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순도 높은 ‘고음의 노랑’을 찾아낸 빈센트 반 고흐
가장 순도 높은 ‘고음의 노랑’을 찾아낸 빈센트 반 고흐
  • 박영길 논설위원
  • 승인 2021.05.2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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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육체 모두 극단까지 끌고 간 반 고흐
▲ ▲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1889, 캔버스에 유채, 코톨드 인스티튜트, 런던
▲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1889, 캔버스에 유채, 코톨드 인스티튜트, 런던

(내외방송=박영길 논설위원) 빈센트 반 고흐는 압생트 산지인 아를에서 예술의 극단을 향해 브레이크 없이 내달리기 시작한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색의 최고음을 화폭에 담아내려는 반 고흐의 대역없는 액션은 우리가 기억하는 불별의 명작을 쏟아내기에 이른다.

▲ 해바라기 1888, 캔버스에 유채, 93x73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 해바라기 1888, 캔버스에 유채, 93x73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노란 집’과 ‘아를의 밤의 카페’를 살펴보자. 이들 작품에선 공통적으로 특별한 부분이 있다. 정물도, 풍경도, 카페도. 심지어 자신의 집까지 온통 샛노랗다. 그가 아를에서 남긴 그림에는 노란색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노란색에 대한 몰입이었을까? 강박이었을까? 녹색요정 압생트는 아를에서도 어김없이 반 고흐와 함께였다. 녹색 요정이 산토닌(santonin)을 품고 있는 것을 모른 체 반 고흐는 압생트를 마시고 또 마시며 산토닉에 중독된다.

압생트의 주원료인 향쑥에는 산토닌이 함유되어 있는데, 과다 복용시 부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바로 황시증이다. 황시증이란 모든 세상이 노랗게 보이는 증상으로 고흐 또한 산토닌 중독으로 모든 대상을 노랗게 보게 된다. 노란색이 아닌 것도 노랗게 보이고, 노란색은 더욱 샛노랗게 보이는 운명에 처해지게 된 것이다.

▲ 꽃 피는 살구나무가 있는 과수원, 아를, 1888.3,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 꽃 피는 살구나무가 있는 과수원, 아를, 1888.3,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 고흐의 영감 원천은 노란색

색을 표현해야 하는 화가가 색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는 건 어쩌면 저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반 고흐는 그것을 영감의 원천으로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이 부를 수 있는 가장 순도 높은 ‘고음의 노랑’을 찾아낸다. 활활 타오르는 노랑을 보기 위해 자신을 속이며 압생트를 계속 마셔야 했던 고흐. 자신의 예술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던질 수 있었던 반 고흐가 생명을 활활 태우며 꽃피운 대표작이 바로 ‘해바라기’이다.

화면 전체를 온통 노랗게 물들인 것에서 그가 얼마나 노랗게 심취해 있었는지를 느낄 수 있다. ‘해바라기’는 오랜 설득 끝에 아를로 오기로 한 정신적 지주, 고갱을 기다리는 반 고흐의 기쁨과 설렘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화가는 사진보다 심오한 유사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던 고흐이기에 그의 ‘해바라기’는 우리가 알던 해바라기가 아니라 노랗게 타오르는 정열의 에너지를 보는 것만 같다.

◇ 요정의 탈을 쓴 녹색악마

반 고흐는 요정의 탈을 쓴 녹색 악마에게 그야말로 제대로 제압당한다. 점차 격렬해지는 정신 착란과 귀를 막아도 끊임없이 들리는 환청으로 결국 자신의 귀를 스스로 자르고 만다. 그는 잘라낸 귀를 손수건에 싸 매음녀 라셸에게 가져다준 후 별일 없는 듯 잠을 잤다고 해서 당시 그는 녹색악마의 노예였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고흐가 그린 붕대를 감은 귀 자화상은 유례없는 것이 되었다.

스스로 귀를 자르고 붕대를 감고 자신을 그리다니! 평소의 그 답지 않게 자신의 얼굴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 본인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의 불안함이 느껴지는 듯하다. 고흐는 슬픔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던 게 아닐까? 그림 속에서 고흐의 초록 눈동자는 마치 압생트를 머금은 듯하다.

▲ Irises 1889, 71x93cm, 폴 게티 미술관
▲ Irises 1889, 71x93cm, 폴 게티 미술관

◇ 자신의 생명을 건 최후의 사투

이 사건 후 그는 압생트로 인한 온갖 중독 증세를 떨쳐 내고자 노력하며 제 발로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압생트를 끊고 오로지 그림에만 몰두하며 갱생을 위한 사투를 벌인다. 자신의 생명을 걸고 강렬히 몰두하는 만큼 그의 화면은 끝을 모르고 빛나기 시작한다. 이때 ‘별이 빛나는 밤’, ‘붓꽃’이 탄생한다.

고흐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그렸던 ‘붓꽃’을 보자. 온갖 정신 질환으로 고통 받던 사람이 그린 거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영롱한 빛을 발산하고 있는 아이리스다.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는 듯 보는 이의 마음까지 싱싱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온통 샛노랗던 화폭도 어느새 절제된 안정으로 균형을 찾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파리에서 시작된 질긴 인연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극심한 발작과 끔직한 환상은 그를 다시 깊은 우울의 늪으로 빠뜨렸다. 이겨내려 애썼지만, 반복되는 지독한 고통은 그를 기진맥진하게 만들었고, 녹색악마의 사투 그 끝에 최후의 고통이 찾아온다. 그가 마음껏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던 동생 테오의 상황이 극도로 나빠진 것이다. 동생의 불행이 자신의 책임이라 여긴 고흐는 더 이상 세상에서 숨 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테오에게 마지막 편지를 쓴다.

이제와 생각하니 쓸모없는 일 같지만, 나는 너에게 정말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는 내 작품에 삶 전체를 걸었고, 그 과정에서 내 정신은 무수히 괴로움을 겪었다. 다시 말하지만, 너는 내게 그저 평범한 환상이 아니었고 항상 소중한 존재였다

▲ 까마귀가 있는 밀밭 1890, 50.5x103cm, 반 고흐 미술관
▲ 까마귀가 있는 밀밭 1890, 50.5x103cm, 반 고흐 미술관

그는 편지를 쓰다 말고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서 작별을 고한다.

결국 고흐는 압생트의 저주를 극복하지 못했다. 요정의 탈을 쓰고 날아와 혀 끝에 앉은 녹색악마 압생트는 고흐의 영혼을 갉아 먹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우리는 반 고흐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노랑을 볼 수 있었고, 한 예술가의 영혼이 내지를 수 있는 표현의 극대치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반 고흐의 압생트는 녹색악마일까! 녹색요정일까?

박영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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