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악화보다는 北에 유리한 국면 선점하려는 듯
(내외방송=서효원 기자)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군사행동 계획의 철회를 계기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의 방한 이후 계속된 유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대내외 매체를 통해 퍼부었던 남측 정부에 대한 거친 비난을 사실상 ‘올 스톱’한 채 남측과 한반도 정세를 주시하면서도 뜬금없이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미국 독립절 DVD를 달라고 하는 등 이상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제적십자사연맹(IFRC)이 북한의 코로나19 대응을 돕기 위해 진단키트 1만개와 마스크 4천개가 전달한 가운데 정부는 우선 물밑 접촉을 지속하면서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는 한편, 방역지원 및 경제협력 등 남북간 코로나 외교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대내외적인 상황이 북한을 변화시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정황도 예측된다.
북한이 남측의 새 외교안보라인 인사에 대해 아직까지 공식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으나, 북한의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14일 남측 인터넷매체인 자주시보의 논평․수필란을 통해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와 임종석 대통령 외교안보특보 등 남측의 새 외교안보라인에 대한 기대감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우리민족끼리는 “이번 인사에서 이인영, 임종석 두 사람에게 거는 기대도 많다”며, “두 사람이 다 '한미워킹그룹' 문제에 비판적인 말들을 한 상황이라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고 보도했다. 이어 “‘우리 민족끼리'의 철학과 '미국에 맞설' 용기를 내야 한다”며, “한미워킹그룹, 사드, 한미연합훈련 싹 다 없애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대외선전매체 ‘메아리’도 이날 3꼭지를 할애해 남한의 리얼미터의 조사를 인용하면서 남한 사회의 친미사대주의 청산과 대학생진보연합과 8․15 민족자주대회 추진위원회, 부산 시민단체 등의 한미워킹그룹 해체 및 주한미군 철수 촉구 기자회견 내용을 전했다.
이처럼 남한 매체나 시민단체의 주장을 연달아 인용하는 방식으로 기대감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울러, 새 외교안보 진영이 향후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서는 한미워킹그룹 등 한미동맹 우선 기조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압박 속내도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북한에서도 지난 10일부터 비 소식이 이어지면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3일 4면 대부분을 할애해 5꼭지의 기사로 장마철을 맞아 수해 방지에 사활을 걸고 대응책 마련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10일에는 강원도 남부 해안지역에서 200㎜ 이상의 많은 비가 내렸고, 이달 하순부터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이 이처럼 장마철 대책을 강조한 것은 지난해 태풍 ‘링링’으로 북한의 쌀 최대 생산지인 황해남도의 수확량이 큰 타격을 입으면서 식량난이 한층 깊어진 전례를 밟지 않기 위해서다. 최근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기록적인 폭우로 수해를 입은 점도 북한의 경계심을 높이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에 이어 재난재해 시스템이 잘 갖춰지지 않은 북한이 식량난까지 겹치게 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북한이 대외적인 자극을 하지 않으면서도 대화의 모멘텀을 보이고 있는 것은 미국 대선 전에 북미간 정상회담이 개최되지 않는다 해도 유연한 상황관리능력을 보여주면서 국제사회에 보내는 일종의 신호라고도 볼 수 있다. 즉, 상황 자체를 악화시켜 얻어낼 수 있는 이익보다는 북한에게 유리한 국면을 확보하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