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풍의 여성 나체화, 오달리스크
동양풍의 여성 나체화, 오달리스크
  • 전기복 정책위원
  • 승인 2020.06.12 09:5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외방송=전기복 정책위원) 고흐와 연상되는 ‘누드화’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가 남긴 2천여점의 그림 중 누드화는 습작을 포함해도 20여점이라는 적은 작품 수며 완성도 높은 누드화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온 유럽이 짙은 색 머리카락을 지닌 이탈리아 여성의 편안한 관능성을 탐하고 있을 때 기괴한 오달리스크처럼 소묘와 유화로 급하게 엿보듯 빠르게 흙빛 색상들로 그린 탓에 명작과는 거리가 있다는 인식도 그 연유에 든다.

오달리스크(프랑스어, odallisque)는 옛날에 터키 궁정에서 왕의 시중을 들던 여자를 뜻하는 말로 18세기 말부터 프랑스를 중심으로 동양에 관심이 많든 화가들이 이를 소재로 그림을 그린 동양풍의 여성 나체화를 이른다. 그냥 ‘오달리스크’란 작품명으로도 유명한 프랑스 고전주의 화가인 앵그르의 작품(1814, 캔버스에 유화, 루브르미술관)을 일례로 들 수 있고 마티스, 르누아르 등 많은 화가들의 그림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고흐의 나체화에서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은 왜일까? 기실 나체화에 따라붙는 외설 시비 즉, 포르노그래피 시비는 애초에 꿈꿀 수 없다. 앞서 달려간 마음은 예열 수준에 이르렀으나 정작 그의 작품을 마주하고는 ‘이런 나체미술’은 뭐지 하게 된다. 문자를 막 뗀 초등생이 흘겨 쓴 글자를 드덤드덤 읽어내리듯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고흐의 명성에 걸맞는 묘한 능력이라고나 할까!. 도인의 평정심을 갖게 하는 이 놀라운 힘!. 스티븐 네이페와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가 지은 “Van Gogh: The Life”(2016.1)라는 평전에서도 그의 나체화에 대해 “그녀의 짐승 같은 용모를 초상화로 찬미했는데”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지점에서 그의 나체화를 살펴보자. 그가 나체화를 그리기 시작한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으나 에턴에서 헤이그로 거처를 옮긴 이후 마우베로부터 석고상 소묘를 배우면서 살아 움직이는 인체를 그리고 싶은 욕구가 절정에 달한 시점과 모델이 되어 준 클라시나 마리아 호르닉(신, 시엔으로 불림)을 만난 시점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고흐의 연인들(가칭)’이란 이야기로 다음 기회에 상세히 언급하기로 하자.

그는 1882년 4월 어느 날 동생 테오에게 인물소묘 한 점을 보냈다. 고흐는 이미 나체를 그리기 시작했고 오늘날 ‘슬픔’ (1882.4.), 「비애」로 알려진 작품이며 몇가지 버전이 있다. 이후 대부분의 작품들은 파리시절 그려진 것으로, ‘앉아 있는 어린 소녀 누드 습작’(1886년 봄)이 있다.

7~8세 전후로 보이는 어린 소녀가 등받이 없는 의자에 등을 벽에 닿을 듯 곧게 펴고 앉은 자세를 표현한 그림이다. 마치 입학을 앞두고 모녀가 함께 동네 목욕탕에라도 온 듯 먼저 탕에 들어간 엄마를 물끄러미, 아니 다소 목욕탕에 이끌려 왔다는 볼멘 표정 같기도 하다. 어색하게 쥔 주먹에 아래로 뻗은 팔, 감은 듯한 시선처리 등이 모델에 대한 낯섬이 묻어나는 어린소녀의 포즈라 귀엽다.

이와 한짝을 이루는 듯한 작품이 ‘앉아 있는 여성 누드’(1886-1887)로, 통통한 체격이며 둥근 얼굴선이 모녀지간처럼 닮아 보인다. 탕에서 나와 막 사우나에 든 편안한 모습처럼 그려졌다. 1887년 초에 그려진 누드화는 침대 위에 기댄 모습들이다. ‘기댄 누드 여인’(크뢸러 뮐러 미술관), ‘침대 위 누드 여인’(반즈재단), ‘뒤쪽에서 본 기댄 누드 여인’(파리, 개인소장) 등이 그것이다.

팔을 머리 뒤로하거나 얼굴을 괴고 침대에 누워(기댄)있는 여인을 표현했다. 흐릿한 얼굴, 처진 가슴, 거친 화면 터치는 일반적인 나체화의 관능미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널찍한 골반, 풍만한 엉덩이에 거친 듯 진한 흙빛 피부톤은 자연과 대지를 연상하게 한다. 봄날 쟁기질로 반질하게 갈아엎어진 흙덩이처럼 돌아누운 뒷모습에서 다소 젊고 탄력있는 몸매를 느낄 수 있고 침대의 흰고 부드러운 밍크와는 대비된다.

다른 나체화는 1886년에서 1887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들로 여성의 나체화의 경우, 서 있는 뒷모습이거나 - ‘서 있는 여성 누드’(1886~1887, 반고흐 미술관), ‘서 있는 여성 누드’(1886, 반 고흐 미술관) - 옆을 보는 모습으로 ‘서 있는 여성 누드’(1886, 반 고흐 미술관) 올림머리에 펑퍼짐한 엉덩이,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몸매를 종이에 연필이나 펜으로 그린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남성 나체화의 경우 다소 높은 의자에 돌아앉은 자세나 ‘앉아 있는 남성 누드’(1886, 반 고흐 미술관) 정면을 향해 서 있는 자세이나 시선처리는 조금 상방향이거나 아래를 바라보는 ‘서 있는 남성 누드’(1886-1887, 반 고흐 미술관) 작품으로 전문적인 모델의 이미지가 없는 것은 여성 나체화와 동일하다.

스티븐 네이페와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가 ‘Van Gogh: The Life’(2016.1)에서 “침대의 가장자리에 앉아 노곤하게 스타킹을 끌어당기는 여자를 묘사”한 장면이나 “대야에 쪼그리고 앉아 몸을 씻는 여자 그림”, 심지어 에로틱 공연에서 은밀히 그렸다는 “무대에서 성교하는 남녀를 표현한 그림”도 언급하고 있으나, 나로서는 찾아볼 길이 없다. 언젠가 감상해 볼 일이다.

앞서 나열한 십여점의 나체화에서 알 수 있듯이 고흐의 작품은 일반적인 관능미 넘치는 나체화와 거리가 멀다. 왜일까?

그렇다. 그의 모델들은 ‘G급’이라 할 수 있다. 전문모델 출신이 아닌 것이다. 모델을 살 돈이 없었던 고흐이기 때문이었을까. 김유경이 옮겨 엮은 “고흐 영혼의 편지”(2019.3.1) 1019 페이지에 달하는 여기저기에는 물감목록을 적어 보내거나 생활비를 며칠까지 보내 달라, 커피와 빵 조각으로 몇 날을 버틴 쪼들린 생활상이 동생에게 보내지는 편지라는 이름으로 흔하지 않게 등장한다.

그럼 모델은 어떤 이들일까? 나체화에서 엿볼 수 있는 고흐만의 정수는 무엇일까? 작품 ‘슬픔’(1882.4.)을 더 세밀하게 알아보면서 그 실체에 다가가 보자. 당시 그림에 대한 전문가들의 인식은 어떠했을까? “생생한 삶의 표현보다는 장식성을, 모티브의 활력보다 전통적인 주제를, 개성 있는 붓질보다 결점 없는 끝마무리를 높게 평가하며 아카데미 원칙을 고수”(빈센트 반 고흐, 라이너 메츠거 지음. 2018.8.15. 마로니에북스)하는 것을 예술성의 잣대로 삼고 있던 시기였다.

지금은 후자의 표현이 더 고흐적이고 현대적이라는 느낌을 누구나 갖는다. 1882년 헤이그!, 작품 「슬픔」의 주인공 시엔은 한겨울 임신한 몸으로 길거리를 헤매며 홀어머니와 세 살배기 딸을 부양하는 매춘부였다. 고흐는 그런 시엔을 모델로 데려왔고 자신보다 두세 살 연상인 서른두 살이었으나 열 살은 더 늙어 보이는 몰골이었다.

그런 여인과 동거하며 가족들에게 결혼을 선언하기에 이른 고흐의 심정은 무엇일까. 1885년 어느 날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성당보다는 사람의 눈을 그리는 게 더 좋구나, 사람의 눈에는 그 아무리 장엄하고 인상적인 성당도 가질 수 없는 매력이 담겨 있다. 나는 거지든 매춘부든 사람의 영혼이 더 흥미롭다.”는 심정과 맥이 닿아있으리라.

「슬픔」(1882.4)에서, 고흐는 시엔이 가슴 쪽으로 두 다리를 끌어올리고 팔짱을 낀 두 팔에 머리를 묻고 천연두 흉터가 가득한 얼굴을 숨기는 자세를 취하도록 해 준 것이다. 측면에서 본 나체 여인의 소묘로 날씬한 다리 선을 강조해 주지만 깡마르고 축 늘어진 젖가슴은 도저히 볼록한 배로 상징되는 임신한 여성이 가져야 할 윤기 나는 체형과는 거리가 멀다. 머리를 숙인 깊이만큼이나 그 자체로 비애감을 느끼게 한다.

그의 다른 버전 ‘슬픔’(1882. 영국 월솔 미술관)을 보자. 무한히 보호해야 할 자신의 분신을 오그린 자세로 안은 모성을 실오라기 하나 없이 적나라하게 무방비한 상태를 표현하여 더없는 비애감을 느끼도록 한 점에서는 같은 형상으로 그려졌다. 그리고는 상징적인 식물들로 배경 아랫부분을 채웠고 – 백합의 결백, 스노드롭의 순결, 담쟁이의 정절 – 좌상단 머리에는 팔꿈치에 닿은 위치에 사랑에 의한 구원과 삶에 대한 희망을 상징하기 위해 싹트는 나무를 그려놓고 있다.

앞선 그림에서나 뒤의 여러 식물들로 장식된 그림에서도 그는 한 마디 “Sorrow”(슬픔)라고 영문 단어를 그려넣었다. 시엔의 삶 자체도 슬픔이지만 그러한 여인과의 결혼을 반대하는 세속의 기준과 그로 인한 자신의 비탄한 마음을 이리도 절묘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관능미를 자랑하는 전통적 기준의 모델과는 파격적인 대상성과 섬세하게 끝마무리하는 완벽성과는 거리가 먼 간결성 그 옅은 표피를 뚫고 나오는 인간애에 대한 진실성이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정수라 생각되어진다.

슈테판 폴라첵은 빈센트 반 고흐 평전인 “불꽃과 색채”(2013.11. 25)에서 시엔의 입을 빌어 “진실하게 그린 것 같아요.”라고, 그리고 고흐 자신도 “이 그림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고 생각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적어도 나에게는 걸작이다.”라고 표현한 대목을 적고 있다. 고흐의 나체화들을 가만히 다시 보자. ‘슬픔’(1882.4. )과 ‘기댄 누드 여인’(1887. 크뢸러 뮐러 미술관) 이 두 그림에만 ‘빈센트’라는 서명을 남겼다. 작품에 대한 애착뿐 아니라 완성도를 담보함일 것이다.

고흐의 나체화는 그가 토르소 석고상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던 시기 전후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그가 죽은 사물을 그리는 것보다 살아 에너지를 뿜는 인체를 그리는 것을 더 선호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손이며, 인체균형, 얼굴표정 등의 표현방법이 투박한 시기였을 지라도.

그의 그림은 곧 인간을 그리는 일로 직역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말, 인간을 그리는 일의 출발점이 영혼인가 의상인가라며 사람의 형태를 멋진 넥타이며 양복을 걸치는 옷걸이로 보느냐 인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보느냐 하는 데에 있으며, 전자는 헛된 생각이고, 후자는 높은 예술이라고….

앞서 “영혼인가 의상인가”를 이번 주제인 나체화 즉, “내면인가 관능미(외모)인가”로 대체해도 그 맥락은 일관되고 고흐스럽다.


관심기사

오늘의 이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gibog 2020-06-16 13:23:12
좋네요.
고맙습니다.

  • 법인 : (주)내외뉴스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04690
  • 인터넷신문등록일자 : 2017년 09월 04일
  • 발행일자 : 2017년 09월 04일
  • 제호 : 내외방송
  • 내외뉴스 주간신문 등록 : 서울, 다 08044
  • 등록일 : 2008년 08월 12일
  • 발행·편집인 : 최수환
  •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3 (뉴스센터)
  • 대표전화 : 02-762-5114
  • 팩스 : 02-747-5344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유진
  • 내외방송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내외방송.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nwtn.co.kr
인신위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