도 빨리 요양병원에서 나가기를 간절히 바랬고 발작으로 더 많은 꽃들을 그리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때였다. 그가 동생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나는 이 요양원을 나가고 싶어 견딜 수 없어”, “복숭아꽃을 그리던 무렵, 발병해 버렸다. 만일 더 오래 그렸다면 다른 꽃 핀 초목을 그릴 수 있었을 텐데, 꽃이 만발했던 나무가 지금 거의 시들었으니, 참 운도 안 좋아”

고흐가 어떻게 찔레꽃에 시선을 두게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가 고향 쥔데르트며 에텐, 누에넌에서 새 둥지를 찾아 들녘을 누비던 어린시절과 초년 화가로서 농촌풍경 속에서 모티브를 찾던 촌스러움과는 다른 의미의 시골마인드의 발로였는지. 아니면 길모퉁이 척박한 땅에 뿌리내리고 화려하지 않은 자태를 한 꽃이, 요양병원에서 기거하는 고독한 자신의 신세와 동병상련의 무엇으로 통한 것일까. 찔레꽃말인 ‘고독,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주는 의미도 심장하다.

▲ 꽃 핀 밤나무 가지, 오베르쉬르우아즈, 1890. 5월, 스위스 취리히 E. G 뷔를레재단 컬렉션
▲ 꽃 핀 밤나무 가지, 오베르쉬르우아즈, 1890. 5월, 스위스 취리히 E. G 뷔를레재단 컬렉션

반면, 그림 ‘꽃 핀 밤나무 가지’와 ‘꽃이 핀 아카시아 가지’는 거처를 생레미에서 오베르쉬르우아즈로 옮긴 이후 인 1890년 5월 20일부터 6월말 사이에 그려진 그림들이다. 이는 생레미의 요양병원 시절보다는 더 자유롭고, 밤꽃말 ‘포근한 사랑’(의사 가셰 박사의 보살핌과 지지), ‘호화로운’같이, 변화된 환경 속에서 그려진 그림들이다. 그래도 그의 편지에서 “하루 숙박비가 6프랑이래. 나는 하루에 3프랑50상팀인 곳을 혼자서 찾아냈어”라든지 “주말까지 송금해 준다면 그때까지 어떻게든 버티겠지만 그 이상은 무리야”라는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늘 생활비며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비용을 걱정해했다.

그의 처지나 그림의 모티브들이 어쩌면 이렇게도 우리네 보릿고개 시절의 곤궁함을 떠오르게 하는지. 옆길로 새는 이야기지만, 세 작품 주제인 나무들은 모두 한시절 먹거리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카시아꽃이며, 찔레나무의 연한 순은 껍질을 벗겨서 먹던 군것질거리였고, 밤은 지금도 간식거리지 않는가.

그래서인지 우리의 정서와 잘 어울리고 편안함마저 드는 그림이라는 생각이다. 좋은 그림이란 “즐거운 대화와 맛있는 식사 같은 것으로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행복이다”라고 말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하는 ‘일상의 대화와 식사같이 편안함’을 주는 그림들이다.

넋두리 그만하고 그림을 보자. 상단 일부를 제외하고는 찔레 덤불이 화면 가득하다. 찔레 덩굴 일부가 화면 중앙에서 보이는가 싶다가 모두 초록빛 잎사귀다. 내려다 본 구도라지만 이파리가 한결같이 다림질이라도 한 듯 평평하고 뚜렷하게 표현되었다. 붓으로 검정테두리를 한 효과일까. 잎의 단단한 이미지가 흰꽃잎의 부드럽고 순결한 이미지를 더 강화시켜 주는 듯하다. 그림 상하좌우에 그려진 일곱송이 흰색꽃은 사실적인 묘사로 입체감을 더해주고 있다. 상단의 노란빛 여백과 꽃수술의 노랑이 잘 조화되어 편안함과 명암을 더한다.

덤불(undergrowth)의 그림자는 초록 이파리의 색감이 묻어 나면서 옅고 짙게 농담을 주며 채색되었다. 파리시절 작품 ‘덤불’(under growth, 1887)에서는 점과 짧은 붓놀림으로 빛과 그림자를 표현했었는데 그때의 그림보다 ‘찔레꽃’의 화법이 단순하면서도 훨씬 편안함을 준다.

이 그림 ‘찔레꽃’에서 장사익의 “찔레꽃” 노랫말이 쉬이 떠오름은 어떤 심상일까.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노래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 찔레꽃처럼 사랑했지, 찔레꽃처럼 살았지” 기뻐 노래하고 춤추고, 사랑이라는 떨림보다도 그렇다고 우울하고 슬픈 어떤 것도 아닌 그저 담담하고 순결하게 꿋꿋이 이 땅에 뿌리내리며 고난을 이겨내고 억척스럽게 살아낸 어머니와 민초의 삶 같은 “찔레꽃처럼 살았지”에 더 감흥이 간다.

고흐의 삶도 ‘그림밖에 없는 사람처럼 그리고 그려내며 살아낸 고통 속에 뿌리내린 삶’이었다. 그가 그린 그림 또한 직조공, 석탄을 지고 가는 여자들, 감자 심는 농부, 복권을 사는 사람들 등 늘 땀 흘리고 불행한 이들의 편에 서서 그들에게 애정을 가졌던 인간 고흐를 발견할 수 있는 그림이지 않던가. 그래서 세 작품중 ‘찔레꽃’에 더 눈이 가고, 보고 머물게 된다.

▲ 꽃이 핀 아카시아 가지, 오베르쉬르우아즈, 1890. 6월, 스웨덴 스톡홀름 국립미술관
▲ 꽃이 핀 아카시아 가지, 오베르쉬르우아즈, 1890. 6월, 스웨덴 스톡홀름 국립미술관

그림 ‘꽃 핀 밤나무 가지’와 ‘꽃이 핀 아카시아 가지’도 ‘찔레꽃’에서처럼 나무에 바짝 다가서서 나무 일부를 그렸다. 단지 나뭇가지를 올려다보는 구도라는 차이점은 있다.

‘자연과 인간의 특질, 심성을 그림으로 창조해 낸 자’ 답게 꽃이 지닌 자연 그대로의 자유로움을 두고 그 존재를 포착한다. 꽃 핀 밤나무 가지나 꽃이 핀 아카시아 가지를 화병에 굳이 꽂고 작위적으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지 않았다. 그래서 이러한 세 그림이 정물화가 아닌 것이다.

그의 편지글에서 알 수 있듯이, “자연의 요소들이 서로를 설명해 주고 돋보이게 하는 놀라운 관계들을 이해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하도록 자연에서 헤매고 더 가까이 다가간 것이다.

그림 ‘꽃 핀 밤나무 가지’는 밤나무 가지를 행으로, 나뭇잎과 꽃이 화면 가득한 그림이다. 배경은 하늘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올려본 구도임을 알 수 있다. 나뭇잎 외관의 굵은 곡선, 다양한 형태의 잎, 애기젖병솔 같은 꽃기둥에서 생동감이 넘친다. 나뭇가지 주변을 감싼 물결 문양의 하늘 묘사는 향기가 사방으로 진동하는 느낌을 준다. 노란 듯 하얀꽃송이와 잎맥까지 생생함이 섬세하고 사실감을 더한다.

기실, 자신의 그림 ‘꽃이 핀 밤나무들’을 보고 누가 수종(樹種)을 구별해 낼 수 있을까. 특정 부위만을 클로즈업하여 정물화처럼 그린 고흐의 이 그림들이 주는 묘미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 나무를 보고 그 나무와 꽃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부를 수 있도록 특질을 잘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여, 이 그림들을 보며 찔레꽃, 밤꽃이라 이름 부르며 감상할 수 있다.

재미나는 상상은 그림 ‘꽃 핀 밤나무 가지’에서 표현된 하늘과 그림 ‘찔레꽃’상의 일곱송이 찔레꽃을 합성한다면, 찔레꽃이 ‘론강 위로 별이 빛나는 밤’ 속 일곱 개 별, 북두칠성처럼 빛나는 별이 되어 보이리라는 것이다. 이는 또 어떤가. 그림 ‘밤의 카페 테라스’ 하늘 위로 눈송이처럼 떠있는 별들이 얼마나 이 자그마한 노란빛 품은 흰찔레꽃과 흡사한가.

이렇듯 사실적인 그림 덕에 찔레꽃이며 밤꽃은 기특하게도 알아봤다. 하지만 ‘꽃이 핀 아카시아 가지’는 어떤가? 그림만 봐서는 모티브가 뭔지 도무지 맞히기가 난망하다. 대각선으로 선 나무의 굵기만 아니라면 마치 개나리꽃처럼 느껴진다. 가스등 불빛을 받은 듯 꽃이 노란빛에 가깝다. 배경이 온통 검은빛이다. 그래서 더 꽃과 잎이 돋보인다. 밤에라도 그린 그림일까. 빛이 들 수 없을 만큼의 숲 깊이를 나타내는 듯하나 검은색에 농담을 주지 않아 깊고 얕음을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다. 제목을 보고 아하, 아카시아꽃으로 느낀다.

화면 가득한 꽃그림이 밝고 자유분방한 느낌을 주는 그림이나 울적하거나 검정 바탕색에 더 마음을 뺏길 때는 언젠가 가슴마다 단 노란리본 같은 상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세 그림중 ‘찔레꽃’이 자연에 다가섬의 평범한 표현으로 편안함을 느끼게 하고, ‘꽃 핀 밤나무 가지’는 대상에 다가섬만큼 디테일한 부분까지 확대 묘사하여 ‘이런 부분까지 있었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반면, ‘꽃이 핀 아카시아 가지’에서는 꽃에 다가섬만큼 확대 묘사된 모습이나 나뭇잎과 주렁주렁 달린 꽃들을 너무 단순화시켜 색상이 아니라면 형태면에서 잎과 꽃의 구분이 힘들게 묘사되어 더 상상하게 한다. 자연을 인식하고 읽어내는 법이 이렇게도 달리할 수 있구나를 생각하게 하는 그림들이었다.

돌이켜보니, 동양풍 물씬난 그림들이다. 우리네 시골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찔레꽃, 밤꽃, 아카시아꽃을 한데 묶어서 고흐의 작품으로 감상한 시간이었다. 때마침, 찔레꽃 소식도 들린다. 곧 뒤 따를 아카시아꽃이며 밤꽃이 있다. 수수한 꽃들이지만 알고 보고 자세히 보면 예쁘고, 향기가 은은해 더 정감 가는 꽃들이다. 욕망만 한다고 다 눈에 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는 만큼 더 눈에 띄고 느끼게 될 일이다. 오늘 고흐의 그림이야기가 그 단초를 줄 수 있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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