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무기한 단식'에 돌입한지 어느덧 8일째다. 인간의 가장 큰 욕구인 '식욕'을 끊어내야 하는 아픔에는 일말의 동정을 보내면서도 우리 정치가 아직도 '단식'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버리지 못함에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단식은 우리 정치사에 큰 변곡점을 가져온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는 했다. 과거 YS는 전두환 정권에 맞서 1983년 23일간 단식투쟁에 나섰고, 이를 계기로 직선제 개헌을 이뤄냈다.
DJ 역시 1990년 13일간 단식에 나서며 '지방자치제 실시'라는 민주주의의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다.
이후로도 정치인의 단식은 심심찮게 등장했지만 YS와 DJ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나마 지난 2018년 김성태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드루킹 댓글사건'의 특검을 관철해낸 것이 최근 가장 성공(?)한 단식이라 할 수 있다.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회복한 YS와 DJ의 단식에는 명분과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후 이뤄진 정치인들의 단식은 명분이 약했고, 공감대를 얻어내지 못하며 '쇼'로 끝난 측면이 있다.
이제 현 시대에 단식은 더이상 예전만큼의 효과를 얻지 못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재명 대표의 단식이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는지 의문을 갖는 것이다.
일단 단식은 벼랑 끝 전술이다. 약자가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최후의 수단인 것이다. 초췌하고 점차 약해지는 모습만으로는 상대방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없다.
또한 단식을 통해 뭐든지 얻어낼 수 있다면 정치는 대화와 협상이 사라지고, 더욱 혐오와 비난과 저주만이 난무하는 '떼법'의 정치로 후진할 수 밖에 없게 된다.
탄핵과 개헌 빼고는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168석의 거대 야당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에게서 과연 무엇을 얻겠다는 것일까? 만약 노동조합이 급여를 올려달라고 단체로 단식에 나서면 대기업 총수는 무조건 들어줘야 하는 것일까?
이재명 대표의 단식도 이러한 명분이 약하다 보니 큰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 대표는 8월 31일 단식을 선언하며 ▲민생 파괴·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대통령의 대국민 사죄 ▲일본 핵 오염수 방류에 반대 입장 천명 및 국제 해양재판소 제소 ▲전면적 국정 쇄신 및 개각 단행을 요구했다.
이 중 그 어느 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이 대표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대상과 목적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이 대표 스스로 부인해도 대장동 및 쌍방울 관련 수사에 대한 '방탄단식'이라는 조롱이 나오는 이유다.
더구나 9월부터 100일간 정기국회가 진행된다. 내년도 예산 심의를 비롯해 선거법 개정 및 개헌 등 중차대한 사안들을 처리해야 하는 시기에 제1야당 대표가 단식에 들어가면 이 모든 사안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에 머무는데도 민주당의 지지율 역시 30%대의 박스권에 갖혀있는 것이 그 반증이다.
더구나 이 대표는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무기한'이라는 전제를 두며 단식 종료의 명분을 스스로 어렵게 했다. 결국 이 단식은 정부와 여당으로부터 얻어내는 것 없이 이 대표가 병원에 실려가는 모습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단식이 지지자들을 뭉치게 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중도 확장력까지 고려할 때 내년 총선에서 어느 정도 호소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양당제가 가장 절대적인 미국에서조차 '단식'을 통해 원하는 바를 얻어내지는 않는다. 우리 정치가 대화와 타협이라는 순리를 따를 수 있다면 '단식'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대표의 단식이 어떻게 종료될지는 모르지만 대한민국 정치사의 마지막 단식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리고 속히 단식을 종료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