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만했던 미술 천재소년 '파블로 피카소'의 충격
자신만만했던 미술 천재소년 '파블로 피카소'의 충격
  • 박영길 논설위원
  • 승인 2021.08.10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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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블로 피카소
▲ 파블로 피카소

(내외방송=박영길 논설위원) 태어나면서부터 살기를 거부했던 한 아기는 보란 듯이 오래 살았고, 이 아기는 1881년~1972년까지 살았다. 피카소 어머니는 피카소를 낳을 때 너무 힘들게 나은 데다 피카소는 너무 허약했고, 아기가 사산됐다고 생각해 식탁에 내버려두기도 했다. 그러나 이 아기가 예상과 달리 단지 오래 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는 예술가로 수많은 예술작품을 남겼다.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고 도예와 조각 작업도 했다.

바로 '미술천재'하면 떠오르는 그 인물, '파블로 피카소',

그의 작품을 보면 한시도 멈추지 않는 변화무쌍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천재라 추앙받을 만하다. 그런데 조금 충격적인 것은 그가 어느 선배의 아이디어를 슬쩍슬쩍 훔쳤다고 한다. 최고의, 천재적인 작가 피카소가 아이디어를 슬쩍하곤 했던 만큼 대단한 예술가가 누구였을까? 그는 바로 '앙리 마티스'다.

그렇다면, 최고의 유명화가 피카소의 승부욕을 자극했던 앙리 마티스에 대해 한번 깊이 이해해 볼 수 있는 여행을 떠나보자.

앙리 마티스도 미술계의 전설적인 존재다. 야수주의 리더 마티스, 입체주의 리더 피카소와 실제 둘은 동시대, 같은 공간에 살고 있었다.

좋은 선배이면서도 경쟁자. 둘의 관계는 이렇게 명쾌하게 정의할 수 있다. 메이웨더와 맥그리거의 한판 승부만 세기의 대결이 아니다. 둘의 관계는 이와 버금가는 관계였다. 20세기의 마티스와 피카소. 이들은 생존을 넘어 명예를 걸고 '타이틀'을 차지하고자 서로를 향해 보이지 않는 주먹을 날렸다.

둘이 왜 서로 주먹을 날렸는가 하면 바로 '아방가르드 선도자'라는 타이틀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했던 이유다. 둘 다 이 타이틀을 절실히도 원했다.

20세기 초, 젊은 예술가들의 화두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세잔, 고갱, 반 고흐 등의 후기 인상주의 읽기였다.

▲ ▲ 파블로 피카소, '마리 테레즈의 초상', 1937, 캔버스에 유화 ⓒ 2021-Succession Pablo Picasso-SACK(Korea)
▲ 파블로 피카소, '마리 테레즈의 초상', 1937, 캔버스에 유화, 2021-Succession Pablo Picasso-SACK(Korea)

삶을 예술이라는 용광로에 던져 새로운 회화를 창조해내곤 했던 그들은 자신만의 예술을 창조하겠다는 뜻을 품은 예술가들의 영혼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 중에서도 젊은 예술가들의 마음을 빼앗은 작가는 바로 '세잔'이었다. 세잔의 작품은 전에 없던 변화를 시도했고, 혁신적 표현을 담은 세잔은 마치 새로운 회화 창조를 위한 비밀이 담긴 보물 상자 같은 사람이었다. 너도 나도 세잔의 유산을 발굴하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그 와중에 세잔이라는 거대한 고지를 선점한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앙리 마티스'다.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대 졸업 후 법률사무실에서 평범하게 일하다가 어느 날 맹장염에 걸려 침대에 누워 지내게 됐는데 그때 마티스의 인생을 바꿀 중요한 계기가 찾아온다. 바로 그의 어머니가 무료함을 달랠 선물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그림 도구였다. 마티스는 태어나 처음으로 만진 물감과 붓이었다. 그는 또 이런 우연으로 그리게 된 그림을 운명이라 생각하고 본능에 따라 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스물두 살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 파리로 상경한다. 14년째 되던 1905년 서른셋의 마티스는 자신의 대명사가 될 작품을 그렸다.

▲ (사진=wikimedia commons)
▲ 앙리 마티스, 모자를 쓴 여인 (사진=wikimedia commons)

마티스 본인의 마음에는 썩 들지 않았던 '모자를 쓴 여인'이다. 미친 척하고 파격적인 시도를 했던 작품이며, 무엇이 파격적인 지는 보자마자 알 수 있다. 바로 색에 있다. 모델의 얼굴 피부색을 보면 우리가 아는 피부색이 아니다. 마치 몇 대 맞은 사람의 얼굴색처럼 파랗고 노랗게 물들어 있다. 어쩌다 이런 파격적인 도전을 하게 됐을까. 때때로 자연에서 본 색과 다른 색을 썼던 세잔, 고갱, 반 고흐 작품에서 얼른 따와 힌트를 얻었던 것이다.

'모자를 쓴 여인'은 그 힌트를 극단적으로 표현해 작품 전체에 적용한 것이다. 자연에서 본 색이 아니라 그가 느낀 색을 표현했다. 당시 이 그림을 본 비평가는 '야수'를 그렸다며 비평했지만 결국 이것이 '야수주의'라는 명칭의 기원이 됐다.

그만큼 당시 마티스는 자신의 예술인생을 건 배팅을 한 것이었다. 용기 있는 시도는 성공적이었고, 20세기 초 그는 아방가르드 미술의 선도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마티스가 존재함을 과시하던 그때 열두 살 어린 피카소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피카소는 어릴 때부터 미술신동, 천재라는 말을 듣고 자라 자신감과 야망이 늘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 아비뇽의 처녀들. (사진=뉴욕 현대미술관(MoMA)
▲ 아비뇽의 처녀들. (사진=뉴욕 현대미술관 MoMA)

1904년, 그는 조만간 파리미술을 평정하겠다는 뜻을 품고 조국인 스페인을 떠나 파리에 완전 정착한다. 그 때가 겨우 스물세 살이었다. 그가 원대한 꿈을 꿀 수 있었던 것은 그때부터 이미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온통 파란색 톤으로 그린 그림인 '청색시대'에 이어 온통 붉은색 톤으로 그린 그림 '장미시대'를 선보이며 고전적이지만 개성 있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뽐내고 있었다.

그러나 파리에서는 피카소가 아직은 무명이자 신인이었다. 당시 파리의 트렌드도 잘 모르고 있었고 말이다. 그런 피카소가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을 보고 충격을 받고 말았다. "아, 그림을 이렇게도 그릴 수 있다니!" 그리고 마티스의 그림을 통해 지금껏 자신이 그렸던 그림들이 매우 구식이었다고 깨닫게 된다.

타고난 승부욕을 가졌던 그는 알게 된다. 자신이 파리 미술계를 평정하기 위해서 마티스를 꺾어야 한다는 것을. 마티스가 가진 아방가르드 선도자라는 타이틀을 철저히 빼앗아 와야 한다는 것을...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출생: 1881.10.25.~1973.04.08.
국적: 스페인
사조: 입체주의
대표작: 아비뇽의 처녀들, 게르니카, 마리 테레즈의 초상, 꿈


서양화가 박영길 화백 약력
· 월드프로아트미술협회 이사장
· 대한민국 미술대전 3차 심사위원
· 대한민국 운영위원·초대작가
· 대한민국 호국미술대전 1~7 운영위원
· 대한민국 표준영정 67호 지정작가
·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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