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牛)
소(牛)
  • 전기복 기자
  • 승인 2021.02.2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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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 프랑스 오베르 쉬르 우아즈, 1890.7, 프랑스 릴, 릴 미술관
▲ 소, 프랑스 오베르 쉬르 우아즈, 1890.7, 프랑스 릴, 릴 미술관

(내외방송=전기복 기자)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이 고향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인의 정서와 가장 잘 어울리는 동물이 ‘소’라는 생각이 든다.

하여, '황소의 혼을 사로잡은 이중섭'의 소 그림에도 또 그렇게 심금이 울리는지 모를 일이다. 외려 실물과 그림의 차이가 있을까. 이렇게 우리에게 친근한 소를 모티브로 한 그림, 특히 고흐가 소를 그린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심상은 어떤 것일지 그의 그림을 함께 감상해 보자.

소가 인간 속에 자리매김한 모습은 수렵 채집 시기에 숭배를 받던 소의 위상은 농경사회가 되면서 점점 내려오게 된다. 동서양에서 대체로 산업화 이전까지는 달구지나 쟁기를 끄는 데 주로 이용되었다. 허나 동양에서는 농사에 필요한 일하는 소로, 서양에서는 고기나 젖을 공급받기 위해서 주로 소를 사육했다. 소가 처한 환경만큼이나 사람들이 이를 경험하고 추억하게 되는 모습은 다르고 사유한 만큼 소를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고흐의 그림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소를 주제로 그린 그림의 대부분은 그가 농가를 주유한 네덜란드 시기에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 누워 있는 소, 헤이그, 1883. 8, 대한민국 개인소장
▲ 누워 있는 소, 헤이그, 1883. 8, 대한민국 개인소장

펼쳐진 농촌 풍경대로 ‘누워있는 소’(1883, 헤이그)나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초지의 소’(1883, 헤이그), ‘붉고 흰 황소가 끄는 수레’(1884, 누에넌), ‘감자 심기’(1884, 누에넌)를 위해 쟁기를 끄는 소, 심지어 어미 소의 체액에 젓은 채 누워있는 갓 낳은 송아지를 보고 그린 ‘짚 위에 누워 있는 갓 태어난 송아지’(1884, 누에넌) 등을 그렸다.

“그림은 시대의 결과물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고흐 개인이 보고 경험한 결과물이 소를 주제로 한 그림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 붉고 흰 황소가 끄는 수레, 누에넌, 1884.7, 네덜란드 오테를로 크뢸러 뮐러 미술관
▲ 붉고 흰 황소가 끄는 수레, 누에넌, 1884.7, 네덜란드 오테를로 크뢸러 뮐러 미술관

이 시기 그림들이 그렇듯이 소 그림들도 색감이 무겁거나 어두운감이 없지 않다. 또한 수레든 쟁기를 끄는 소든 하나같이 정적인 모습이다. ‘붉고 흰 황소가 끄는 수레’ 그림은 어두운 배경에 앞 뒷발 모두 가지런하게 선 모습이며, 소의 큰 눈망울은 졸린 듯 알아보기 힘들게 표현되어 수레를 끄는 동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있게 느껴진다. 특히 ‘누워있는 소’가 머리 크기에 비해 몸집이 작고 등과 엉덩이 부분이 짧고 급격하게 곡선 처리되어 듬직하다기보다 귀여운 느낌이다.

▲ 감자 심기, 누에넌, 1884. 9, 독일 부퍼탈 폰 데어 호이트 미술관
▲ 감자 심기, 누에넌, 1884. 9, 독일 부퍼탈 폰 데어 호이트 미술관

‘감자 심기’는 소가 발걸음을 내딛는 모양새이나 다이나믹하게 쟁기를 끄는 분위기가 물씬 나지는 않는다. 풍경 하나하나는 우리네 고향 정경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럇”하시든 아버지의 묵직한 목소리만큼 쟁기질의 깊이는 더해지고 힘에 부치는 소는 더 힘차게 앞발을 내딛는다. 여기저기 근육이 울퉁불퉁 일렁인다. 소 등치만큼 크게 갈아엎어진 흙덩이에서도 역동성을 느낄 수 있었던 어릴적 시골 풍경을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나마 초원에서 젖소가 풀을 뜯는 풍경을 그린 ‘목초지의 소’는 이국적인 풍경으로 낭만적이다. 하늘의 노을이며 배경의 짙고 풍성한 숲이 한가로운 정감을 더 깊게 한다.

▲ 목초지의 소, 헤이그, 1883. 8, 개인소장
▲ 목초지의 소, 헤이그, 1883. 8, 개인소장

아직은 임파스토기법이니 불타듯 휘감아 도는 격정이며 역동은 찾아볼 수 없는 ‘작은 화가’ 시절의 그림들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인이 ‘누워있는 소’ 작품을 소장한다는 것이다. 물론 프랑스라는 자료도 있었지만 라이너 메츠거가 쓴 ‘빈센트 반 고흐’(하지은·장주미 역, 마로니에북스, 2018)에는 명확하게 “대한민국, 개인소장”이라고 밝히고 있다. 필자로서는 고흐 작품이 우리나라에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은 처음 접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일천여 작품을 검색해 보지만 ‘누워있는 소’가 유일한 작품이다.

완숙한 시기에 그려진 고흐의 소(牛)를 소재로 한 작품은 없을까? 네덜란드 시기에 그려진 작품을 제외하면 유일한 작품인 ‘소’(1890)라는 작품이 있다.

이는 우리네 농촌에서 우직하게 일만 하는 소의 모습과는 달리 방목된 젖소의 한가로운 풍경을 잘 보여준다. 고흐가 생을 마감한 그해 그 달인 1890년 7월에 그려진 그림이다. 그는 죽기 수개월 전부터 고향 네덜란드에서 보고 자란 경험들로 돌아가서 그때의 열망을 충족시키고자 했다. 오베르의 많은 밀밭 풍경들뿐만 아니라 이 작품 ‘소’도 앞서 알아본 네덜란드 헤이그, 누에넨 시절의 많은 소와 관련된 주제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림을 보자. 화면 중앙을 가로지르는 지평선을 중심으로 하늘과 땅을 나누고, 한 무리의 소를 초지에 배치한 단순한 구성이다. 고흐의 그림인가 의심될 정도로 차분한 느낌을 준다. 소의 윤곽을 그린 굵은 선 처리며 색상이 그렇고 돌아선 두 마리의 소 대가리며 뿔은 양인 듯 착각마저 들 정도로 귀욤상으로 그려졌다.

전면을 보는 두 마리의 소가 자아내는 분위기는 또 어떤가. 왼편의 소가 다정하게 다가서자 오른편의 소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린 모양새다. 이들의 애정행각?에 나머지 세 마리 소들은 자리를 피해 주듯 돌아서서 풀을 뜯는다. 풀밭의 흰꽃이며 낮게 날고 있는 새는 한 곡조를 더하는 듯하다. 이렇듯 분위기도 부드럽다.

하늘 가득 옅은 노란 노을은 두텁고 힘있게 칠했으나 휘몰아치거나 횡으로 긋지 않고 따박따박 한번씩 수직으로 짧게 칠했다. 우직하고 정직한 소의 습성을 잘 간접적으로 표현한 듯하고, 안온한 느낌을 준다. 볼수록 따뜻하고 정감 가는 그림이다.

고흐가 5〜6년간 잊고 있던 소를 주제로 한 그림을 갑자기 그리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는 친숙한 고향의 환경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그러던 차에 자신을 치료하던 가셰 박사 집을 오가면서 그림을 좋아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던 가셰 박사가 야콥 요르단스(1593-1678, 벨기에)의 회화작품을 판화로 옮겨 보관하고 있던 것(인그레이빙 engraving: 금속판에 예리한 도구로 디자인을 새겨 만드는 판화 기법)을 보게 된다.

요르단스의 그림을 보면서 그는 청년기 그렸던 소를 주제로 한 그림과 고향 네덜란드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한 그의 열망이 가셰 박사가 보관하던 요르단스의 판화를 다시 회화로 바꾸어 그리게 한 계기가 된 것. 이렇게 네덜란드의 향수로 재해석된 고흐의 ‘소’ 그림이 탄생한다.

따라서 소가 딛고 있는 소의 초지(草地)가 아니라 고흐 자신이 어린시절 종달새 둥지를 찾아다니며 민들레꽃 홀씨 바람에 날리던 들판, 청년기 농가를 오가며 그림 그리던 시기의 그 고향 들녘으로 생각되었으리라. 뿐일까, 그가 마치 소인 듯 초지를 거닐고 있음직하다.

아쉬운 것은 요르단스의 작품이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어 두 작품을 비교해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올해는 소의 해이다. 특히 2월에는 설 명절이 있다. 그러나 코로나로 고향을 찾지 못하는 신세들이다. 더없이 향수에 젖을 수밖에 없다. 소 그림을 보고 고향 네덜란드를 떠올린 고흐마냥 우리도 그의 소 그림을 감상하면서 향수를 달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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