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외방송=김준호 기자) 미국과 중국이 세계 패권과 질서 개편에 들어간 가운데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이번 달 개최되는 ‘민주주의 정상회의’와 ‘G7 외교·개발장관회의’를 통해 중국을 압박할 예정이고, 일대일로 사업에 맞대응하는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의 더 나은 세계 재건(B3W) 프로젝트와 EU에서 추진하는 글로벌 게이트웨이 사업이 추진될 예정이다. 이에 중국도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동남아에 이어 아프리카에 물량 공세로 나서고 있지만, 대중국 압박전선이 확대됨에 따라 한동안 고전할 수도 있다.
中 일대일로 참여국 숨겨진 부채 456조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명운을 걸고 추진하는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이 지구촌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중국은 2013년부터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의 저소득 국가와 일대일로 사업을 추진해오면서 해당국들은 중국 정부로부터 자본을 빌려 도로, 철도, 항만시설 등 사회간접자본(SOC)을 구축하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수익성 악화 등으로 많은 참가국들이 빚더미에 시달리고 있으며, 중국으로부터 빌린 자본을 갚지 못하면 해당 인프라 시설은 중국으로 넘어간다. 눈에 띄는 점은 중국이 2013년 일대일로를 발표한 전후로 해외에서 자금을 빌리는 주체가 달라졌는데, 각국 중앙은행들에서 국영기업, 국유은행, 합작기업 등으로 자본을 빌리는 주체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미국 윌리엄앤드메리대학 에이드데이터 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까지 일대일로 참여 후 빚더미에 앉은 국가들의 부채 총합은 3850억달러(약 456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수출입 금융기관 등과 중남미 국가·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24개국간 대출 계약(2000~2020년) 100건을 살펴본 보고서에서는 일대일로 참여국 중 40개 이상의 국가는 대중 부채규모가 자국 국가총생산(GDP)의 10%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이후 체결된 일대일로 사업의 모든 계약(38건)에는 광범위한 기밀 유지 조항이 들어가 있었다. 다른 채권자보다 중국에 가장 먼저 상환하라는 요구 등이 대표적이다. 보고서에는 여러 참여국들의 일대일로 관련부채가 수년간 축소돼 있었으며, 숨겨진 빚의 규모도 점점 불어나고 있고, 중국의 대외 융자에 있어 외부에 보이지 않는 조건을 부가하는 중국의 ‘숨겨진 부채’문제는 각국의 채무 재편 교섭을 방해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아프리카․서아시아 국가 중심으로 피해 확산
28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우간다 정부는 자국의 유일한 국제공항인 엔테베 공항 확장을 위해 2015년 중국 수출입은행에서 2억 달러(약 2400억원)를 갚지 못해 공항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으며, 이를 막기 위해 중국 측에 대출 계약 내용의 일부 수정을 요청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대출금을 갚지 못하자 최근 중국은 대신 엔테베 공항을 인수하겠다고 밝혔다는 보도가 아프리카 언론에서 나왔다. 양국은 이에 대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는 소식통을 인용해 “우간다 정부가 공항 운영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중국 측에 대출 계약 내용의 일부 수정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전했다. 우간다는 독소조항 중 ‘정부가 항공 관련 예산·계획을 세울 때 중국 수출입은행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조항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국이 우간다의 주권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고 책임 있는 채권국으로서 주요20개국(G20)의 기준을 따르겠다고 한 약속과도 배치된다. 그럼에도 중국 당국은 우간다 정부의 개정 요구를 거부했다고 인도매체 더 프린트가 덧붙였다.
실제로 파키스탄과 스리랑카는 수년 전 대중국 부채를 갚지 못해 군사기지와 항구 운영권을 중국에 양도한 바 있다. 파키스탄은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지난 8년간 중국의 자본으로 발전소, 도로, 철도 등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채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급증해 경제 위기를 겪어왔다. 블룸버그 통신은 22일 국제통화기금(IMF)는 이날 성명을 통해 “파키스탄에 대한 금융 지원 방침과 파키스탄 정부의 개혁 방안 등에 합의에 도달했다”며, 그동안 보류했던 6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재개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 참여로 이미 한 차례 빚 폭탄은 맞은 스리랑카가 이번에도 수도 콜롬보의 동부 컨테이너터미널(ECT) 개발 사업을 중국 국영기업에 발주하기로 결정했다고 24일 AFP통신이 밝혔다. 본래 이 사업은 일본과 인도가 공동으로 개발하기로 돼 있었는데, 친중 성향의 스리랑카 대통령이 올해 2월 기존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중국에 발주한 것이다. 중국의 이번 항만사업 참여로 앞서 함반토타 지역 항만개발사업 때 빚더미에 앉았던 악몽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美․EU, ‘민주주의 정상회의’ ‘글로벌 게이트웨이’로 맞대응
미국과 영국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민주주의 정상회의(12월 9~10일)와 영국 리버풀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외교개발장관회의(12월 10~12일) 개최를 앞두고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미 국무부가 지난 23일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초청된 110개국 명단을 공개하자마자 중국은 발끈했다. 초청된 명단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제외된 채 대만을 포함시키고 있다는 것이 중국을 자극한 것이다. 특히, 미국이 선정한 ‘권권위주의 대항, 부패 퇴치, 인권 존중’이라는 3대 의제에서 중국을 거론할 것은 자명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 등은 지난달 8일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미국이 세계 각지에서 5~10개의 대형 프로젝트 투자를 검토 중이며 이르면 내년 1월 중 관련 내용이 발표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G7 정상들과 합의한 B3W(Build Back Better World)는 2035년까지 개발도상국들의 인프라 구축을 위해 40조 달러 규모의 자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사실상 개도국 등에 막대한 대출을 제공함으로써 이들을 부채의 함정에 빠트리고 부패를 조장하는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에 맞대응하는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G7 외교·개발장관회의도 이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해석될 수 있다. 영국은 이번 회의에서 한국, 호주, 인도, 남아공, 아세안도 초청됐는데, 중국을 견제할 ‘유사입장국 네트워크’로 대열을 정비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지난 회의 공동성명에서 대만, 남중국해, 홍콩 자치권, 신장 위구르 인권 문제, 지적재산권 침해 등을 거론해 중국과 마찰을 빚은 바도 있다. 이번 회의의 관건은 미·영·호 안보동맹 오커스(AUKUS)가 화두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데, 각국의 입장차만 확인될 수도 있다.
중국을 압박하는 고리는 하나 더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29일 보도에서 유럽연합(EU)이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맞대응해 3천억 유로(약 403조원) 규모의 인프라 등 투자 계획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예산 초안에 따르면 EU는 글로벌 인프라에 투자하는 글로벌 게이트웨이 사업 진행을 위해 2027년까지 최대 3000억 유로를 투자할 계획이다. ‘글로벌 게이트웨이’는 에너지와 교통 등 하드웨어뿐 아니라 디지털화, 보건, 기후변화에 대한 투자도 포괄할 예정이다.
中, 아프리카 백신 지원으로 영향력 확대
중국도 반격에 나섰다. 코로나19 변이 오미크론 출현으로 가뜩이나 백신이 부족한 아프리카 지역에 물량 공세에 나선 것이다. 서방 선진국들이 코로나19 백신을 독점하는 사이 불만이 커진 아프리카에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여기에 아프리카에서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 이번 백신 물량 공세로 그동안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불만도 잠재우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외교부는 29일 화상으로 진행된 중국·아프리카협력포럼(FOCAC) 장관급 회의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아프리카가 내년까지 인구 60% 백신 접종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중국이 10억회분의 코로나19 백신을 제공하겠다”고 30일 밝혔다. 10억회분의 백신 가운데 6억회분은 무상 제공하고, 4억회분은 중국 기업이 아프리카 국가들과 공동 생산하는 방식이다. 이외에도 중국은 22일 개최된 중·아세안 정상회의에선 동남아 국가들에 1500억 달러(178조원) 규모의 농산물 수입, 15억 달러(1조 7800억원)의 개발원조 등을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